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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반룡사의 대나무

대나무는 원칙적으로 풀이다. 특정 식물이 나무로 규정되려면 목질부를 지녀야 한다는 게 학계의 정의다. 수관 체관 나이테 등이 구비된 통상적인 나무의 몸통 말이다. 대나무는 이 같은 목질부가 텅 비어있다. 식물학적 갈래도 외떡잎식물 벼목 화본(禾本)과. 벼의 일종이란 이야기다. 열대 지역에서 잘 자라는 대나무는 특히 한반도와 같은 아시아의 계절풍 지대에 흔하다. 대나무가 북방으로 이식될 때 중국의 남방 발음이 이름으로 함께 흘러 들어왔다. ‘竹’의 남방 고음(古音)은 ‘덱.’ 끝소리 ‘ㄱ’이 약화되면서 한국에서는 ‘대’로 변천했고 일본에서는 두 음절로 나뉘어 ‘다케’가 됐다. 선인(先人)들은 혹은 선인(善人)들은 대나무의 극성스러운 직선의 형태에서 지조와 결기의 은유를 발명했다. 대나무처럼 부러질지언정 결코 구부러지지는 않겠다고 버티다 기어코 부러졌다.




竹인들 松인들 무엇하랴…모두 物인것을




<사진> 반룡사 지장전 오른편에 펼쳐진 대숲.

고령 반룡사에도 대밭이 흐드러졌다. 지장전이 놓인 석축 오른편으로 3300㎡(1000평) 넓이에 높이 10미터를 훌쩍 넘는 대나무가 빽빽하게 도열했다. 최대 30미터까지 자라는 운명을 감안하면 아직 성에 안 찰 신장이다. 조선 영조 재위 시인 1760년대에 쌓은 석축은 조만간 문화재로 등록될 예정이다.

시멘트가 아닌 흙으로 화강암 사이사이를 촘촘하게 다진 고풍스러운 교직은 대밭에 이르러 좀더 직선의 원형에 다가간다. 양감도 한결 풍성해진다. 2월말. 반룡사의 대나무는 겨울의 문턱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미숭산에서 유일한 녹색으로 살아 숨쉰다. 대숲의 끝자락에선 전통양식의 해우소를 마주친다. 통나무를 뭉텅뭉텅 잘라 엮은 해우소의 갈색과 대숲의 날카롭고 반듯한 푸른빛이 뒤엉키면 시간이 사라진다. 21세기여도 11세기여도 선사(先史)여도 상관없는 아득한 평화를 만난다.

반룡사가 자리한 미숭산은 흡사 산들의 성지다. 미숭산을 중심으로 백두대간의 각종 줄기가 연꽃처럼 휩싸고 있는 형국이다. 서북으로는 덕유산 가야산 수도산 두모산 오도산, 동남으로는 비슬산 화왕산 관주산 영축산이 겹겹으로 원을 그리며 끌어안았다. 가야산 해인사의 홍류동계곡과 성주의 대가천계곡이 반룡사 앞 회천에서 만나고 회천은 다시 낙동강으로 흐른다.

대나무는 좀처럼 꽃을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피면 대밭의 모든 나무가 일제히 몸속에서

꽃을 끌어 올려 내뿜는다. 그것은 영양분을 전부 소모한

결과이므로 대나무는 이내 말라 죽는다. 나무여도 괜찮고

풀이어도 괜찮은 물물(物物)의 장렬한 떼죽음.

낙동강은 팔만대장경이 해인사로 들어가던 관문이었고 회천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개경포는 대장경의 중간 선적지였다. 결국 회천도 성보의 이송에 일정하게 조력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물길이다. ‘이적’도 경험할 수 있다. 미숭산의 고도는 775미터이고 반룡사는 500미터 남짓이다. 그럼에도 절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해발 1000미터의 비슬산이 한참 아래로 보인다. 반룡사 주지 법륜스님은 연전에 어느 무명의 향토사학자로부터 절이 선 땅이 제왕지지(帝王之地)라는 평가를 들었다.

임금이 태어날 만한 최고의 길지임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신이(神異)는 안개다. 반룡(盤龍)이란 이름은 용의 기운이 서려 있다 해서 붙여졌다. 자고로 용이 드나드는 곳은 안개가 짙다고 했다. 그러나 반룡사 주변은 언제나 쾌청했고 주지 스님은 까닭모를 이설을 무감하게 넘기고 말았다. 그러던 중 새벽 무렵 아침을 먹기 위해 공양채로 올라가다가 급기야 전설을 맞닥뜨렸다. 전설은 불처럼 살아있었다. 두껍고 묵직한 운무의 바다는 산을 주저앉힐 만한 기세였다. 허옇게 질린 산하는 과연 반룡이었다.

<사진> 1760년대에 조성된 지장전 뒤쪽의 석축.

