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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이르니 비로소 속된 마음 씻는구나
비룡산 회룡대에서 바라본 회룡포 일출.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모래가 보인다. 내성천은 낙동강 제1지류로써 보기 드문 모래강이다. 영주댐이 설립된 이후 수량이 적어져 모래톱들이 육지화 현상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

내성천은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의 선달산에서 발원하여 영주시, 예천군을 지나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남쪽을 향해 유유히 흐르던 내성천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상류로 거슬러 흘러가는 기이한 풍경을 만들기도 한다. 예천 용궁면에는 내성천이 태극무늬 모양으로 휘감아 돌아 모래사장을 만들고 마치 섬과 같은 그곳에 마을이 들어서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과 같다고 하여 회룡포(回龍浦)라고 한다. 

지난 16일 새벽 예천 회룡포를 찾았다. 비룡산에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 장안사가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전국에 세 곳에 장안사(長安寺)을 창건했다고 한다. 금강산과 양산 그리고 이 곳 예천 장안사이다. 일출 때문에 종각 앞에서 간단히 예를 올리고 회룡포 전망대가 있는 회룡대(回龍臺)로 향한다. 장안사 용왕각을 지나면 223개의 행운의 계단이 방문객을 맞는다. 장안사에서 비룡산 회룡대까지는 300m 밖에 되지 않는다. 잘 정비된 계단길을 오르니 금세 정상에 회룡대에 닿는다. 

①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 말사인 장안사.

마음이 너무 급했었나. 아직 일출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니 추위가 찾아온다. 손끝 발끝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제자리를 콩콩 뛰며 일출을 기다린다. 

여명이 밝아오자 명승 제16호 회룡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생각했던 것보다 내성천의 수량이 적었다. 푸른 강물과 하얀 모래톱이 어우러진 풍경을 생각했었는데 모래톱 곳곳이 육지화가 되어 풀들이 자란 흔적들이 남아 있다. 사진을 찍으러 오신 분이 “영주댐 때문에 수량이 더 적어졌어요”라고 알려준다. 내성천 상류인 영주 지역에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영주댐이 설치된 후 강물은 시원하게 흐르지 못하고 있다. 지율스님의 다큐 ‘모래가 흐르는 강’이 떠올랐다. 지율스님은 2011년부터 내성천 강가에 거주하며 “영주댐 건설로 강의 수질오염과 모래유실, 생태계 파괴 등이 우려된다”며 댐 건설 반대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모래가 움직이는 에너지를 알려하지 않았으며 강이 품고있는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지금 수 억 년 물길이 만든 아름다운 모래강은 단 한 번도 강가에 내려서 본 일 없는 사람들에게 위협당하고 있다. 모든 생명과 역사, 문화를 수장시키며 댐 공사를 강행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율스님이 다큐를 통해 던진 질문은 아직 그 누구도 답을 못하고 있다. 

②장안사 용왕각과 아미타불. 용왕신은 바닷가에서 모시지만 예천군(醴泉郡) 용궁면(龍宮面) 회룡포(回龍浦), 비룡산(飛龍山) 등 지명은 이 곳이 용왕신과 관련이 많다는 것을 설명한다.

내성천에 대한 안타까움을 생각하는 사이에 해가 떠오른다. 햇살은 내성천과 모래알을 비춘다. 추위를 견디면 따뜻하게 떠오르는 해를 맞을 수 있다. 맑은 물이 힘차게 다시 흐르는 내성천을 떠올리며 회룡대를 내려가 장안사로 향한다.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올라올 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시가 적힌 푯말들이 눈에 들어온다. 유명한 시들을 살펴보며 내려가니 어느덧 장안사 용왕각에 닿는다. 산신, 칠성신과 함께 민족 고유의 신앙이며 불교에 수용된 뒤 불법의 수호신으로 역할을 해온 용왕신을 모시는 전각이다. 지리적으론 감미로운 샘물이 솟는 예천군(醴泉郡) 용궁면(龍宮面)이고 앞에 보이는 강이 휘돌아가는 마을이 회룡포(回龍浦), 장안사가 위치한 산 이름이 비룡산(飛龍山)이니 이곳이 비록 바다가 아니더라도 용왕각이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용왕각 옆에는 거대한 아미타부처님이 자리하고 계신다. 

용왕각을 내려가 장안사로 향한다. 이제 막 해가 뜬 이른 아침, 사찰에는 인기척이 없다. 조용히 참배를 한다. 장안사는 신라 경덕왕 때(759) 운명조사가 창건했고 조선 인조5년(1627) 덕잠대사, 영조 31년(1775) 법림대사 등 수많은 고승대덕이 주석하고 중창을 하였다. 특히 고려 당시 백운거사임을 자처하던 이규보(1168~1241)가 머물렀던 흔적이 있다. 1196년 5월, 꽃 피던 봄 그는 여주를 거쳐 6월14일 경북 상주에 다다랐다. 그는 인근에 장안사를 비롯 여러 사찰을 방문한다. ‘십구일 장안사에 묵으면서 짓다’ 란 구절이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에 남아 있다. 

③회룡대로 오르는 행운의 계단은 시를 감상하며 오를 수 있다.

到山聊得滌塵襟  況遇高僧支道林

長劍遠遊孤客思  一杯相笑故人心

天晴舍北溪雲散  月落城西竹霧深

病度流年空嗜睡  古園松菊夢中尋 

산에 이르니 진금을 씻을 수가 있구나

하물며 고명한 중 지도림을 만났음에랴  

긴 칼 차고 멀리 떠도니 외로운 나그네 생각이요  

한잔 술로 서로 웃으니 고인의 마음일세 

맑게 갠 집 북쪽에는 시내에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 지는 성 서쪽에는 대나무에 안개가 깊구려 

병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잠만 즐기며 

옛 동산의 소나무와 국화를 꿈속에서 찾네  

④회룡포를 조망할 수 있는 회룡대 모습.

이규보는 상주 방문 당시 인근 사찰을 다니면서 글을 남겼다. 고려 무인시대에 살았던 그는 어렸을 때부터 뛰어났지만 서른이 넘을 때까지 변변한 벼슬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는 혜문, 수기, 지겸, 각훈스님 등 당대 불교계를 대표하는 스님들과의 교유하면서 불교에 대해 심취해갔다. 

당시 힘들었던 그였지만 산에 찾으면 진금(塵襟, 속된 마음이나 평범한 생각)을 씻을 수 있었는데 현재는 어떤가. 아름다운 곳을 찾아다닐수록 인간의 탐욕으로 파괴되어가는 자연을 걱정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정말 그의 이야기처럼 꿈속에서나 옛 동산의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불교신문3260호/2016년12월24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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