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02025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봉정사 극락전

고려 중기에 건립된 봉정사 극락전.

800년을 이어온 극락왕생 염원

국보 15호…국내 最古 목조건물

고려때 통일신라양식 본따 축조

정면에만 門이 있는 감실형

안동 봉정사는 신문왕 2년(682)에 의상대사가 지은 사찰로 알려진 곳이다. 사찰창건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는데,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종이로 만든 봉황새를 날려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봉황새가 머물렀던 절이란 뜻의 봉정사(鳳停寺)가 됐다.

봉정사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당우가 있다. 국보 15호로 지정된 극락전이 그것이다. 1972년 해체.수리할 당시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돼, 적어도 1363년보다 100년이나 150년 정도 앞선 12~13세기 고려 중기 무렵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외형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가공석 및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기둥은 가운데가 볼록한 배흘림 형태고,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극락전이 고려 양식이면서 신라의 건축 양식을 간직한 고식이라는 것은 기둥머리에 놓이는 목침과 같이 생긴 부재인 주두(柱頭)를 보면 알 수 있다. 주두 굽의 단면이 굽받침 없이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이런 형식은 신라 시대부터 사용되어 왔던 것이다. 첨차(遮)도 장식 없이 사각형으로 돼 있어 소박하고 간결한 고구려 미학을 보여준다.

또 대부분 법당에 문이 어간과 좌우 협칸에 나 있는 것과 달리 봉정사 극락전은 앞면 정면에만 문이 있고, 나머지 3면에는 문이나 창이 전혀 없는 감실(龕室)형이다.

앞면 가운데 칸에만 문을 달고, 좌우 협칸에는 살이 각 11개가 달린 광창을 달았는데, 이는 1972년 수리 당시에 고려시대 모습을 추정해 만든 것이다. 이어 봉정사 극락전은 지난 2001년, 처마와 공포 부재가 처지고 벽체에 균열 현상이 발생하자 해체.보수돼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

극락전은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모신 곳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분이다. 정토신앙이 발달했던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극락정토에서 왕생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아미타불’을 염송하며 아미타부처님을 믿고 의지했다.

봉정사 극락전에도 2개의 고주를 세워 그 사이에 이동식 불단을 설치하고, 불단 위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다시 그 주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 윗몸을 짜맞춘 뒤 다포식 구성을 지닌 닫집을 씌운 형태다.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다. 봉정사만의 특징이라 한다면 보통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셔져있을 경우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는 것과 달리 좌우 협시보살이 모셔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본존불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는 후불탱화가 봉안돼 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297호/ 1월27일자]

'불교유적과사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석사 무량수전  (0) 2008.11.29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  (0) 2008.11.22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0) 2008.11.08
법주사 쌍사자 석등  (0) 2008.11.01
개령암터 마애불상  (0) 2008.10.26
Posted by 백송김실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