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경 |
본성 다 똑같아 누구나 ‘성불’ 능가경과 일맥상통…내용도 엇비슷 상권 ‘대승찬양’ 하권 ‘정진법’ 설파 부처님이 마라야산에 계실 적에 능가성에 있던 나찰왕 비비사나가 부처님께 찾아왔다. 그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의심나는 것이 있어 부처님께 여쭈오니 가르쳐 달라 청하면서 중생을 왜 중생이라 하며, 업의 종류가 몇 가지가 있는가를 묻는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중생이란 많은 인연으로 태어나므로 중생이라 하며, 업에는 신.구.의 삼업이 있으며 또 깨끗한 업이 있고 깨끗지 못한 업이 있으며, 깨끗한 것도 아니고 깨끗하지 않은 것도 아닌 업이 있다고 설해 주면서 중생은 누구나 본래 청정하나 외부로부터 오는 번뇌에 덮여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라 한다. 말하자면 여래장 사상에 해당하는 요지의 설법을 해주고 있다. 여래장사상이란 중생의 자체 안에 여래가 내장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경은 이름 그대로 모든 것은 본성에서 보면 모두 같은 것이라는 이치를 설하고 있다. 현상으로 나타나 있는 차별된 모습은 기실 물에 비친 달그림자나 허깨비 같은 것이라 실체가 없는 것이어서 아무런 차별이 없는 똑같이 공한 성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법문은 <능가경>의 법문과 상통하는 것으로 내용상 닮은 점이 많다. 원효스님도 그의 여러 저서에서 이 경의 이야기를 자주 인용하였다. 이 경의 역자는 천축 삼장 사나야사(奢那耶舍)이며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다. <대승동성경>이 본 이름인데 때로는 <불십지경>이라 부르기도 하고 <일체불행입비로자나장설경>이란 긴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역본으로는 지파가라가 번역한 <증계대승경(證契大乘經)>(2권)이 있다. <증계대승경>이라 이름을 붙인 것은 체험을 통하여 대승의 교의를 바로 알게 하는 경이라는 뜻이다. 또 동성의 범어 어원은 아비사마야(abhisamaya)인데 현관(現觀)이라 번역되는 말로 사물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통찰을 뜻하는 말이다. <동성경(同性經)> 상권에서는 여러 가지 비유의 이야기로써 대승을 찬양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승의 교의는 바다를 건너는 배와 같고 사람이 나고 죽는 이 세상은 괴로움의 바다이며, 출가수행자가 되면 배를 탄 사람과 같고 법을 설하는 자는 뱃사공과 같다고 했다. 저 언덕에 이르는 열반의 길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열려 있으며, 설사 마군(魔軍)이라도 깨끗한 자기본성을 되찾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 하였다. 하권에서는 보살들에게 부처가 되기 위해서 불도를 닦아 나가는 40개의 단계를 설한다. 이를 성문의 단계와 연각의 단계, 그리고 보살의 단계로 나누어 10단계씩을 말하고 그다음 부처의 10단계를 다시 거쳐야 한다고 설한다. 여기서 말하는 10가지 수행지위를 십지라 하여 <불십지경>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수행의 지위는 강물이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처럼 부처님의 지위 곧 비로자나 지혜의 바다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 한다. 부처님의 지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깨끗한 곳이며 화려한 곳으로 모든 중생이 구제되는 곳이라 하였다. 이러한 부처의 지위에 도달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 경을 믿고 배워야 한다는 점도 강조해 두었다. 비비사나 나찰왕은 이 설법을 듣고 보리심을 일으키고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게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는다. 이 장면이 상징하는 의미가 매우 크다.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귀신, 나찰인 마왕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부각시켜 놓은 장면으로 중생이 가지고 있는 천차만별의 업이 있더라도 발심하여 수행하면 성불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생의 본성이 모두 똑같이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본성에서 보면 성불이 불가능하여 부처에서 제외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지안스님/ 조계종 승가대학원장 [불교신문 2370호/ 10월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