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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영월 보덕사

영월 보덕사 일주문에 서면 큰 키의 느티나무들이 보인다. 천왕문을 대신해 서있는 듯, 도량의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사진>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장릉.





<사진> 단종의 넋을 위로 하듯 장릉으로 가는 길 곳곳에는 돌탑이 세워져 있다.





<사진> 단종이 유배생활을 했던 청룡포.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한쪽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배를 타야지만 들어갈 수 있다.





<사진> 120여년 역사를 간직한 사찰 특유의 전통방식으로 설치된 보덕사 해우소.




단종의 애달픈 넋 위로하듯



풍경소리 마저 숙연함 가득




1457년 단종은 강원도 원주 주천을 거쳐 영월 청룡포로 향한다. 이보다 1년 전인 1456년에 성삼문, 박팽년 등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되는 바람에 모두 처형 당한 끝이었다. 이후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유배의 길을 떠나왔다. 영월군 남면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청령포에 닿았다. 동쪽과 남쪽, 북쪽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으로는 험준한 암벽이 솟았다.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나오기 힘들다. 입춘이 이틀 지난, 지난 6일 단종의 유배지인 청룡포를 찾아갔다. 강에서 피어오르는 짙은 안개는 외로운 섬 하나로 뵈는 청룡포를 푸근하게 덮고 있었다.

배를 타고 들어가려 했건만, 강물이 얼어 배 운행이 멎었다. 청룡포부터 단종이 묻혀있는 장릉까지는 3km 거리. 평일 오전이라 장릉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잘 정비된 소나무 숲길을 따라 300m 가량 걸어다가 작은 언덕에 올라서면 단종의 무덤이 나온다. 단종의 시신은 강물에 던져졌지만 삼족을 멸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엄흥도라는 충신이 시신을 수습해 암장했다고 전해진다. 200여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복위되어 왕의 무덤인 장릉에 다시 묻히게 된 사연이 흥미롭다.

장릉 인근에는 단종의 한맺힌 죽음을 달래주기라고 하는 양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보덕사다. 보덕사는 숙종 31년인 1705년 대금당(大金堂)을 건립하면서 단종 장릉(莊陵)의 원찰로 지정됐다. 영조 2년인 1726년 장릉을 수호하기 위한 조포사(造泡寺)로 지정되는 등 단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사찰이다. 이후 보덕사는 해마다 단종의 추모행사를 봉행해왔다. 일제강점기 때 중단된 이래 지난 2003년부터 다시 열리고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보덕사 일주문에 들어서면 450살이 훨씬 넘었다고 전해지는 높이 20여m 규모의 느티나무 일곱 그루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보덕사 옆으로는 단종이 궁중생활을 할 때 꿈에서 보았던 암자로 알려진 금봉암이 있다. 금봉암을 지나 장릉 뒤쪽으로 돌아가는 5km 정도의 호젓한 오솔길은 장릉의 웰빙 등산로로 정비돼 있어 찾는 이들에게 인기 만점의 산행코스다. 이 길을 걷노라면 500년 넘게 살아온 오래된 소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삶의 희노애락을 내려보기라도 하듯, 넉넉한 마음을 내뿜어 준다.

멀리 산노을이 질 무렵이면, 쓸쓸하게 죽어간 단종의 애달픈 넋이 하늘거리는 풍경소리에 젖어 부서지는 숙연함마저 풍기는 길이다.

영월=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 2500호/ 2월14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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