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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법흥사의 만다라


<사진> 법흥사 만다라전에 봉안된 만다라.

“만나는 게 늦었군. 오랫동안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그때 대사는 문득 눈앞의 물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병이 병이 아닐 때는 어찌합니까.” “네 이름이 뭐냐.” “절중입니다.” “절중이 아닐 때 너는 누구냐.” “절중이 아닐 때는 이렇게 묻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름 아래에 헛된 일이 없다더니, 절중은 어찌하지 못하겠군. 사람을 여럿 보아왔다만 너 같은 사람은 흔치 않았다.” 절중스님의 행장을 담은 ‘징효대사 보인지탑 명문’의 한 구절이다.



만다라, 마음의 본성에 관한 ‘반면교사’



법흥사는 대표적인 선찰이었다. 중국 당나라 남전보원 선사의 법을 이어받은 절중스님(折中, 826~900)이 이곳에 흥녕선원을 열었다.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사자산문의 개창이다. 서기 821년부터 932년까지 선종을 표방하는 9곳의 사찰이 전국 각지에 세워졌다.

구산선문은 우리나라 선의 출발을 알렸고 법흥사는 역사적 사건의 중심으로 참여했다. 지금이야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으로 훨씬 더 유명하지만 애초엔 그랬다. 1997년 주지로 부임한 도완스님이 참선도량 회복을 위한 중창불사에 매진하고 있다.

<사진> 법흥사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 길.

4년 전에도 법흥사를 다녀갔었다. 몰라보게 몸집이 불었다. 거듭된 전란과 화재로 뼈대만 남았던 사격에 전각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사찰의 종교적 기능 역시 기복에서 수행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중이다. 도완스님은 지난해 불사 1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사자산 법흥사, 21세기 지평과 전망>에서 “법흥사가 한국정신문화의 본거지가 되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구산선문은 다음과 같다. 강원도 영월의 사자산문(獅子山門)을 비롯해 전북 남원의 실상산문(實相山門), 전남 장흥의 가지산문(迦智山門), 곡성의 동리산문(桐裡山門), 강원도 강릉의 사굴산문(捨堀山門), 충남 보령의 성주산문(聖住山門), 경북 문경의 희양산문(曦陽山門), 경남 창원의 봉림산문(鳳林山門), 황해도 해주의 수미산문(須彌山門). 지역은 제각각이지만 당시 신라의 수도 경주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나라에 유학해 대륙에서 유행하던 신사상인 선을 익히고 귀국한 신진 엘리트 승려들은 중앙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거점을 잡았다.

사자산문의 개창자인 절중스님은 흥녕선원에 머무르지 않고 이곳저것 만행하며 주위의 여러 산문과 교유를 맺었다. 거침없는 남행은 무주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다시 올라와 강화도에 적을 둘 때 왕은 그에게 국사를 제의했으나 거절했다. 무늬만 남은 왕조에 섣부르게 가담했다가 훗날 책을 잡히느니 국가 못지않은 병력과 재산을 확보한 지방호족 세력과의 다양한 결합이 보다 안전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그는 최종적으로 왕건을 택했다.

신라의 멸망과 고려의 통일이라는 격변의 틈에서 슬기롭게 대처한 셈이다. 정당이 됐든 국가가 됐든 문명이 됐든 새로운 세계를 열려면 돈과 사람 그리고 명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명분이 민심을 움직이는 데 결정적이다. 경전을 일일이 읽지 않아도 마음의 본질만 간파하면 그 자리에서 부처가 된다는 선종의 종지는, 까막눈인 대다수의 민중을 그리 힘들이지 않고 절 안으로 불러들였다.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지식과 조직으로 무장한 교학불교는 이미 매력을 잃었다. 대중성의 측면에서 닫힌 논리는 열린 마음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선은 언어에 대한 부정마저 부정한다. 끊임없는 변혁과 탈주가

선의 진면목이다. 마음의 때를 말끔하게 닦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깨부숴야 진짜라고 가르친다. 없음으로 있음을 증명한다.

