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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부석사의 기러기

천수만은 우리나라 최대의 철새도래지다. 최대 30만 마리가 모여드는 세계적인 규모다. 풍부한 먹이 덕분에 해마다 겨울이면 총 13목 44과 265종에 달하는 새떼들의 낙원이 된다.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 보호야생종들도 이름이 무색하게 지천으로 널린다. 천수만은 서해안을 도륙한 원유유출사고로부터 온전히 살아남았다. 사력을 다한 방제작업의 결과다. 피해가 극심했던 안면도가 병풍이 돼주었다. 등과 날개가 진갈색인 가창오리와 순백의 저어새가 일정하게 떨어져 군락을 이뤘다. 멀리서 보면 바둑돌 같다. 그들은 ‘알까기’ 대형을 취하고 있다.



철새의 삶, 그 속에 우리네 삶 오롯이


천수만 탐조지.서해안 개발 바람타고 옛 영화 회복

떼 지어 날아오르는 새들의 군무에 도시민 ‘환호성’

그들의 군무 아름다운 건 거리가 주는 착시 일지도



새들끼리만 내외하는 게 아니다. 인간과의 이격은 좀더 살벌하다. 천수만의 바다와 논둑 말고는 죄다 인간의 영역이다. 서해안고속도로 위의 차들은 새들처럼 빨리 달렸다. 경적이 꽤 크게 울렸다 싶으면 새들은 요란하게 날개를 퍼덕이며 뒷걸음질쳤다.

심지어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움찔하는 느낌이다. 인간과 새들 사이의 1km는 인공과 자연, 식욕과 공포의 거리다. 천수만은 기름띠에 전혀 상하지 않았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은 뚝 끊겼다.

<사진설명> 해마다 겨울이면 천수만에 모여드는 철새들.

언론이 아무리 구슬려도 회를 잘못 먹었다 탈이 나리란 걱정은 잦아들지 않는다. 망각만이 이들을 다시 움직이게 할 것이다. 새들은 시커먼 기름을 뒤집어쓰고 죽어간 동료들의 불운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물질을 했다. 서로 다른 것을 먹고 다른 데서 자도 사람과 새들은 비슷하게 살았다. 살아남은 것들이 뻔뻔하게 잘 살아갈수록 풍경은 아름다웠다.

부석사는 천수만 철새 탐조를 활용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네이버 검색창에 부석사라고 치면 맨 윗줄에 영주 부석사 사이트가 뜬다. 서산 부석사는 영주 부석사를 지은 의상대사가 서기 677년 건립했다. ‘浮石(뜬 바위)’이라는 사찰 이름도 동일하다. 새만금 개발의 모태가 된 1980년대 간척사업 전만 해도 천수만의 논밭은 전부 바다였다.

부석사가 위치한 부석면 지역도 물 아래 있었고 거기에 솟은 8개의 바위섬에서 사찰의 이름이 유래했다. 의상대사와 선묘낭자 간의 ‘플라토닉 러브’를 노래한 창건설화도 영주 부석사와 같다. 중국과 마주한 서산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면,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와 고국에 처음 세운 절은 영주 부석사가 아니라 서산 부석사인 게 옳다. 하지만 세인들의 상식 속에선 여전히 뒷줄로 밀린다. 오랫동안 퇴락해 있던 사세 탓일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선분 위에서만 집중적으로 빛났다. 빗금의 중간에 어설프게라도 걸친 영주에 비하면 서산은 검은 땅이다.

서해안 개발의 혜택과 함께 주지 주경스님이 불사에 매진해 이제는 제법 사격을 회복한 편이다. 뭇사람들 가운데서 용을 추려낸다는 뜻의 ‘목룡장(牧龍莊)’과 지혜의 검을 찾는다는 ‘심검당(尋劒堂)’ 현판은 근현대 한국불교 중흥조 경허스님의 글이다. 참선도량임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편액들이다. 부석사 큰방에 걸려있는 ‘부석사(浮石寺)’ 현판은 스님의 제자인 만공스님 작품이다. 큰법당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이어진 목룡장과 심검당 큰방은 누워있는 소의 모양이다. 선가(禪家)에서는 예로부터 마음을 소에 빗대 자신의 본래자리를 찾는다는 뜻으로 심우(尋牛)라는 표현을 썼다. 심검당 아래의 약수는 우유(牛乳) 약수라 부르고, 법당 옆의 큰 바위는 소뿔의 형상을 하고 있다.

법당 건너편 개울 아래엔 소가 마실 물이 흐르는 여물통이 있는데, 여기서 물이 계속 넘치면 절에서 끼니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비기도 전해진다. 인근 천수만의 인기로 부석사를 대표하는 동물은 황소에서 철새로 바뀐 분위기다. 서산 시내의 창공에서도 날아가는 새떼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저들을 점으로 보듯 저들은 우리를 새똥으로 볼 것이다.

