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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나뒹구는 강진 백련사에 가봤더니…
지난 19일 동백나무에 둘러있는 백련사 부도전. 누군가 꽃공양 올리듯 떨어진 동백꽃을 부도탑에 올려놓았다.

봄을 맞이할 것인가, 맞닥뜨릴 것인가? 겨울의 한기가 가실 쯤 떠오른 생각 한 소절이 머릿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계획적인 치밀함이나 주도적 성향이 부족한 사람인데 왠지 이번에는 실행에 옮기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된 이번 여정은 땅끝 해남과도 가까운 강진 백련사.

이른 아침 열차에 몸을 실었다. 무심결에 바라본 창문 밖. 태양을 바라보는데 이상할 만큼 눈에 불편함이 없다. 미세먼지가 가득 낀 건가? 걱정이 올라온다. 다시 밖을 본다. 마치 크고 밝았을 때 달을 보는 것 같다. 다른 게 있다면 찬 밝음이 아닌 따뜻함이 감도는 붉은빛이다. 시야를 넓혀 본다. 서리 낀 나뭇가지가 보이고, 밤사이 경직된 대지가 기지개 펴며 하품하듯 안개를 뿜어내고 있다. 비로소 근심이 사라지고 여정을 이어간다.

①천불전 앞에서 바라본 풍경. 범종각 너머로 강진만 바다가 보인다.

드디어 도착. 강진 백련사라 하면 단연 동백꽃이다. 백련사 남쪽과 서쪽 구간 5만㎡에 달하는 면적에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동백은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 추백, 동백으로 구분된다. 백련사 동백꽃은 대부분 이른 봄에 피는 ‘춘백’에 해당한다. 백련사 동백나무숲은 우리나라의 난온대 지방을 대표하는 동백나무가 집단적으로 서식하는 지역이다. 

또한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긴 유배기간 가운데 절반 이상을 다산초당에 머물며 목민심서 등을 집필하였다.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이 숲길을 당시 주지였던 혜장스님과 자주 거닐며 교류했다. 문화적 장소로서의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그래서 먼 수고스러움도 감내했다. 봄의 감성은 아이의 새끼손톱보다 작은 망울에서 톡 터지는 여린 파스텔톤이다. 하지만 동백은 다르다. 단박에 몰아붙이는 기상이 있다. 윤기 나는 짙은 나뭇잎, 여기에 찬바람에도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힘이 있다. 


②둘로 쪼개진 듯해서 다시 보게 되는 대웅보전 편액

시나브로 옷깃을 적시는 봄비와 다른 소나기 같은 힘, 흡사 깨달음을 향해 몰아붙이는 선사의 기풍과도 닿아있다. 그래서일까 백련사 동백나무숲에는 선방도 자리 잡고 있다.

주차장에서 산문을 지나 사찰 중심영역까지 200m 남짓. 양 옆으로 동백나무가 벌써 즐비하다. 평일 오전 호젓한 시간이지만, 산새의 지저귐은 쉼없다. 대웅보전에 들러 부처님께 인사를 먼저 올린다. 법당 보살님이 척 봐도 이 절 신도같지는 않았는지, 백련사에서 가장 전망좋은 천불전 앞 그리고 동백나무숲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부도전의 위치를 알려준다. 

③백련사 전경. 오른쪽 만경루에서 문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풍광도 좋다.

그런데 올라오면서도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대웅보전 편액이 시선을 계속 잡는다. 쪼개진 듯 법당 편액을 둘로 나눈 곳은 처음 본다. 조선후기 학자이자 서예가 이광사의 글씨다. 해남 대흥사 대웅전과 천은사 일주문에서도 이광사의 글씨를 만날 수 있는데, 추사 김정희와 얽힌 이야기가 재밌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 가는 길에 벗인 초의스님 머무는 대흥사를 찾았다. 대웅전에 걸린 이광사의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 떼어내고 자신의 글씨로 바꿨다. 훗날 유배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대흥사에 들려, 다시 이광사의 글씨를 걸도록 했다. 오랜 제주도 유배기간 동안 마음의 도량을 넓힌 결과일 것이다. 자신만의 서체영역에서 바라본 이광사의 글씨는 초라하지만, 타인을 바라보고 배려하는 안목을 넓힌 후에는 이광사 글씨의 독특한 개성을 인정한 것이다. 영화 제목에도 등장하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어 법당 보살님이 알려준 백련사에서 동백나무가 가장 아름답다는 부도전으로 향했다. 울퉁불퉁한 ‘알통’이 나무 몸체에 돋아 수령이 100년은 넘었을 것 같은 동백나무가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하다. 부도전 주변으로도 온통 동백나무다. 아쉬운 것은 이제 동백꽃이 제대로 피가 시작해 바닥에 떨어진 동백이 아직은 적다. 누가 뭐래도 동백나무 숲의 백미는 흐드러지게 땅에 떨어진 동백꽃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진에 담는다. 다녀간 사람들이 떨어진 동백꽃을 살뜰히 모아 여러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동그란 모양, 하트 모양도 보인다. 꽃공양하듯 부도탑에 가지런히 올려놓기도 했다. 마치 사찰 근처 냇가에 가면 돌탑을 쌓듯. 

④부도전으로 향하는 길의 동백나무 군락. 나무 몸체에 울퉁불퉁한 ‘알통’이 보인다.

봄손님을 제대로 맞이하고 싶어 부산하게 단장을 하고 대문을 활짝 열었더니, 맞이하고픈 손님은 마을 어귀쯤 오고 있는 격이다. 봄이 익어갈수록 백련사 동백나무 숲길은 더욱 붉게 물들어 간다. 올해는 3월 말이 절정이다. 

[불교신문3474호/2019년3월27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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