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박동천 마야민트엔 부부 |
지난 18일 박동천 마야민트엔 부부가 아들 진호 군과 딸 유진 양과 함께 집 근처 텃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있다.
“‘부처님 나라’ 미얀마에서 내 삶의 반쪽 찾았습니다”
1998년 결혼 아들 딸과 ‘오순도순’ “노후엔 수행하며 남 도우며 살고파”
“미얀마에서 지낸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하네요.” 지난 18일 박동천(45).마야민트엔(33) 씨 가정을 찾았다. 이날 박동천 씨는 “어머니를 여의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찾은 미얀마에서 짝을 만났다”면서 “아들 딸 낳고 불교공부를 함께 할 수 있는 부인이 있어 행복하다”며 빙그레 웃었다. 지난 1997년 겨울. 석불을 만드는 석공이었던 박동천 씨는 그해 어머니를 여의고 한국을 잠시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가 택한 나라는 불탑의 나라 미얀마. 박 씨는 공장 책임자로 현지인들과 함께 불상을 만들어 한국에 파는 일을 했다. 그곳에서 우연한 계기로 마야민트엔(33) 씨를 만났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마야민트엔 씨는 박 씨가 일하는 공장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던 그녀는 친구로부터 한국어 책을 빌렸는데, 그 책이 바로 박동천 씨의 책이었다. 박 씨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던 친구가 그녀에게 책을 빌려준 것이다. 이후 마야민트엔 씨가 직접 책을 돌려주면서 서로 만나게 됐다. 그때 일을 떠올린 박 씨는 “처음 만났을 때 맑고 깨끗한 목소리에 반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때부터 박동천 씨의 구애가 시작됐다. 마야민트엔 씨가 결정적으로 결혼을 결심한 계기는 박 씨의 착한 마음씨를 알고부터다. 타국에서 생활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 미얀마에서 지내는 동안 고아나 노인 등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모습에 그를 다시 보게 됐다. 독실한 불자인데다 함께 살면 앞으로 배울 점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부는 지난 1998년 5월 처가에서 미얀마 전통의식에 따라 다섯 분의 스님을 모시고 주민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는 미얀마에서 5년 동안 살았다. 전기와 전화는 물론, 물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오지에 속하는 곳이었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장인, 장모와 함께 살았지만 특별한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다. 문화와 언어는 달라도 서로의 진심은 통했던 것이다. 박 씨는 특히 장모님이 만들어준 김치만큼은 잊지 못한다. 한국에서 먹는 것처럼 양념과 재료를 갖춰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에 비교할 수 없었다. 빨간 고추에서 씨를 빼 빻아 말린 고춧가루와 배추를 버무려 소금으로 간을 맞춘 ‘장모님 표 김치’는 박 씨의 건강을 책임졌다. 부부는 현재 논산시 광석면에서 아들 진호(11)와 딸 유진(8)이와 오순도순 살고 있다. 박 씨는 십 수 년 해온 석공 일을 접고 부인과 집 근처 회사를 다니고 있다. 퇴근 후 텃밭을 들러 고구마, 양파, 배추 등의 작물을 자녀들과 키우며 화목을 다지고 있다. 박동천 씨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다. 진호와 유진이가 자라면 마야민트엔 씨와 다시 미얀마로 돌아가 사는 것이다. 박 씨는 “늙어서 명상센터를 다니거나 집에서 공부하며 남은여생을 부인과 수행하며 살고 싶다”면서 “여력이 된다면 소외된 이웃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마야민트엔 씨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며 “지금 이 순간이 바로 행복이 깃들어 있는 자리”라며 미소를 지었다. 논산=홍다영 기자 hong12@ibulgyo.com [불교신문 2569호/ 10월2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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