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
벚꽃이 연등과 함께 사찰을 장엄하고 있다. 미륵대불과 팔상전은 미륵신앙도량 법주사의 상징이다. 국보 제5호 법주사 쌍사자 석등. 보물 제1361호 법주사목조관음보살좌상. 늦게 찾아온 봄이라 더욱 반갑다. 지난 10일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를 찾았다. 절 마당에는 왕벚꽃이 한창이다. 보통 벚꽃에 비해 훨씬 굵직굵직한 꽃봉오리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줄줄이 달린 화려한 연등과 어우러져 있다. 속세를 여읜 곳, 속리산 깊은 품에서 중생을 굽어보는 미륵대불의 ‘자비미소’ 553년경 인도에서 공부한 신라 의신(義神)스님이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돌아와 절터를 찾아다니던 중 노새가 지금의 법주사 터에 발길을 멈췄다고 한다. 아름다운 절경과 비범한 기운이 서려 있는 이곳에 절을 짓고 법(法)이 머물렀다(住) 해서 법주사다. 법주사는 팔상전과 미륵대불로 상징되는 미륵신앙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륵도량으로 또한 유명한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율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진표율사의 법을 받은 영심대사가 스승의 명을 받고 속리산에 길상초가 피어있던 곳에 법주사를 창건하고 점찰법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이 후 조선 초.중기에는 60여동의 건물과 70여 암자를 거느린 대찰로 이름을 날렸고 지금도 조계종 제5교구본사로서 충북의 으뜸사찰로 법등을 이어오고 있다. 법주사는 현재 미륵대불 개금불사와 원통보전 복원불사로 경내가 분주하다. 금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높은 전나무가 사천왕문 앞에 서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그 유명한 팔상전이 정면으로 보인다. ‘자비미소’ 미륵대불이 왼편에 서 중생을 살피는 눈빛으로 굽어보고 있다. 팔상전을 지나 대웅보전으로 향하다 보면 왼편에 복원불사중인 원통보전이 나온다. 관음보살을 달리 원통대사(圓通大師)라 부르기도 한다. 원통이란 널리 통하여 두루 막힘이 없는 것, 즉 궁극적 깨달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복원불사로 원통보전에 있던 관음보살상은 현재 새로 지은 가건물에 임시로 모셔져 있다. 목조로 조성된 관음상은 높이 2.8m로 머리에는 아름다운 보관을 썼다. 입가에 머금은 미소는 일품이다. 대웅보전서 팔상전에 이르는 앞마당에는 신라 걸작 쌍사자석등이 있다. 국보 5호, 높이 3.3m에 이르는 팔각석등이다. 사자의 조각은 매우 정교하여 크고 둥그런 눈, 머리의 갈기, 몸체의 근육 등이 마치 살아 있는 느낌이다. 올해 서울시청 앞 봉축장엄물도 바로 이 석등모양을 하고 있다. 미륵신앙 도량으로 출발한 법주사는 신라 때 창건했을 무렵에는 대웅보전이 아닌 미륵부처님을 모신 용화보전이 도량의 중심 역할을 했을 것이다. 대웅보전은 기록에 의하면, 1624년(인조2년)에 중건하고 이후 잦은 중수를 거듭했지만 조선 중기 양식을 잘 갖추고 있어 보물 제915호로 지정됐다. 2층 건물 구조로 562㎡(170평)의 내부에는 우리나라 소조불상 중 가장 큰 5.5m 규모의 삼존불이 봉안돼 있다. 대웅보전 앞에는 두 그루의 보리수가 심어져 있다. 깨달음을 서원하는 중생들의 바람을 담은 연등들이 ‘깨달음의 열매’라도 되는 양 보리수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법이 머무는 속리산 법주사, 햇살에 붉은 연등이 환하게 타오른다. 법주사=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 2624호/ 5월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