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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총림 수덕사

대웅전 왼편에 있는 관음바위. 관음보살이 현신해 수덕사 중창불사를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바위 위쪽과 아래쪽에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고 위쪽에 관음전이 위치하고 있다.
바위 속 숨겨진 ‘수덕각시’ 전설에서
중생을 찾아온 관세음보살을 만나다
백제의 혜현(惠現)스님은 오로지 <법화경>을 외우는 것을 과업으로 삼고 쉼 없이 기도 정진했다. 스님은 삼론(三論)을 연구하여 오묘한 뜻을 깨치고 사람들에게 불경을 강론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법을 구하고자 혜현스님을 찾았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바로 이 혜현스님이 공부하고 법을 설했던 곳이 덕숭총림수덕사다. 지난 2008년 가을 수덕사 대웅전 건립 700주년 법회에서 1000여 명의 스님들이 한목소리로 <법화경>을 독경한 것도 혜현스님을 기리고 스님의 뜻을 되새기는 자리였다.<법화경>은 ‘대승경전의 꽃’이라 불린다. 관음신앙 또한 <법화경> 안에 담겨 있다.
지난 4월28일 덕숭산은 짙은 안개에 묻혀 있었다. 봄비치고는 제법 빗방울이 굵었다.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듯이 대웅전 앞 경내에는 연등이 끝도 없이 달려 있었다.
국보 제49호 수덕사 대웅전(사진 아래). 지난 2008년 건립 700주년 행사가 열렸다.
1308년 지어진 수덕사 대웅전은 한국 최고(最古)의 대웅전이다. 고려시대 목조건축물로 조형미가 뛰어나 한국건축사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점하는 성보이다. 단청을 입히지 않아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진다.
대웅전 왼편 백련당 뒤에는 거대한 바위가 사연을 안고 있다. 백제시대 창건된 수덕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퇴락했다.
중창불사가 불가피하던 그 때, 한 젊은 여인이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자청했다. ‘수덕각시’라 불리는 여인은 뛰어난 미모까지 갖춰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여인을 사랑한 신라 부호의 아들 ‘정혜’는 불사가 원만 성취된 후 청혼을 받아들이겠다는 ‘수덕각시’의 얘기를 듣고 가산을 보태 10년 불사를 3년 만에 끝냈다고 한다. 마침내 낙성식 날 ‘정혜거사’가 같이 떠날 것을 독촉하자 ‘수덕각시’는 갈라진 바위 속으로 사라지고 버선 한 짝만 남겼다. ‘수덕각시’는 다름 아닌 불사를 돕기 위해 현신한 관음보살이었다. 이후 그 바위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소문이 각지에 퍼져, 찾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전한다.
만공스님이 조성한 관음입상, 정혜사 바로 아래 위치해 있다.
수덕사는 근대 한국 불교의 중흥지로 꺼져가는 선풍을 진작시킨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가풍을 간직한 선지종찰(禪之宗刹)이다. 수덕각시 이야기는 자칫 기복에 치우칠 우려가 있어 더 이상 구전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불자들의 심원 따라 근래에 관음상을 봉안했다.
이유야 어찌됐던 불사에 큰 역할을 한 ‘정혜거사’는 무상을 느끼고 산마루에 절을 짓고 정혜사라고 했다. 정혜사에는 능인선원이 있다. 경허ㆍ만공스님 뿐 아니라 근현대 많은 선지식들이 정진했던 선원이다.
수덕사에서 덕숭산 정상 방면으로 계곡 따라 이어진 돌계단 길을 800여m 오르면 정혜사가 있다. 정혜사 바로 아래 만공스님이 조성한 관음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돌계단 하나하나 천천히 오르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른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장단을 맞춘다.
수덕사=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 2620호/ 5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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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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