만다라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무언으로 일러주는 반면교사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절 한편에 봉안된 만다라는 좀 애매한 감이 있다. 법흥사의 만다라는 2004년 4월 티베트 스님들을 초청해 만다라 점안법회를 봉행하면서 받은 것이다. 그야말로 특별한 손님이 준 특별한 선물일 뿐 국제교류 이상의 의의는 없어 보인다. 선종의 전통에서도 벗어나 있고 법흥사의 역사와도 상관관계가 없다. 산스크리트어로 ‘본질(manda)을 소유한다(la)’는 뜻을 지닌 만다라는 불법을 도형화했다.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그림이다. 기본 골격은 원과 사각형이다. 중심의 내원에는 밀교의 주존인 대일여래(大日如來)를 위시한 네 부처와 네 보살을 배치했다. 바탕을 대각선으로 구획해 각 방위에 해당하는 색을 칠했다. 바깥 원에는 청 적 흑 백 황의 다섯 색으로 타오르는 화염을 묘사했다. 이것은 다섯 부처의 신체를 상징하는 신성한 색으로 외부의 적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설정됐다.

전문적 지식이 없다 해도 모래를 일정한 체계에 따라 세밀하게 붙여서 만든 정성엔 누구나 감복할 만하다. 만만찮은 인내와 끈기가 요구되는 작업이어서 정신병리학 분야에서 그림치료의 방편으로도 활용된다. 만다라 명상법은 점과 선, 면으로 이뤄진 2차원의 도형에서 4차원 우주공간에 실재하는 신들의 형상을 마음속에 표상해내는 것이 핵심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이를 통해 자기가 신이 되는 것이다. 밀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길이다.

밀교는 인도불교의 마지막 변종이다. 진리는 언어로 나타낼 수 없다는 취지로 밀교라는 명칭이 붙었다. 반면 일반적인 종파들은 현교(顯敎)라고 내외하며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밀교는 대승불교의 토대 위에 민중 사이에 퍼진 주술과 신비주의적 의식을 수용해 발생했다. 무려 700년간 성행하다가 이슬람의 침입과 득세로 13세기 초 인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밀교의 멸망을 끝으로 인도불교사도 종식됐다.

오늘날 인도에서 교단이나 스님, 사찰처럼 불교의 독자적인 원형은 찾아보기 힘들다. 부처님 또한 힌두교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한 명으로 도태됐다. 티베트와 네팔 등 대륙의 변두리로 전파된 밀교는 살아남았다.

국내에서도 토착신앙과 결합돼 명맥을 이었다. 능엄주와 같은 주력신앙에서 흔적을 짚어볼 순 있다. 물론 밀교라는 간판을 내걸고 한국불교사에 주류로 진입한 적은 한번도 없다. 외려 밀교는 남녀간의 성애로 도를 깨친다는 망측한 수행법으로 오해되곤 한다. 대중음악인을 낮추어 부르는 ‘딴따라’의 어원인 ‘탄트라’는 밀교 내에서도 이단시되는 외도다.

어쩌면 스스로의 위상을 말로써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해명하지 않는 버릇에서 불운하게 비롯된 과보라는 생각. 주문을 외워서 극락에 갈 순 있겠지만 법정에서 이길 순 없다. 선이나 밀교나 언어를 부정한다는 점에선 상통한다. 밀교는 부처님 말씀의 문자적 의미보다 경전을 외우는 음성 자체의 영성에 무게를 둔다. 번쇄하기까지 한 만다라의 현란한 문양에서 보듯 언어의 무화는 이미지의 범람을 촉발하기도 했다.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절대적 신성을 향한 존경심의 과잉이었다.

밀교의 쇠망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힌두교와의 합일이다. 인도의 전통종교인 브라만의 의례와 주술을 통째로 흡수했다. 모든 토속 신들도 불교의 세계로 들어와 불.보살.명왕(明王).제석천.범천(梵天).팔부신중(八部神衆) 등으로 환생했다. 이후 브라만이 힌두이즘으로 부흥하면서 불교는 점점 힌두화됐고 종국엔 본질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타를 구별하지 못하는 밀교는 있지만 없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아울러 민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다는 선의는 기복과 미신에 속수무책이었다. 화를 면하고 복을 바라는 인간의 본능에게 절대자의 이름은 예수든 부처든 알라든 상관이 없다. 반면 선은 언어에 대한 부정마저 부정한다. 끊임없는 변혁과 탈주가 선의 진면목이다. 마음의 때를 말끔하게 닦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깨부숴야 진짜라고 가르친다. 없음으로 있음을 증명한다. 만다라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무언으로 일러주는 반면교사였다. 적멸보궁에 힘들게 오르더라도 산길은 여지없이 계속된다.

영월=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불교신문 2401호/ 2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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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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