사진설명: 윤장대 전체 모습.
용문사 대장전의 윤장대(보물 제684호)는 조선시대 전경신앙(轉經信仰)이 남긴 유일무이한 유물이다. 경을 안에 넣고 돌릴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음력 3월3일, 9월9일에 한하여 사용이 허락된다. 윤장대는 중요 불교 문화재들이 도난, 훼손의 우려 때문에 박물관 진열장에 박제된 상태로 갇혀있는 경우가 많은 요즘,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전통 전경신앙의 살아있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종교적 가치가 매우 큰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전경신앙은 경을 경통(經筒)이나 윤장에 넣고 돌리는 행위로부터 성립된다. 경륜(經輪)을 돌리면 세세생생 쌓은 죄와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고, 마귀의 장애, 몸과 마음의 병, 기근, 원한 등 8만 4천의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만약 선남자 등이 발심하여 경통이나 경륜을 돌리면 경륜 안에 있는 경을 무수 만 억 번 염송하는 것과 같고 그 공덕이 불가사의하다고 한다. 또한 현세에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고, 길상원만하고 시방의 일체 제불과 무수한 용과 하늘이 항상 보우(保佑)해 준다고 한다.

오늘날 전경신앙이 가장 성행하고 있는 곳은 티베트이다. 지금도 티베트에 가보면 불자들이 길을 갈 때나 앉아 쉴 때나 항상 경륜을 돌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불교 사원에도 불자들이 입구에 설치된 수많은 경륜(마니차)을 그곳에 드나들 때 마다 돌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골에서는 촌민들이 대규모의 경륜을 설치해 놓고 공동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가정에서는 지붕 꼭대기에 경륜을 올려놓고 바람 힘으로 돌아가게 해 놓기도 하고, 부엌에서는 열기로 경륜을 돌리는 장치를 마련해 해두기도 한다.

그리고 작은 하천이나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경륜을 장치하여 수력에 의해 밤낮으로 돌아가게 해 놓기도 한다. 티베트 불자들은 이와 같이 자연의 힘으로 경통이 한 바퀴 도는 것이 사람이 경을 한번 염송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업장을 소멸시키고 많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한 바퀴 돌때마다 공덕쌓고 업장소멸

“윤장 돌리기만 해도 복 짓는다” 믿음 전파

조선시대 轉經신앙 전하는 유일무이한 유물

1670년 중수…화려한 공포장식. 기둥 눈길


사진설명: 용문사 대장전에 있는, 윤장대의 꽃살문.
전경신앙의 근거는 몇 가지 경전에서 찾아진다. 먼저 〈경륜이익십만공덕경(經輪利益十萬功德經)〉에서는, “내가 미래에 문자 모양을 만들어 돌리면 너희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我於未來時,轉作文字形而利益汝等)”이라고 한 간접 증거가 있고, 〈마니전집(摩尼全集)〉중에, “해탈경륜을 바람이 부는 높은 곳에 올려놓으면 모든 중생이 이익이 된다(解脫經輪置於高處,風所飄處生皆可得利益) 만약 냇물이나 연못, 계곡물에 두고 물의 힘으로 돌게 하면 물고기, 새우와 같은 종류 모두가 이익을 얻는다. 또 〈수풍광속(水風廣續)〉중에 경륜을 돌리는 공덕은 무량공덕이라 설할 수 없다고 했다.

경륜은 그것을 돌리는 힘의 종류에 따라 수전경륜(水轉經輪),풍전경륜(風轉經輪),화전경륜(火轉經輪),토전경륜(土轉經輪), 수전경륜(手轉經輪)으로 나누어지는데, 이중에서 수전경륜이 전경신앙 중에서 가장 중요시된다. 수, 풍, 화, 토는 밀교에서 말하는 사대(四大) 개념으로, 그것은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요소라고 설명되어 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사대를 동력으로 하는 경륜은 없으며, 다만 용문사 윤장대처럼 손으로 돌리는 수전경륜이 있을 뿐이다.

