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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와 성주사지

성주사지 대웅전 자리 뒤쪽에 석탑 3기가 자리 하고 있다. 거대했던 사격을 말해주고 있다.
무량사 일주문을 지나 숲길을 지나면 천왕문이 나온다.
성주사지 석불입상 시멘트로 부분 보수된 모습이 왠지 슬픈 표정을 한듯 하다.
천왕문에서 바라보이는 무량사 모습. 석등과 석탑 그리고 극락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극락전의 기와가 날렵하게 솟아 있다.
왼쪽 가장 높은 부도가 김시습의 부도이다.
천년 전 대쪽 같은 ‘禪風’
저 석탑은 기억하고 있겠지
500여 년 전 매월당 김시습은 부여 무량사를 찾아갔다.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엮은 그는 단종폐위 충격에 출가 이후 방랑 끝에 무량사를 마지막 주석처로 삼았다. 산스크리트어 ‘아미타브하(Amitabha)’가 무한한 광명을 가진 것을 뜻하는데, 아미타로 음역하면 무량사에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이유를 가늠케 한다.
지난 11일 무량사는 촉촉한 안개비로 경내가 뿌옇게 흐렸다. 적막한 도량에선 대지를 적시는 빗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일주문을 지나 높고 빼곡하게 서 있는 나무들이 사찰을 가려 도량 전체를 조망하기 어려웠다. 숲길을 지나 천왕문에 들어서고야 비로소 작은 탄성이 나왔다. 극락전을 중심으로 세워진 오층석탑과 석등이 고목들과 더불어 한눈에 들어왔다. 첫눈에 이토록 강렬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사찰은 많지 않다.
백제석탑 양식을 띤 무량사오층석탑(보물 제185호)과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극락전(보물 제356호)을 참배했다. 극락전엔 동양 최대 규모로 알려진 아미타여래좌상과 협시불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참배객을 반겼다. 극락전 바른편에 설잠스님이란 이름으로 이곳 무량사에서 열반에 든 김시습의 영정이 모셔진 전각이 있다. 그는 생육신으로 대쪽같은 절개와 불교, 유교를 아우르는 사상과 탁월한 문장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산문을 나서서 무진암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김시습의 부도가 보란듯이 서 있다.
김시습 외에도 1200여 년 전 이곳을 지나간 고승이 또 있다. 구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일으킨 무염국사다. 무량사 산 너머 성주사지에 스님을 기리는 비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국보 제8호)가 있다. 해질 무렵 찾아간 성주사지엔 아직도 발굴작업이 한창이었다. 2만9000㎡에 달하는 넓은 대지위에 탑과 마애불, 석계단 등이 한 때 웅장했던 사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옛날 서릿발 같은 수행과 대쪽같은 절개로 도량을 휘감았던 선풍이 불어오는 듯 성주산 물안개는 유독 사지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부여·보령=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 2584호/ 12월19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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