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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중원 미륵사지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머금은 미륵부처님.

<사진> 북쪽으로 향해 서있는 미륵사지는 신라말에서 고려초 사이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숱한 사연들이 하늘까지 이어지는 고갯길 하늘재.



<사진> 미륵대원터를 지나 하늘재 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미완성 마애불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 미륵사지의 중창불사를 해나가고 있는 미륵세계사.







봄볕 같은 미륵부처님 ‘미소’

저 산 너머엔 당도했을까



입춘이 지난 지 한참 지났건만 아직 아침저녁으로 싸늘하다. ‘꽃샘추위’라고 했던가?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을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겨울은 아직 자리를 내주기 싫은 듯 버티고 있다. 오죽했으면 2월을 ‘시샘달’이라고 불렀을까. 지난 2월20일 미륵세계사가 있는 중원 미륵사지를 찾아가는 길도 싸늘한 겨울기운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봄옷을 미리 꺼내입은 터라 옷깃을 여미면서 ‘마지막 겨울’을 실감했다.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얗게 펼쳐진 길에 발자국을 찍으며 걷는 맛이 솔솔하다. 가뿐한 마음으로 금세 미륵사지에 도착했다.

문경 관음리에서 수안보 미륵리로 넘어 오는 길을 ‘하늘재’라고 부른다. 지릅재, 겨릅사, 대원령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라가 북진하려고 아달라왕 3년(156년) 4월에 죽령과 조령 사이의 가장 낮은 곳에 길을 개척한 계립령은 신라의 대로다. 죽령보다 2년 먼저 열린 이 길이 문헌상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525m의 이 고갯길에 어떻게 하늘재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고구려 온달장군이 남진을 위해, 후삼국의 궁예와 망국의 한을 품은 마의태자도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숱한 사연들이 이 길의 높이를 하늘까지 올려놓은 듯 하다.

관음리서 올라오기 시작한 하늘재는 정상을 지나서 비로소 부드러운 내리막길로 이어져 있다. 그 고갯길 끝자락엔 무사히 내려온 사람들을 부드러운 미소로 맞이하는 거대한 미륵부처님이 있다. 높이 11m의 보물 제96호 괴산미륵리석불입상이다. 국내 유일하게 북향으로 자리잡은 마애불. 마의태자의 동생인 덕주옹주가 봉안한 것으로 알려진 월악산 덕주사 마애불을 바라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중원 미륵사지에는 미륵부처님과 5층 석탑(보물 제95호), 석등, 당간지주, 아래쪽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미완성의 귀부가 있다. 하늘재로 향하는 길 우측에는 지리적 요지에 위치한 정류장 역할을 하던 미륵대원터가 있고 그 위에 미완성마애불과 3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미륵사지 옆에는 과거 융성했던 사찰을 복원하기 위해 미륵세계사가 중창불사에 한창이다.

간밤에 쌓인 눈이 강한 바람에 회오리치며 다시 하늘에 뿌려진다. 아직 한겨울 날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깊은 산 속. 천년이 넘도록 미륵부처님은 이곳에서 오가는 중생들, 피고지는 꽃나무, 나고지는 온갖 생명을 바라보며 그렇게 서 계셨나 보다.

충주=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 2506호/ 3월7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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