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스캇 스케터굿 김수희 부부“우리집은 韓-英語가 공용어” |
지난 9일 방문한 김수희(39) 국제포교사 가정에서는 영어와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오고갔다. 김 포교사가 “피아노 숙제 마치고 동생과 컴퓨터 게임을 해도 좋다”고 아들 산(9)이에게 한국어로 당부했다. 그러자 능숙한 영어로 “알겠어요. 1시간 이내로 숙제 마치고 만화 볼게요”라며 김 포교사의 허락을 받아냈다. 책을 읽고 있던 남편인 스캇 스케터굿(48) 아주대 언어학부 교수도 “맡은 숙제는 다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들 가정에서 2개 국어가 오고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국제포교사와 교수의 특별한 불교사랑 “불교 알기 전부터 불자였던 것 같아”
스케터굿 교수와 김 포교사가 지난 9일 두 자녀와 함께 동화책을 읽고 있다. 신혼산림을 영주시 풍기읍에서 시작한 부부는 산과 바람이 좋아 비로사(주지 성공스님)를 자주 찾았다. 절에서 가족처럼 챙겨준 까닭도 있지만 마음이 편안해 져서 찾은 이유가 더 크다. 연등도 만들고 절 밥 먹는 게 마냥 좋았다는 부부는 “그때 우리는 무늬만 불자였다”며 해맑게 웃었다. ‘무늬만 불자’에서 불교로 입문한 계기는 김 포교사가 어머니를 여의고 부터다. 이 무렵 스케터굿 교수가 아주대 교수로 임용돼 수원으로 거처를 옮긴 뒤였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김 포교사는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 괴로운 건 남편도 마찬가지. “우연히 친구에게서 받은 불교 서적에서 윤회라는 것과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고감을 알게 됐다”는 김 포교사는 그날로 불교에 심취했고 국제포교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뜻을 같이 한건 남편도 마찬가지.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로 바쁜 일과를 보내는 와중에도 부인이 하는 일을 틈틈이 도왔다. 국제포교사에서 주최하는 영문 자타카 암송대회 심사며 면접 인터뷰, 영문불서 번역 감수 등 여러 가지를 도왔다. 그러면서 불교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 스케터굿 교수는 “불교를 알기 전부터 불자였던 것 같다”면서 “외국인 스님들의 법문을 번역하는 일이 행복했다”고 떠올렸다.
스케터굿 교수와 김 포교사가 영주 비로사에서 찍은 가족사진 김 포교사와 스케터굿 교수는 “언젠가 아이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될 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지만 크게 문제될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어느 쪽을 선택해도 상관없다”는 스케터굿 교수는 “자율적으로 선택을 잘 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부부는 오늘도 마음공부에 매진한다. 김수희 국제포교사는 매일 108배를 하고 스케터굿 교수는 ‘팔정도’를 마음에 새긴다. “모든 일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마음을 잘 다스려 모든 일을 슬기롭게 해쳐나갈 겁니다.” 수원=홍다영 기자 hong12@ibulgyo.com [불교신문 2503호/ 2월25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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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 국제포교사가 남편 스케터굿 교수를 데리고 고향 성주를 찾은 건 1997년. 김 포교사집안에선 낯선 미국인을 반기지 않았다. 반대로 스케터굿 교수의 집안은 경사 분위기였다고 한다. 30을 훌쩍 넘긴 아들에게 결혼 상대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허락을 받아내기에 충분했던 것. 할 수 없이 김 포교사는 그날이후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 준비를 감행했다. 결국 자식 앞에 장사 없다고 부모의 허락을 받은 김 포교사는 스케터굿 교수와 그해 2월21일 결혼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것’을 자녀들에게도 가르치고 있는 부부는 아들 산이와 딸 효은(7)이가 사춘기를 잘 넘기고 원하는 일을 하며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