전 세계에 퍼진 기러기의 종류는 14종이다. 우리나라에는 흑기러기, 회색기러기, 쇠기러기, 흰이마기러기, 큰기러기, 흰기러기, 개리 등 7종이 찾아온다. 개리와 흑기러기는 천연기념물이다.

<사진> 서산 부석사 입구.

기러기는 시베리아 사할린 알래스카 등지에서 날아와 월동하다가 봄이 되면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겨울 철새다. 조상들은 날씨가 쌀쌀해지면 어김없이 마을에 고개를 내미는 기러기에게 수많은 별명을 붙여줬다.

북쪽에서 찬바람(朔風)을 타고 구만리를 날아온다고 하여 ‘삭조(朔鳥)’, 서로 간에 신의가 깊어서 ‘신조(信鳥)’, 큰 기러기와 작은 기러기를 ‘홍안(鴻雁)’이라고 칭했다. 서리를 전한다고 해서 ‘상신(霜信)’, 가을과 겨울 두 계절을 지낸다고 해서 ‘이계조(二季鳥)’라고도 불렀다. 한의학에서는 양기에 좋다는 뜻으로 ‘양조(陽鳥)’, 보양에 으뜸이라 하여 ‘왕조(王鳥)’라고 추켜세운다.

기러기의 행태에서 따온 낱말들 역시 상당하다. 안행(雁行)에서 전이된 ‘안항’은 기러기의 행렬이란 의미로 남의 형제를 높여 이르는 단어다. 먼 곳에 부치는 편지를 ‘안신(雁信)’ ‘안백(雁帛)’ ‘안서(雁書)’라고 한다. 혼례식 날 신랑이 장모에게 풍요와 다산을 다짐하는 징표로 나무기러기를 바치는 전안례(奠雁禮)에서도, 신라 문무왕이 축조한 경주의 명물 안압지(雁鴨池)에서도 기러기에 대한 무궁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거위는 영어로 ‘goose’라고 한다. 기러기는 ‘wild goose.’ 거위는 기러기의 변종인데 일찍이 가금으로 길러졌다. 한자문화권에서 거위를 ‘가안(家雁)’이라고도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러기의 고어는 울음소리를 본뜬 ‘긔려기’다. 구슬픈 음성 때문에 예로부터 연인과의 이별을 시로 노래할 때 자주 차용됐다. 왜 ‘긔려’를 ‘그려’로 읽을 순 없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자연과 완전히 포개진 그들의 일상에선 순응과 긍정의 힘이 덥석덥석 잡히는데 말이다.

연어의 독특한 회귀는 유명하다. 연어는 강을 역류해 산란을 하고 또 다른 짝짓기를 마친 뒤 생을 마감한다. 산란기가 되면 암컷과 수컷 모두 먹이를 먹지 않는다. 그들에겐 자살도 순리다. 철새들의 이동은 연어만큼 극적이지는 않다. 수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하늘길을 관통한다지만 죽음을 각오한 피로는 아니다. 그들은 식솔들을 전부 떠메고 와선 이 땅에 시베리아의 앙칼진 공기를 여기저기 뱉어놓는다. 한철 실컷 먹고 잔 뒤에 천수만보다 더 모질게 추운, 그래서 더 살기 좋은 동토로 되돌아간다. 똥 무더기를 아무 데나 싸놓아도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고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사람보다 못한 짐승의 특권이다.

주말에 모처럼 바닷가를 찾은 도시인들은 철새들의 무감한 집단행동을 보고 장관이라며 난리법석을 떤다. 새들의 군집은 탑골공원으로 피난 온 노인들이나 흥분한 시위대에선 도저히 맛볼 수 없는 형식미를 갖고 있다. 같은 조류라도 집안의 닭장에서 온갖 냄새를 풍기는 새들과는 전혀 격이 다르다. 곧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거리가 필요하다. 기러기가 얻은 건 마을에서 외진 물가라는 공간적 거리뿐만 아니다.

일년 중 겨울에만 모습을 보이는 시간적 거리, 영장류와 조류라는 생물학적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인간의 오랜 환심을 살 수 있었으리란 생각. 믿음도 사랑도 서로 떨어져서 시도해야 할 것들이다. 몸과 몸이 부딪히면 피와 땀과 눈물이 튀기 마련이다. 폭력과 굴종을 수반하지 않은 정화나 통일은 역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끼리끼리 모여 끼리끼리 지껄이는 천수만의 새들은 굳이 내 것으로 만들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은 평화였다.

서산=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불교신문 2394호/ 1월19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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