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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사찰 템플스테이

“바닷가에서 참선하며 해인삼매”

낙산사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부도는 조선 숙종 18년(1692)에 세운 것인데, 어느 스님의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바다처럼 넓어지겠습니다
바다처럼 깊어지겠습니다
여름, 목마른 계절이다. 무더위 속에서 열심히 일하다 보면 마음도 목이 탄다. 어디 좋다는 해수욕장을 찾아 유유자적 헤엄을 치며, 고된 노동의 시간을 잊어버리는 것. 모든 직장인들의 꿈이다. 물론 몸만 물맛을 본다고 능사가 아니다. 머리까지 식힐 수 있어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마련이다.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主而生其心)’이라고 가르쳤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곧 마음의 갈증은 집착에서 비롯된다. 집착을 끊으면 궁극적인 평화를 얻는다. 바닷가의 절들은 사람들의 육체적 정신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한다. 망망대해 속에서 바다와 같이, 부처님과 같이 깊고 거대한 마음을 건질 수 있다면.
6세기 경 중국에서 유입된 관음신앙은 한국의 대표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한반도의 백성들은 예로부터 관세음보살에 기대어 풍진 세상살이를 위로받았다. 관세음(觀世音), 세상의 소리를 보다. 고뇌에 찬 중생들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고 그에 응답하는 구세주라는 뜻이다. 어머니처럼 푸근한 인상이 신뢰감을 준다. 천년고찰이라면 거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게 관세음보살상과 관음전이다. 언짢은 일을 당하거나 축하받을 경사가 생겼을 때 ‘보살님’들이 무의식적으로 되뇌는 ‘관세음보살.’ 깜짝 놀랐을 때 무의식중에 외치는 ‘엄마야’처럼 들린다. 불자들에겐 관세음보살이 신앙을 넘어 본능으로 굳어졌음을 시사한다.
‘관음 숨결’ 선연한 낙산사
서방정토 발원하는 약천사
달마산 정취 완연한 미황사
양양 낙산사, 인천 보문사, 남해 보리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다. 공교롭게도 모두 해안에 위치했다. 산사라는 이름에서 보듯 한국의 전통사찰이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성장했음을 감안하면 사뭇 이채로운 현상이다. 더불어 어업에 종사하는 삶이 얼마나 신산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일러주는 암시이기도 하다. 관세음보살은 육지와 바다, 삶과 죽음, 차안과 피안의 경계에 서서 삼라만상의 모든 신음을 끌어안는다.
오봉산은 금강산, 설악산과 함께 관동 3대 명산의 하나로 손꼽힌다. 낙산사는 강원도 동해 바닷가 봉긋하게 솟은 오봉산 자락에 자리했다. 정갈하게 둘러진 토담 안의 법당, 관세음보살의 자애로운 미소가 언제나 함께 하는 도량이다. 낙산사는 관음보살이 설법을 펼치며 항상 머물렀다는 보타낙가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낙산사 해수관음상은 넉넉한 눈빛으로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다. 1300여 년 전 한국 화엄사상의 시조였던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던 기억을 형상화한 것이다. 곧 해수관음상을 통해 관음보살은 낙산사에 영원히 살아있다.
해수관음상을 기점으로 원통보전 보타전 홍예문까지 호젓한 ‘절길’이 이어진다. 지난 2005년 발생한 화재의 슬픔은 옛말이다. 원형 그대로 복원돼 이제는 관음의 숨결이 예전처럼 선연하다. 낙산사의 템플스테이는 1000년 동안 농익은 관음신앙의 향훈(香薰)을 선사한다. 물론 관세음보살은 단순히 아름다운 볼거리나 신비한 전설이 아니다. 중생구제의 화신으로 존재한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노인복지시설인 상락원 봉사체험을 삽입한 이유, 중생구제의 화신이었던 관세음보살처럼 살아보자는 취지다.
동양 최대 규모의 대적광전으로 유명한 제주 서귀포 약천사. 사진은 대적광전 앞에서 바라본 서귀포 앞바다.
