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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선문 하나인 동리산문

가풍 잇기 위해 산철에도

20명의 수좌 용맹정진해

 

효녀 심청 효사상 되살려

어르신 경로잔치 여는 등

상구보리 하화중생 서원

   
구산선문 가운데 한 곳인 동리산문 수행가풍을 잇기 위해 산철결제중인 태안사 원각선원 수좌들이 지난 2일 사시예불을 올렸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곡성 태안사. 혜철국사비(碑)에 “수많은 봉우리에 가리어 비치고 물줄기가 맑게 흐르며 길은 멀리 아득해 세속의 무리들이 오는 경우가 드물고, 경계가 그윽히 깊어 승려들이 머물기에 고요했다”고 전해질 만큼 예로부터 마음 공부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로 손꼽히는 수행처다. 특히 태안사는 한국불교 선맥(禪脈)의 원류인 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한 곳인 ‘동리산문(桐裏山門)’ 중심도량이다. 동리산문을 연 개산조 혜철국사는 15세 때 출가해 신라에서 교학과 계율을 공부한 뒤 814년 중국 당나라로 건너가 서당지장선사 문하에서 선을 공부했다. 이를 통해 선(禪)과 교(敎)의 경계가 없어지자 혜철국사는 25년만에 고국 신라땅을 다시 밟는다. 혜철국사가 귀국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신하와 백성들이 운집했다.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것 같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귀국 당시 스님의 위상이 신라 전역에서 상당했음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신라 문성왕도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혜철국사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극진한 예로 대하고 많은 지원을 펼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리산기실’에 따르면 혜철국사는 쌍봉사에서 설법한 뒤 태안사로 옮겨 선당(禪堂)을 열고 경연(競演)을 펼쳤다고 한다. 또한 당시 선종 사찰 가운데 태안사보다 성대한 곳이 없었으며 법회를 열 때마다 청중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는 기록이 전해질 만큼 대가람을 이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일주문과 능파각(凌波閣)을 제외한 모든 전각이 소실되면서 폐사 위기에 내몰리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이후 1985년부터 태안사에 주석한 청화스님이 구산선문인 천년고찰을 중창하겠다는 원을 세우면서 태안사는 점차 사격을 되찾아갔다. 3년간 산문을 나가지 않고 묵언 정진한 청화스님이 직접 등짐을 지고 터를 닦는 각고의 노력 끝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지난 2일 열린 공양미 300석 경노큰잔치에서 어르신들이 점심공양을 갖고 있다.

청화스님 등 많은 스님과 불자들의 노력 덕분에 외형적인 사격을 복원한 태안사는 한국선불교를 대표하는 동리산문의 수행가풍을 되찾기 위해 오늘도 정진 또 정진중이다. 태안사는 해제기간에도 불구하고 원각선원 등지에서 20명의 수좌들이 산철결제에 들 만큼 수행도량으로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태안사 경내에는 토굴을 포함해 6곳의 수행처가 있으며 주지 겸 선원장인 각초스님을 비롯해 총 25명의 스님이 정진중이다. 명적암에는 3명의 눈푸른 납자가 결제와 해제 구분 없이 최소한 3년 정진하겠다며 결사에 들어갔다. 동리산문으로서의 선풍을 이어가겠다는 원력을 세운 각초스님은 산내 암자 가운데 봉서암을 재가선원으로 내놓고 용맹정진할 재가대중도 모집중이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겠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더디더라도 감동과 감응을 통해 내실을 다지는 게 더 중요하다는 지론 때문이다.

