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영월암 마애지장보살과 나옹스님 |
나옹스님이 기도했다고 전하는 이천 영월암 마애지장보살님으로 불리는 ‘마애여래입상’.
원혼으로 떠도는 어머니 영가를 천도하다 마을 젊은여인 상여행렬 보고 모친 생각 도력 발휘해 살펴보고 49재로 ‘왕생극락’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438번지에 위치한 영월암. 경내에는 나옹스님이 심었다는 우람한 은행나무가 사찰의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 이천 시내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고 설봉산을 등진 사찰 아래에는 이천도자기 축제가 열리는 행사장이 들어서 있다. 대웅전 뒤편에는 지난 1984년 12월에 보물 822호로 지정된 마애여래입상이 서 있다. 원시적인 모습을 한 마애부처님을 불자들은 ‘마애지장보살님’으로 부르고 있다. 여기에는 나옹스님이 어머니를 천도한 효심이 전한다. 인터넷 모 사이트에는 “너무 작아서 아름다운 대웅전”이라는 찬탄이 이색적이다. 영월암까지는 길이 가팔라 4륜 구동차가 아니면 올라오기 힘들다. 그래서 적당히 발품을 팔아야 암자는 그 모습을 드러낸다.
스님은 양주 회암사에서 열린 법회에서 설법을 마치고 주석처인 영월암으로 가던 길이었다. 동행하는 시자도 없이 길을 가던 스님은 지난 겨울동안 겪었던 고난을 생각하며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한번 되뇌었다. “추운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이고, 겨울 추위의 사무침이 없다면 이 봄 사무치는 매화의 향기는 맡지 못할 것이거늘….” [사진 설명] 이천 영월암 대웅전 모습. 봄눈이 설봉산을 휙 지나가자 주변이 스산해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어디선가 상여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누가 이 생을 하직했다 보군. 요령소리가 저리 구슬픈 것을 보니 필시 한 많은 사람이 일찍 이 생을 마감한 것이야. 어디 보자. 떠나가는 영가에게 법문이라도 한 자락 들려주어야겠다.” 스님은 상주도 없이 상여소리를 매기며 이동하는 영가를 보고 놀랐다. “아니 어찌된 것인가? 상여도 없고 관이 지게 위에만 올려져 있네 그려.” 이 생을 떠나가는 마지막 길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나옹스님은 관을 지고 가는 장정 뒤에 함께 따라가는 장정을 보며 물었다. “이 보시요. 누가 이 생을 하직했는데 상여행렬이 이렇게 초라하오?” “아 예 큰스님. 저 아랫마을에 살았던 간난이 어멈인데 살아 갈 날이 아직 창창한데 갑자기 저 세상 사람이 돼 버렸습니다요.” “으흠. 며칠 전에 그 여인네가 자식을 잃고 혼절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소만. 어찌 자식에 대한 애정이 깊었으면 앞서 간 자식을 따라간단 말이오. 참으로 기묘한 인연이로고….”
한참동안 영가를 천도한 스님은 상여행렬을 보내고 다시 영월암으로 향했다. 산길을 오르는데 스님의 뇌리에는 영화필름처럼 간난이 어멈의 행적이 지나갔다. 마음씨가 고와 가난한 살림에도 먹을 것이 있으면 이웃과 나눠먹던 그였고, 마을 어른들을 공경하는 마음이 하늘 같아 칭찬이 자자했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몹쓸 역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더니 급기야 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길로 간난이 어멈은 제 정신을 놓기가 일쑤였다. 가끔씩 먼 하늘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는가 하면, 헛것을 보았는지 이유없이 큰 소리를 지르며 포악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모습을 감추고 마을 어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나옹스님은 자신도 출가하기 전 철친한 동무가 세상을 떠나자 삶에 대해 깊은 회의를 한 적이 있음을 회상했다. “세상사 이슬에 맺힌 물방물처럼 허망한 것이거늘. 그리워 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인생은 서두르지 않아도 충분히 짧고, 가져갈 것 하나 없는 게 이 생의 삶인 것을. 오직 이 생에서 남는 것이라고는 이웃에 베푼 자비심과 보시로 인해 은혜를 받은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내 업식에 남아 다음 생을 윤택하게 해 주는 것을. 그래서 나는 평생 이웃에 보시하고 자비심을 베풀라고 법문하지 않았던가?” 나옹스님은 자신의 출가인연을 떠올렸다. 삶의 근본문제에 부닥쳐 공덕산 요연스님을 찾아갔을 때가 선명했다. “어디서 온 나그네요?” 희뿌연 수염을 흩날리는 선사의 모습에 두 눈에 총기가 살아난 나옹행자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나고 죽음이 있으나, 그 근본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어디로 갈 것인지도 모르는 불나방 같은 내 존재가 궁금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연스님은 나옹행자의 고민 깊이를 보고 큰 그릇임을 알아챘다.