전경(轉經)이란 경을 회전시킨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경을 ‘회전 시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부처님의 법을 법륜(法輪)이라 하고, 부처님이 법을 설하는 것을 전법륜(轉法輪)이라한다. 법륜은 법의 수레바퀴로, 범어로는 ‘dharma-cakra’이며, 범륜(梵輪)이라고도 한다. 수레바퀴는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굴러갈 수 있듯이, 부처님의 가르침 역시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모든 곳에서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에서 법륜은 전법(傳法)의 상징이다. 법륜이란 말과 관련,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운데에는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것을 전법륜(轉法輪)이라 하며, 부처님께서 사르나트(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법을 설한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부른다.

사진설명: 예천 용문사 대장전 윤장대. 불자들이 윤장대를 돌리고 있다.
법륜의 모양인 윤보는 고대 인도사회에서는 무기의 하나였다. 전륜성왕은 숙세에 닦은 복덕으로 이 윤보를 얻어, 전륜성왕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윤보가 땅을 평평하게 닦고, 적군을 굴복, 평정시켰다고 한다. 법륜이 전륜성왕의 윤보(輪寶)에 비유한 말로 쓰이는 것은 전륜성왕이 이 윤보로써 모든 적을 굴복시켰듯이, 부처님은 교법(敎法)으로 중생의 번뇌를 제거시켰기 때문이다.

윤보는 법륜, 즉 불법을 상징하며, 윤보는 회전을 기본 속성으로 하고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경을 넣은 경통이나 윤장을 돌리는 것 자체가 전법륜이며 그것은 곧 부처님이 설법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윤장을 많이 돌리면 돌릴수록 그만큼 부처님의 설법을 많이들은 것이 되고, 보다 많은 공덕을 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경신앙의 기본 교의이다.

윤장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중국 양나라의 부흡(傅翕)이라는 사람에 의해서였다는 설이 있다. 그는 540년 송산에 쌍림사(雙林寺)를 세우고 대장경 열람에 편리하도록 윤장을 고안했다고 하는데, 윤장이라는 것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문고판과 같은 작은 책들을 한 곳에 모두 꽂아 두고 책장을 돌려가며 찾기 쉽게 만든 책꽂이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윤장은 당초 경전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후에 이것을 돌리기만 해도 경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고 또한 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 전경신앙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용문사 윤장대는 현재 대장전 안에 있다. 대장전의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1670년(현종 11년)에 중수하였다고 하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지금의 윤장대가 대장전을 창건할 당시에 설치된 것인지, 중수과정에서 설치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윤장대는 삼존불과 목각탱이 안치된 불단 좌우에 1기씩 설치되어 있다. 둘 다 팔각정 형태로 되어 있는데, 빽빽한 포(包)를 올려진 서고(書庫) 전각의 모형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마루 밑에 회전축의 기초를 놓아 윤장대를 올려놓았고, 지붕 끝으로 연장되어 나온 회전축을 건물 천장부 가구에 연결하여 회전할 때 넘어지지 않게 배려했다.

사진설명: 지붕에 매달린 기둥.
용장대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팔각지붕에 장식된 화려하고 섬세한 공포와 그곳에 매달린 짧은 기둥이다. 이 기둥은 지붕을 떠받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오는 촉수(觸手)나 걸려 있는 뿌리처럼 되어 있어 무게를 떠받치는 것으로 보이게 하는 아무런 요소가 전혀 없다. 어떤 조형물에 성스러운 영감을 불어넣기 위하여 동원되는 보편적인 방법은 그 위치를 높여 하늘에 가까이 하고 황홀하고 섬세한 장식을 가하는 것이다. 화려한 공초와 허공에 매달린 기둥은 불국정토의 개념에 실재성을 부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요 방법인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연어문(蓮魚文), 국화문, 모란문, 삿자리문 등 화려한 색채와 세련된 솜씨로 조각한 문양들이 불국의 황홀함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전통의 전경신앙의 맥을 이으려는 듯이 용문사 윤장대의 모양을 흉내된 윤장을 설치하는 사찰이 늘어나고 있는데, 강화 전등사, 관촉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편, 사천 백천사에서 최근에 티베트에서나 볼 수 있는 황금색 경통을 일렬로 설치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 불자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느낌이 든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19호/ 4월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