태안사가 위치한 곡성군은 효녀 심청의 전설이 오롯이 전해져 내려오는 지역이다. <옥과현성덕산관음사사적>에는 효녀 심청의 모티브인 효녀 홍장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중국 진나라 황후가 된 효녀 홍장과 그 부친 원량의 눈뜬 이야기가 호남지역에서 전승돼 내려오다가 누군가에 의해 고대소설 ‘심청전’과 판소리 ‘심청가’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지난 2일 태안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오랜만에 저잣거리를 방불케 할 만큼 지역민들로 가득 찼다. 효녀 심청의 효사상을 실천하기 위한 ‘공양미 300석 효도큰잔치’를 통해 지역사회와 지역민과 더불어 상생하는 보살행을 실천하겠다고 대내외에 선포한 것이다. 이에 화답하듯 곡성군에 거주하는 1000명 넘는 어르신들이 태안사 대웅전 앞마당을 가득 채웠다. 이는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이나 대형사찰이 성지순례를 올 때를 제외하고는 극히 드문 일로 손꼽힐 만큼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 것이다. 태안사 스님과 신도들을 곡성군 관내 어르신들에게 산사비빔밥을 정성껏 공양하고 연예인 초청공연을 펼쳤다. 불교의료봉사단체인 마하의료회(회장 김정순)의 도움을 받아 양·한방, 치과 의료봉사활동도 펼쳤다. 뿐만 아니라 사진작가 김종권 씨가 태안사의 사계(四季)를 사진으로 담아 낸 전시회도 함께 펼쳐져 봄을 맞은 지역민들에게 오감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각 가정으로 되돌아가는 어르신들의 손에는 선물로 곡성군에서 생산한 오곡을 정성껏 담은 자비의 오곡 주머니가 쥐어져 있었다. 곡성읍내에 살고 있는 양해만(69)씨는 “태안사가 곡성을 대표하는 사찰이지만 불자가 아니어서 학창시절 소풍으로 온 것이 태안사 방문의 전부였다”면서 “절에서 초청해 줘 오랜만에 와서 살펴보니 우리 고장에 이처럼 위용 있는 천년고찰이 있어 자랑스럽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태안사 주지 각초스님은 이날 효도큰잔치를 시작으로 지역민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효녀 심청의 설화에서 알 수 있듯 불교적인 정서가 적지 않은 지역인 만큼 마음과 말, 행동을 일치시킴으로서 신뢰를 회복하고 지역과 하나 되기 위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지역사회를 위해 부처님오신날 즈음해 마을로 내려가 떡국공양을 올리고 동지팥죽도 나누며 지역사회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지역복지시설을 운영하며 보살행을 실천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주지 각초스님은 “효녀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것처럼 태안사는 수행정진과 보살행으로써 곡성군 지역민을 비롯한 국민들의 마음의 영혼을 눈뜨게 하는 날이 멀지 않아 실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안사 전경.

“더뎌도 감동으로 지역민과 소통” 

   
 

 

태안사 주지 각초스님

“구산선문 중 한 곳인 동리산문으로서의 활발한 수행가풍을 되찾아야지요. 하지만 더디더라도 감동과 감응을 통해 진행하려고 합니다. 내실을 다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태안사 주지 각초스님은 동리산문으로서의 수행가풍 계승과 전승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각초스님은 전남대불교학생회 3학년 때 출가한 뒤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30년 넘게 정진한 구참 수좌다. 화엄사 전등선원장도 역임했다. 폐사지인 미타암을 중창해 암주 소임을 10년 넘게 살기도 했지만 사중 살림살이에 매진하기 보다는 묵묵히 수좌의 길을 걸어왔다. 30년 넘는 출가수행자의 삶 속에서 사찰 주지 소임을 맡은 것은 태안사 주지 소임이 처음이다.

각초스님은 동리산문의 명성과 외형적 사격은 갖추고 있지만 사중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 여느 스님들이 주지 소임 맡길 꺼렸지만 자청해서 맡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을 위해서다. “열심히 수행정진한 뒤 회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마음이 정화되면 자리이타행, 보살행을 펼쳐야 해요. 이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 또 정진해야지요.” 태안사의 보살행은 지난 2일 열린 ‘공양미 300석 효도대잔치’로 막을 올렸다. 주지 부임 후 지난 1년간 사중 일을 정리하면서 선원일에 매진한 스님은 지역민과 상생하기 위해 효도잔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부처님 전에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효녀 심청의 효사상이 살아 숨 쉬는 곡성군은 불교적 소양 또한 남다른 지역인 만큼 지역사회를 위한 포교활동에도 매진하겠다고 서원했다. “선방의 안정을 위해서는 앞으로 조금 더 노력해야겠지요. 하지만 수행이 깊을수록 보살행을 펼쳐야 하고 회향하는 삶 또한 기쁘다고 생각합니다. 구산선문 가운데 한 곳인 ‘동리산문’이라는 엄청난 무형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 바로 태안사입니다. 이는 유형문화재인 국보와 보물 못지않은 엄청난 태안사의 무형자산인 만큼 지역사회와 더불어 소중한 자산을 적극 활용하고 보살행도 펼쳐 나갈 것입니다.”

[불교신문3193호/2016년4월13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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