명당이란 성공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결집되고 극화돼 땅에 이입된 것이다. 고려의 전기와 후기를 가를 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무신의 난으로 인해 불교계도 홍역을 치렀다. 무신정권이 성립되기 전 불교계의 주류는 왕실과 귀족에 밀착한 교종이었다.

무신들의 득세로 힘을 잃은 교종은 잔존한 구세력과 결탁해 군부에 극렬하게 저항했다. 반면 군부의 외호로 새로운 주류로 부상한 선종은 전국 각지에서 신앙결사 운동을 전개하며 실천불교를 주창했다. 대표적인 것이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로 고려 중기 조계종의 기원이다.

반룡사에도 요일(寥一)이 이끄는 결사가 활동했다. 그는 명종의 숙부로 교단 최고 권위인 승통(僧統)을 지냈다. 다른 것은 이들의 경우 무신정권 이전 교단의 기득권을 쥐었던 화엄종 계열이었다는 점이다. 결사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신라시대부터 이어온 전통이었다. 일상 속에서 불교를 구현한다는 취지의 결사는 상당수 붕당의 개념으로 변질됐다. 염불을 위주로 개인적 왕생을 빌었고 종교적 독립성과 윤리성으로부터 조금씩 괴리됐다. 어쩌면 명당의 본원적 기능에 매우 가까이 근접한 것일 수도 있겠다.

미숭은 고려 말을 살았던 이미숭(李美崇) 장군을 기린다는 뜻이다. 미숭산의 용을 이용해 고려의 국통을 되살리려다 끝내 좌절한 인물이다. 1346년 여주 이씨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다수의 전공으로 정4품까지 올랐다. 이성계의 신왕조에 반기를 들고 수하를 규합해 저항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충청도 예산과 강경에서 싸우다가 남하하여 경상도 금릉과 성산에서 싸웠다.

패퇴와 패퇴 끝에 고령과 합천의 접경지역인 상원산(上元山)에 들어가 배수진을 쳤다. 성을 쌓고 군사를 조련해 후일을 도모했지만 대세는 이미 전주 이씨의 천하로 굳어진 뒤였다. 어쩔 수 없이 울분을 참고 거사를 포기했으며 산중에 은거하며 천수(天壽)를 마쳤다. 그가 죽은 후 세인들은 충의를 추모하기 위해 상원산을 미숭산이라고 불렀다. 갑검릉(甲劒陵), 주마대(走馬臺), 순사암(殉死巖) 등의 지명에 칼을 빼보지도 못한 채 녹슬어버린 무(武)가 묻어난다.

이미숭의 고종명(考終命)은 자연인의 입장에서 보면 축복이지만 충신의 입장에선 변절이다. 대나무가 잘 부러지는 이유는 속이 비었기 때문이다. 별달리 가진 것도 아는 것도 없으니 부러져도 뭐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중생들이다. 우후죽순(雨後竹筍). 비만 한번 와줘도 주위를 제 몸으로 온통 물들이는 엄청난 생장속도. 다른 기관에 영양분을 공급할 필요 없이 오로지 외양을 키우는 데만 힘을 쏟으면 되는 운명의 증거다. 사람들은 목숨보다 중한 신념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죽음을 불사한다.

몸을 넘치고 분을 넘치는 명분에의 집착. 대나무를 본받은 죽음이라면 대나무가 얼마나 황당하고 미안하게 생각할까 싶다. 산중에 가면 마치 구렁이가 기어오르는 듯 기괴한 모습으로 자라난 소나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속이 꽉 찬 소나무가 자신이 가진 속을 잃지 않기 위해 벌이는 그악스러운 몸짓,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다 저도 모르게 만들어낸 아름다운 골곡일 것이다. 사시사철 푸른 잎을 소유할 수 있는 연원도 볼썽사나울 만큼 지독한 생명에의 열정 덕분이란 생각. 삶의 형태는 극단적으로 딴판이지만 대나무와 소나무는 모두 절개의 상징으로 칭송받는다.

인간이 자연을 자의적으로 재단해 놓은 ‘칙(則)’의 영역에서 송죽은 되바라지거나 멍청한 구석을 들키고 마는 허술한 가치들이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삼각형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듯 삼라만상의 모서리를 죄다 포섭할 수 있는 잣대란 없다.

‘물(物)’의 영역에서 보면 남김없이 똑같고 동등하다. 이러저러하게 태어나 이러저러하게 살다가 이러저러하게 죽는 생명일 뿐이다. 돌처럼 바람처럼 사람처럼. 대나무는 좀처럼 꽃을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피면 대밭의 모든 나무가 일제히 몸속에서 꽃을 끌어 올려 내뿜는다. 그것은 영양분을 전부 소모한 결과이므로 대나무는 이내 말라 죽는다. 나무여도 괜찮고 풀이어도 괜찮은 물물(物物)의 장렬한 떼죽음.

고령=장영섭 기자

[불교신문 2407호/ 3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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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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