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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연꽃 밭에 앞에 섰던 적 있었던가. 여름 화려함으로 가득했던 연못. 이제는 세월을 훌쩍 잃어버린 꼬부랑 할머니같이 가냘픈 연잎줄기들이 무거운 꽃턱을 버티지 못하고 차가운 연못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병신년을 하루 남겨놓은 지난 해 12월30일 경북 최남단에 위치한 청도를 향했다. 겨울 같지 않은 따뜻한 날씨 탓에 차창 밖에서 겨울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다. 청도에 일몰이 유명한 혼신지 방문에 앞서 먼저 운문사를 찾았다.
운문사 입구부터 경내까지 겨울철에도 푸른 잎을 갖고 있는 소나무들이 양 옆에 서 있는 솔바람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부드러운 흙길을 밟으며 솔숲이 내뿜는 청량한 향기를 맡으며 절로 향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운문사는 557년(신라 진흥왕 21) 혹은 560년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신승(神僧)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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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님은 북대암 옆 금수동에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하여 도를 깨닫고 도우(道友) 10여 인의 도움을 받아 7년 동안 5갑사를 건립했다고 한다.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현 대비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현 운문사)를 창건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곳은 대작갑사였던 운문사와 대비갑사였던 대비사 뿐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광국사가 다시 중창했고 이후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왔던 보양선사가 후삼국시대에 쇠락되었던 다섯갑사를 대작갑사 하나로 통합했다고 한다.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은 943년 보양선사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대작갑사를 운문선사(雲門禪寺)로 바꾸어 편액을 내리고 전지(田地) 500결을 하사했다. 이 후 운문사로 불리어 오고 있다. 고려 조선시대를 이어 많은 스님들이 노력으로 법등(法燈)을 꾸준히 밝혀오던 운문사는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었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되어 승려 교육과 경전 연구기관으로 수많은 비구니 스님을 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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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산문 역할을 하는 범종루에는 호거산(虎踞山)운문사 편액이 붙어 있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형국을 하고 있는 호거산 아래 널찍한 평지에 많은 전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찰소유부지 16.8㎢(510만평)에 전각은 50개 동에 달한다고 하니 웬만한 교구본사보다도 넓은 편이다.
범종루를 지나면 북쪽으로 법당 등의 전각들이 있고 남쪽으로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삼장원 등이 자리하고 있다. 500년 된 처진 소나무, 만세루를 지나 대웅보전으로 향한다. 특이하게 운문사에는 대웅보전 현판이 붙어 있는 전각이 두 곳이 있다. 만세루 앞 쪽 1994년에 신축한 대웅보전과 만세루 서쪽에 있는 보물 제835호 비로전이다. 비로전은 현재의 대웅보전을 짓기 전, 운문사 신앙 공간의 중심적 역할을 했으며 법신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고 있기에 당연히 비로전 또는 대적광전으로 불러야 하나 문화재청 등록 당시 ‘운문사 대웅보전’으로 등재되었기 때문에 옛 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나반존자를 친견하러 사리암으로 향하려 하는데 어느새 해가 많이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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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암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 부지런히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 혼신지(魂神池)로 향한다. 같은 청도군이지만 운문면에 있는 운문사와 화양읍에 있는 혼신지는 40km이상 떨어져 있다. 혼신지는 작은 연못이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일몰이 아름답고 겨울철에 앙상한 연꽃줄기가 사진을 찍으면 마치 2차원 평면성을 강조한 입체파 화가의 그림같이 나와서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유명한 곳이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니 이미 사진을 찍기 위해 30여명 정도가 연못가에 서 있었다.
화려하게 연못을 장식했던 연꽃들은 모두 사라지고 이젠 가냘픈 연꽃줄기와 말라서 쳐진 연잎 몇 개만 수면 위를 채우고 있다.
연꽃줄기를 찍으니 실루엣으로 보이는 줄기가 연못에 비쳐서 데칼코마니 같은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찍어놓고 보니 생각한 것 보다 훨씬 그럴싸한 그림이 나와서 즐겁게 사진을 찍는다.
쓸쓸하기만 한 겨울 연못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니 아름다움이 넘쳐나고 있었다. 잠시 머문다면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연꽃은 겨울엔 모든 것을 버리고 연못 바닥 진흙 속에 있는 땅속줄기는 휴면상태에 들어간다. 다음해에 봄이 되면 새 줄기를 물 밖으로 내밀고 여름에는 다시 화려한 꽃을 피울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화려한 연꽃이 연꽃의 전부가 아니다. 만개한 연꽃의 화려함만을 탐닉하며 살려고 했던건 아닐까.
문득 번뇌에 빠진 사이 해가 점점 붉은 색을 띠더니 연못과 가까워진다. 연못은 순간 태양의 붉은빛과 하늘을 푸른빛을 동시에 담는다. 태양의 마지막 따사로운 광선은 가냘픈 연대를 감싸고 어느새 연못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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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보았던 운문사 오백전의 주련을 옮겨 본다.
盆花浮紅篆烟(분화부홍전연요청)
無問無答如意自뷘(무문무답여의자횡)
화분의 꽃은 붉게 빛나고 향로의 연기는 파랗게 감도니
물음도 없고 답도 없지만 뜻대로 자유자재한지라
[불교신문3265호/2017년1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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