이후 스님은 누님이 출가해 자신에게 염불을 배운 뒤 읊은 ‘부운(浮雲)’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태어남은 어디서 오며, 죽음은 어디로 가는가? 태어남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인데,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다. 태어남과 죽음도 이와 같다네. 여기 한 물건이 있어 항상 홀로 있어 당연이 생사를 따르지 않는다네.” 나옹스님은 무릎을 탁 치며 소리쳤다. “그래 현애살수(懸崖撒水-낭떠러지 끝에 매달린 손을 놓아버린다)인 것이야.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나가야 하는 것이야.” 스님은 갑자기 중국 유학시절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곳에서 인도스님인 지공화상을 만나 가르침을 받은 뒤 더욱 정진에 몰두하고 있을 때 어머니의 타계소식을 접했었다. [사진 설명] 나옹스님이 심었다는 수령 600년이 넘는 느티나무. “어머님은 어떻게 계실까?” 나옹스님은 도력을 발휘해 어머니의 족적을 따라가 보았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집안에 출가사문을 배출하면 9족이 복락을 누린다고 했거늘. 나를 출가시킨 어머니의 영가가 극락으로 인도되지 못하고 중음신으로 떠돌고 있지 아니한가?” 깜짝 놀란 나옹스님은 영월암으로 돌아와 뒤편 마애지장보살님전에 어머님의 영단을 마련해 천도재를 올렸다. 그동안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을 어머님에 대한 미안함에 참회의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나옹스님은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던 어머니를 구제한 목련존자의 심정이 되어 지극한 정성를 쏟아부었다. 천도기도를 시작한 지 49일째 되던해 감응이 왔다. 그동안 왕생극락을 하지 못해 중음신으로 떠돌던 어머니의 영가가 편안한 모습으로 나옹스님 앞에 나타나 합장기도를 하며 미소를 보이며 저 세상으로 떠나가고 있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어머니. 어머니.” 나직히 염송하던 나옹화상의 입에서 천도되는 어머니를 부르고 있었다. “무정했던 아들을 용서하시고 천상에서 복락을 누리소서….” 요즘도 영월암에는 이천읍내는 물론 한양과 인근지역에서도 선망부모 영가를 천도하겠다는 기도 인파가 줄을 이었다. 영월암 암주 홍법스님은 “요즘은 이천 시내는 물론 서울에서도 선망부모님의 영가를 천도하기 위한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천=여태동 기자 [불교신문 2447호/ 7월3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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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암과 나옹스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때는 지금부터 6백여 년전의 일이다. 무학, 지공스님과 더불어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에 3대 화상으로 불렸던 나옹스님이 이천 영월암을 오르고 있었다.
나옹스님은 자신의 바랑에서 요령을 꺼내 들었다. 쩌르릉 소리와 함께 간난이 어멈의 영가를 천도하는 의식과 영가법문이 이어졌다. “나무 불타부중 광림법회…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략 바로기제 세바라야… 원 이차공덕 아미타 극락세계 강림하여 이 생의 인연 끊고 극락세계 고이 나서 영원복락 누리소서.”
그래서 그는 “나 역시 그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범부에 불과하니 다른 선지식을 찾아 보도록 하시오”라는 대답만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옹스님은 그길로 이곳 저곳을 떠돌며 선지식을 찾다가 양주 회암사에서 4년 동안 용맹정진에 들어 큰 깨달음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