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다사다난했던 무자년 한해도 어느덧 저물어간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즈음이면 소리와 모양이 다른 두 가지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하나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제야의 종소리이다.
구세군에서 울리는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불우한 이웃을 향한 사랑과 자비의 종소리라면 제야의 종소리는 우리들 모두에게 한 해에 대한 회고와 반성, 그리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하는 참회와 서원의 종소리라 할 것이다. 제야(除夜)를 달리 제석(除夕)이라고도 하는데 이 날은 묵은해의 마지막이자 새해의 첫날이기에 예로부터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불꽃놀이다. 고려 말의 문신 이규보의 ‘수세(守歲)’라는 시에 “대문 위에 복숭아나무 꽂아 놓음이 얼마나 괴상한가/ 뜰 가운데 폭죽소리 시끄러운들 어이하리/ 벽온단으로 온역(瘟疫) 피함도 헛말이지만/ 술 마시기 위해 짐짓 사양하지 않았노라”고 하여 잡귀들을 물리치기 위해 불꽃놀이가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전통은 이어졌는데 실록에 보면 태종 7년 12월30일에 “제야(除夜)에 군기감에서 화산대(火山臺)를 대궐 가운데 베풀었는데, 화약의 맹렬하기가 전날에 배나 되어, 왜사(倭使)가 와서 보고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세조 8년 1월 2일에는 “저녁에 임금이 중궁(中宮)과 더불어 경복궁(景福宮)에 거둥하여 화산붕(火山棚)을 구경하였는데, 유구국(琉球國) 사신과 왜인(倭人).야인(野人) 등을 불러서 이를 구경시켰다”는 기록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새해 알리는 불꽃놀이 등 다양한 풍습 전해져
절에선 중생의 해탈 기원하며 매일 저녁 울려
조선 후기 홍만선의 <산림경제> ‘벽온(瘟)’ 편에 “제야(除夜)에 정중(庭中)에서 폭죽(爆竹)을 하면 온역(瘟疫)을 물리친다”는 ‘고사촬요’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데 불꽃놀이를 하는 이유가 전염병 퇴치에 있음을 말하고 있어 흥미롭다.
오늘날 서울 보신각 주변에서 벌어지는 요란한 불꽃놀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철없는 아이들의 불장난(?)이라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유구한 역사전통의 현대적 발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한편 옛날 도성 성문을 열고 닫는 신호로 지금의 보신각에 있는 종을 울렸는데 새벽에 치는 33번의 종을 일러 밤새 걸어 놓은 성문을 풀어 연다는 의미의 ‘파루(罷漏)’라 했고 저녁에 치는 28번의 종을 인정(人定), 혹은 인경(人更)이라 했다.
<경국대전>의 성문을 여닫는 규칙에 “궁성문은 초저녁에 닫고 날이 밝은 뒤에 열며 도성문은 인정(人定)에 닫고 파루(罷漏)에 연다”고 하여 국가적 규범으로 정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종치는 의미도 아침의 33번은 불교에서 말하는 33천(天)을 의미하고, 저녁의 28번은 28숙(宿)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치는 방식도 조선시대에는 매일 울렸던 것이 8.15 광복 이후에는 민족의 해방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매년 3.1절과 광복절, 그리고 제야(除夜), 그리고 국가의 특별한 날에 치는 것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절에서는 매일 저녁마다 종을 울리며 “이 종소리를 듣는 모든 중생들이 번뇌를 끊어 보리심을 내고 지혜가 증장하여 지옥과 삼계를 벗어나 모두 해탈하길 기원”하는데 이러한 불자들의 염원이 담긴 제야의 종소리가 온누리에 널리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김유신 / 불교문화정보연구원 이사
*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불교신문 2488호/ 12월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