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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2번 출구, 거대 서울이 한눈에 보인다
'고작 요만큼 올라와도' 서울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아차산 고구려정 앞. 마스크를 착용하고 올라온 이들도 여럿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력에 일상은 일그러졌다. 이쯤 되면 누구나 평온했던 지난날들이 그리워진다. 그리워지는 지난모습은 어찌 보면 친근하게 반복되었던 어릴 적 뛰 놀던 동네 뒷동산 풍경과도 같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오를 수 있는 서울 아차산은 해발 300m 내외의 낮은 산이지만 주변에 이렇다 할 산이 없다 보니 우뚝 서 있는 모양이다. 어깨를 맞대고 이어지는 용마산까지 합쳐서 통칭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 대공원 후문 근처를 시작으로 보면 망우리 공원까지 이어져있어 능선은 제법 길다.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이들은 산에 사는 매가 마을을 자주 맴돌았던 기억이 생생하다하고, 몇 해 전에는 산양이 출몰한 적도 있다.

광진구에서 중랑구까지 뻗은 산에서 콕 찍어 향한 곳은 ‘고구려정’이라는 전망대다. 지하철5호선 아차산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산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10분정도 오르막길로 마을을 지나, 0.7km만 산행을 하면 된다. 지하철역에서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가는 길은 가로와 세로의 둘레길과 등산로가 서로 만난다. 잘 정비된 덕에 어린아이도 쉽게 오를 수 있다.
 

고구려 기와의 색상과 고구려 벽화의 문양을 참고해서 지었다는 고구려정.

고구려정에 오르니 산기슭 사이로 절묘하게 남동쪽 방면으로 서울이 툭 트여 보인다. 밑으로는 광나루에서 구의동 방향, 그 다음은 한강의 올림픽대교와 잠실대교가 보이고, 그 넘어는 강남이다. 뒷동산 삼아 오래전부터 이곳을 오르던 사람들은 지금도 팔각정이라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한강과 어우러진 서울 풍경을 불수 있는 이곳은 원래 1984년부터 콘크리트 건축구조의 팔각정이 있었다. 건물의 노후화로 기울어지자 2009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짓고 고구려정이라 이름을 붙였다.

정자 앞에는 울긋불긋한 넓은 바위가 큰 풍채를 자랑하며 펼쳐져 있다. 코로나로 초중고 개학이 늦춰져,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온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전날 비가 제법 내려 맑고 깨끗한 풍광을 기대했다. 하지만 다닥다닥 붙어사는 우리네들이 하루를 참지 못하고 피어올린 먼지가 모여 이날의 서울 민낯이 되었다.
 

영화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발길을 되돌려 곧장 밑으로 내려왔다. 10분이면 영화사 일주문과 마주한다.

영화사(永華寺)는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의상대사가 화양사(華陽寺)란 이름으로 창건했다. 이후 몇 차례 옮겨졌다. 조선 태조 4년(1395년)에는 이 사찰의 등불이 궁궐까지 비친다하여 용마산 기슭 군자봉으로 옮겨짓게 하였다가 1907년에 이르러서 현재의 자리로 다시 옮겨오면서 영화사라 했다.
 

영화사 미륵전에 오셔진 미륵석불입상. 선 굵은 당당한 모습이다.

사찰에는 거대한 미륵석불입상이 미륵전에 모셔져 있는데 세조가 이곳에서 기도하여 지병을 치유했다고 전해진다.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 기념비. 대웅전에서 미륵전 올라가는 길 입구 우측에 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에게는 영화사는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한 원로의원 월주스님의 주석처로 더 알려져 있다.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에 앞장선 스님은 대표적 불교계 NGO 단체인 지구촌공생회를 17년째 이끌고 있다. 지금도 저개발국가 국제구호사업을 적극 펼치고 있다. 스님은 2017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남을 돕는 자비보살행이 곧 자기 행복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이웃나라 낯선 지명 우한에서 시작된 것이 우리 일이 되어버렸다. <유마경>에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고 했다. 한 발짝 물러서 바라본 서울은 오늘도 촘촘한 인드라망으로 엮여 있었다.    

[불교신문3562호/2020년3월4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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