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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 남서쪽 해안 끝에는 가사군도가 있다. 섬들의 명칭만으로도 불자들에게 흥미롭다. 대표적인 섬인 가사도는 스님들의 가사를 뜻하고 이 밖에도 주지도(손가락섬), 양덕도(발가락섬), 신들이 모여 산다는 신도, 예불시간이면 북소리가 울린다는 북송도, 관세음보살이 계신다는 우이도, 광대도(사자섬), 방구섬, 밤섬, 소동섬, 닥섬과 혈도, 마진도, 백야도 등 신비스런 전설의 섬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가사군도는 이름처럼 불교적 색채를 많이 띠는 섬으로, 살생을 금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섬들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전설이 내려온다. 진도 지력산 남쪽 산자락에 동백꽃이 아름다운 동백사라는 절이 있었다. 동백사에서 수도하던 노스님이 산 정상에서 수평선 너머 은빛 석양노을과 새떼가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다가 도취되어 바다의 새떼를 쫓아가던 중 벼락을 맞게 된다. 스님은 바다로 떨어지게 되는데 스님의 가사는 가사도로, 장삼은 장산도로, 하의는 하의도, 상의는 상태도, 스님의 불심은 불도의 불탑바위로, 자비스런 마음은 보리섬(교맥도)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수도하는 노스님을 반하게 만든 아름다운 낙조가 바로 세방낙조이다.
지난 2일 진도로 향했다. 진도는 진도대교가 1984년 완공돼 육지와 연결된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진도 대교를 건너는 곳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무려 130여 척에 달하는 왜군에 맞서 대승을 거둔 명량해협이다. 울돌목이라고도 불리는 진도와 해남 사이의 해협은 남해의 바다가 밀려와 서해로 가며 거친 강물처럼 요동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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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대교를 건너는 18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진도에서 가장 높은 첨찰산(485m)이 좌편으로 보인다. 첨찰산 자락엔 진도를 대표하는 사찰인 쌍계사가 자리하고 있다.
진도 쌍계사도 하동 쌍계사와 같이 사찰 양 옆으로 계곡이 있다. 계곡은 천연기념물 제107호 지정된 상록수림이 덮고 있는데 인공보조물이 전무해서 태곳적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 있다.
2015년 쌍계사 대웅전 보수불사를 하면서 단청 안쪽에 그려져 있는 내부벽화를 발견했는데 그 형식이 전통불화 방식인 아교와는 다른 유성계 혹은 아크릴계의 고착제를 사용한 것으로 보여 서양화표현기법으로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로 쌍계사 바로 옆에 있는 운림산방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가인 소치 허련의 화실이었고 이후 5세대에 걸쳐 남도 화단의 중심이 돼왔다. 또한 근대 서양화가 1세대인 김홍식, 오지호, 김환기 등이 여수, 신안 목포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교류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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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에서 활발하게 전개 됐던 문화예술 활동이 섬에 있는 사찰벽화를 통해서도 나타난 것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또한 당시 사찰의 스님들이 기존과는 다르게 서양화 기법으로 벽화를 조성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도 평가할 만하다.
지금은 벽화는 따로 공간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고 대웅전은 아직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상태이다. 대웅전 앞마당에 배롱나무와 동백나무가 있는 데 봄에는 동백꽃이 가을이면 붉은 배롱나무 꽃이 도량을 장엄하는데 혹시 동백이 폈을까 찾아봤지만 역시 아직은 이른 듯 작은 꽃망울 몇 개만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진도는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팽목항이 있는 곳이다. 희생된 이들을 생각하며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또한 천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들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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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엔 바람이 거셌다. 노란 리본들을 세차게 흔들고 있다. 방파제에는 희생된 304위의 영혼들 앞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그날의 일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세월호 기억의 벽’이 세워져 있다. 전국 26개 지역 어린이와 어른들이 4656장의 타일에 그리고 써서 벽을 꾸몄다. 방파제 끝 노란색 리본이 그려있는 붉은 등대로 향하는 한 걸음 한 걸음 기억의 벽을 보며 걷는다. 오래된 노란리본은 이미 헤질대로 헤졌지만 희망을 이어가듯 그 위에는 새로운 노란리본들이 채워지고 있었다. 등대 쪽으로 다가가자 익숙한 종소리들이 들린다. 리본들과 함께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풍경들이 방파제 난간에 걸려 있다. “땡그렁 땡그렁” 겨울 바람이 소리를 내 울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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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한 마음으로 붉은 태양이 떨어지는 세방낙조 전망대로 향한다.
“오늘 잘 오셨어요. 전 진도에 사는데 오늘 낙조가 좋을 꺼 같아 나왔거든요” 해지는 걸 옆에서 바라보고 계시는 어르신에게 불도(佛島)가 어딘지 물어보니 불도를 알려주며 말해준다. 지역에서 문화해설사로 일도 하고 있다고 해서 세방낙조의 유래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예전에 여기 오는 길이 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좁은 길이였거든요. 그래서 세방(細方)낙조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해요.”
그럴듯하지만 불교용어인 시방세계에서 오지 않았나 싶다. 촛불이 방안을 가득 채우듯 붉은 낙조가 시방세계를 가득 채운다는 의미가 아닐까.
해는 점점 붉은 색을 띄면서 해수면으로 다가간다. 전설 속 동백사 노스님이 쫓았던 붉은 해는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잦아든 바람처럼 마음이 평온해진다. 쌍계사 시왕전에 걸린 주련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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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人欲識佛境界
當淨其意如虛空
遠離妄想及諸趣
令心所向皆無碍
사람들이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하거든
마땅히 그 마음을 허공과 같이 맑게 하여라
어지러운 생각의 번뇌가 다하게 하여
도무지 마음속에 걸림이 없어야 할 것이니라
[불교신문3272호/2017년2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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