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중무진법계란 무엇을 의미하나? |
문 : 불교 서적을 보던 중에 ‘중중무진법계’라는 말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전의 설명을 봤지만 현실적으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좀 쉽게 이해할 수는 없을까요? 무한한 다양성과 연관성을 밝힌 것 찰나와 낱낱이 전체를 이루는 요소 답 : 세상의 무한 다양성과 연관관계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얼핏 정반대인 것처럼 생각되겠지만, 공(空)이라는 말과 뜻은 같으면서 표현이 다른 것이지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점차 사물이나 삶을 개념적으로 굳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과 악을 분명하게 나누거나, 희망적이라거나 절망적이라는 상반되는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 이분법적인 사고에 의한 것이지요. 이분법적인 생각의 틀을 깨고 보면, 눈앞의 상황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1+1=2는 산수에서만 있는 답입니다. 우리의 삶이나 세상에서는 모든 수가 다 맞을 수 있는 것이지요. 예컨대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0에서 무한대까지가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원수인 남녀라면 0 혹은 1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부부가 자식을 계속 갖게 된다면 숫자는 계속 많아질 것입니다. 만약 땅과 씨앗이 만나면 답을 정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분석적 차원에서 보겠습니다. 나의 몸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뼈와 근육으로 나누면 훨씬 많아지지요. 세포로 들어가고 다시 DNA로 전개되면 무수해집니다. DNA안의 정보까지 들어가면 이젠 헤아리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그 모든 것이 소중한 것이지요. 반대로 공간을 보는 시각을 확장하는 차원이라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방이 보이다가 다음에는 집이 보입니다. 곧 마을이 보이고 더 큰 도시가 나타나며, 다시 국가가 보이다가 지구로 전개됩니다. 이윽고 태양계로 확대되다가 다시 수많은 태양계로 확장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무한으로 가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시간적이나 공간적, 또는 분석적이나 통합적인 어느 것으로도 제한적이지 않은 것이 우리의 삶이며 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개인이 모두 존귀하며, 우리가 만나는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이 다 소중한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찰나인 지금이 없는 영원도 없고 영원 없는 찰나도 없으며, 티끌이 없는 우주도 없고 우주 없는 티끌도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인생을 말하자면, 모든 사람과 한 줄로 세워 등수를 매길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계속 비교하며 저울질을 하기에 점차 불행해지는 것이지요. 예컨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일등 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것들일 것입니다. 온돌이나 한복이나 김치와 같은 것들이겠지요. 그것들은 이미 일등입니다. 문제는 세계화를 어떻게 시키느냐의 고민과 노력이 남아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대부분 다른 나라가 일등인 것을 따라가려고만 하지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어공부일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영어공부에 쏟는 노력만큼 한국어를 연구하고 세계화하는데 힘쓴다면, 세월이 흐른 후에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겠지요. 개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연구하고 연마한다면 성공하기가 쉽겠지요. 세상에는 의미 없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란 있을 수 없지요. 그러므로 순간의 모습으로 전체를 평가하려해서도 안 되며, 전체만 중시하느라 순간을 무시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하나는 무한으로 통하고, 무한은 하나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송강스님 / 서울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483호/ 12월1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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