낙산사가 관음의 품이라면 동해 삼화사는 무릉도원이다. 무릉계곡의 출발점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절이다. 삼화(三和)의 ‘삼’에는 3가지 은유가 중첩돼 있다. 후삼국, 3명의 악신, 3명의 선신이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 왕건이 거듭된 전란에 고통 받던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새로 하사한 사명(寺名)이다. 역사의 뒤안길에는 신화가 아로새겨졌다. 신라 자장율사가 사찰을 창건할 당시엔 흑련대(黑蓮臺)로 불렸다. 한을 품고 죽어서 악신이 된 세 여자를 감화시켜 이들의 도움으로 절을 짓게 됐다는 풍성을 기념한 명칭이다.
삼공사란 별칭도 있다. 3명의 신인(神人)이 절터에 모여 무언가를 모의하고 떠난 뒤 마을사람들이 이러한 이적(異蹟)을 기억하기 위해 삼공(三公)이라 이름했다는 것. 왕건의 배려든 악신들의 한풀이든 선신들의 의기투합이든 화합을 통한 새로운 출발로 주제가 수렴된다. 동해바다에서 바라보는 해돋이가 절경이다. 삼화사 인근 추암(湫岩) 해변. 공중파 방송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 유명세를 탔다. 사람들은 망망대해 너머 뜨거운 일출 앞에서 저마다의 ‘삼화’를 꿈꾼다. 태백산맥을 따라 내려오면 영덕 장육사 역시 해변의 사찰이다. 바다에 인접한 한반도의 동쪽. 명사십리, 장사, 대진, 고래불 등 넓고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줄지어 섰다. 여름철이면 피서객들로 붐빈다.
삶은 고통의 바다 곧 ‘苦海’
삶의 한줄기 희망 빛 ‘海印’
“고해 속에서 해인 깨달아야”
제주도 서귀포(西歸浦)는 이름만으로도 불국토다.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돌아가고픈 불자들의 염원이 담긴 지명이다. 서귀포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약천사.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대적광전이 명물이다. 대적광전의 부처님은 지그시 미소를 머금고 한없이 푸르른 서방세계를 응시한다. 약천사 템플스테이에서도 바닷가 참선을 체험할 수 있다. 오름생태 체험에선 제주도의 푸근한 살결을 느낄 수 있다. 해남 미황사는 국토 최남단 ‘땅끝’에 위치한 절이다. 바다까지는 도보로 2시간 거리. 달마산 자락의 여름 정취를 만끽하며 사찰의 창건의미를 되새기는 ‘걷기 명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남해 용문사가 위치한 곳은 호구산이다. 남해군립공원 지역으로 지금은 유명해졌지만 한때는 산사람들만 정체를 알고 있다는 숨은 산이었다. 중턱에만 올라서도 남해의 아름다운 물빛이 시선에 와락 쏟아진다. 사찰 입장에서 남해의 풍광을 놓치면 아쉬운 게 당연지사. 걸어서 30분이면 도착하는 남해 바닷가.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한려수도의 정취 속에서 참선을 하거나 누워서 별을 바라보며 ‘도인’이 된다. 백미는 별을 보며 발원하기. ‘바다처럼 낮아지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두를 섬기며 살겠습니다. 바다처럼 깊어지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이해하며 살겠습니다. 바다처럼 넓어지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포용하며 살겠습니다.’
해남 미황사에서 불자들이 일몰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불교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두 가지 상반된 은유를 품고 있다. 삶은 고통의 바다라는 뜻의 고해(苦海). 자기가 곧 부처임을 깨닫지 못하면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에 허우적대며 평생을 무의미하게 소비하다 죽을 것이란 경고다. 하지만 해인(海印)이 우리의 비루한 삶에 한 줄기 희망을 선사한다. 거대한 바다가 일체 만물의 모습을 마치 도장을 찍은 것처럼 명확히 비춘다는 의미다. 부처님의 마음으로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상태를 해인삼매라 한다.
참선으로 들뜨고 지친 마음을 다스릴 때 우리는 해인삼매에 빠지게 된다. 고해 속에서 해인을 깨달을 때 중생은 부처가 된다. 이번 여름, 차별 없는 눈으로 보면 부처 아닌 것이 없다는 경지에 도전해 보자.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소금기 총총한 바람은 누구의 날숨인가. ‘살아있으라.’ ‘살아있으라.’ 육지의 뭇 생명들에게 끊임없이 격려의 손길을 내미는 파도는 누구의 정진인가.
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불교신문 2638호/ 7월10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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