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청룡사 |
![]() 야외전용공연장이라 객석 바로 앞이 무대이다. 줄타기 공연 사이사이에도 재담이 오가며 흥을 돋우고, 본격적인 풍물놀이에는 바우덕이 풍물패의 관록이 묻어난다. ![]() 안성 남사당패의 근거지였던 청룡사 전경. ![]()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은 단아한 분위기의 고려후기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고개를 앞으로 숙인 자세를 볼 때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 대웅전은 나무 그대로를 기둥으로 사용하였는데, 측면과 뒤쪽 기둥의 모양이 더욱 재밌다. ![]() 서운산 청룡사 현판 뒤로 대웅전이 보인다. 민초에 ‘신명’ 전한 남사당패… 그들은 부처님 품서 위안 받다 가을이 깊다. 친구끼리 무릎담요를 준비해 오기도 하고, 담요 한 장을 펼쳐 가족이 같이 두르기도 하고, 남자친구의 점퍼를 걸치고 공연을 기다리기도 한다. 토요일 저녁 안성 남사당전수관 야외공연장에는 남사당 바우덕이 토요상설공연이 있다. 쌀쌀한 날씨에도 입소문을 듣고 온 이들로 공연장은 이미 만석이다. 어름산이의 줄타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풍물놀이가 이어진다. 바우덕이 풍물패는 지금도 전국에서 손 꼽히는 남사당패다. 조선후기 경복궁을 재건할 때 공역에 동원된 백성들에게 신명나는 힘을 불어 넣은 안성 남사당패가 있었으니 그중에서도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기인이 바우덕이였다. 바우덕이는 남사당패 최초로 15세에 여성 꼭두쇠로 추대되었으며, 경복궁 재건에 기여한 공로로 그녀가 이끄는 안성 남사당패에 정삼품 당상관 벼슬에 상당하는 옥관자가 수여되었다. 이렇게 받은 옥관자를 사당패 깃발에 걸어 앞세우고 가면 전국의 모든 사당패가 만장기를 숙여서 예의를 표하였다. 그러므로 전국 공연단체 중에서 대장 역할을 담당한 바우덕이가 이끄는 안성 남사당패는 전국 어디에서건 공연이 가능한 최초의 전국구 공연단체가 되었다. 이런 안성 남사당패가 공연할 때 안성 청룡사 스님들이 쓴 부적을 팔아 사찰불사에 보태기도 하였는데, 이는 청룡사와의 깊은 인연 때문이다. 청룡사가 위치한 지역이름이 ‘불당골’이라 불린 만큼 사찰 중심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안성 남사당패는 불당골을 근거지로 공연을 다녔으며 먹을 것이 부족한 겨울에는 청룡사 경내에 머물며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청룡사는 고려 원종때 서운산 기슭에 명본국사(明本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대장암(大藏庵)이라 하였으나 고려 공민왕때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고 청룡사로 고쳐 불렀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절 안에는 대웅전(보물 824), 관음전, 관음청향각, 명부전 등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명본국사가 세웠다는 삼층석탑 등이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은 다포계의 팔작집으로 고려 공민왕 때에 크게 중창하여 고려시대 건축의 원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다. 법당 안에는 조선 현종 때 만든 5톤 청동종이 있고, 큰 괘불이 있어 대웅전 앞에 괘불을 걸 돌 지주까지 마련해 놓았다. 구불구불한 아름드리나무를 껍질만 벗긴 채 본래의 나무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 기둥으로 세웠다. 안성=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불교신문 2566호/ 10월17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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