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수행스님 아니면 모두 사판승인가? |
문 : 얼마 전에 산중에서 수행하는 스님이 아니면 모두가 사판이고 정치승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해하면 좋습니까? 理와 事는 별개로 존재하지 않아 답 : 세상에는 명확한 출처가 없이 잘못 사용되는 용어가 많이 있는데, 그런 것의 대표적 사례가 ‘이판사판(理判事判)’일 것입니다. 이판사판이라는 용어는 본래의 불교에는 없었던 것이 우리나라 조선조 말기에 생겼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 억불정책 속에서 수행의 터전이 되는 사찰을 유지하는 일이 오로지 스님들의 노동에 의해서만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고, 이렇게 사찰을 유지하기 위해 진력했던 스님들을 사판이라고 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깊은 산속에서 움막을 짓고 산중의 식물 등에 의존해 연명하면서 은둔적 수행을 했던 스님들을 이판이라고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이르면 조선총독부는 일본의 정책에 협조하는 이들에게 사찰을 운영할 모든 소임을 주었고, 그렇지 않는 스님들은 하루 한 끼의 거친 음식을 먹으며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이것을 구분하기 위해 운영권을 가진 이들을 사판이라 했으며, 수행에만 전념하는 이들을 이판이라 했습니다.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요즘처럼 ‘막다른 궁지’ 또는 “끝장‘의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정적 측면을 극대화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잘못 사용되는 뜻입니다. 현재의 불교계에서도 이판과 사판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판은 순수한 수행의 입장의 분위기를 띄고 사판은 운영에 종사하는 소임자로 다소 세속적 분위기를 띄는 듯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구분 또한 불교사상에서는 잘못된 것인데, 아마도 이 부정적 분위기를 확대해석하여 정치라는 말까지 연결된 것 같습니다. 이(理)와 사(事)는 불교사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용어로 진(眞)과 속(俗)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이 둘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둘이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며, 깨달음의 경지는 이 두 측면이 서로 걸림 없고 둘이 아닌 차원임을 밝힌 것입니다. 이(理)는 절대평등의 본체를 가리키고 사(事)는 온갖 차별의 현상계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의 다른 측면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관통하는 이치를 연기(緣起)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연기의 원리가 이(理)가 되는데, 이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연기의 원리에 의하긴 하지만 현상적으로는 사계절의 모습은 분명히 다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현상적으로 다른 모습의 측면이 사(事)가 되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출가해서 깨닫고자 하는 순수한 절대 진리의 측면은 이(理)가 되고, 스님들이 포교하면서 신도들에게 알려 주려는 근본도 이(理)가 됩니다. 그러나 수행하는 모습이나 포교하는 모습 그 자체는 사(事)가 됩니다. 산중 선원이나 강원의 단순한 소임도 사(事)가 되고, 도심지 포교당의 소임도 사(事)가 되며, 비록 다른 성격의 소임의 차별적 사(事)의 입장이긴 하지만, 모든 스님들의 삶이 전혀 이(理)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판인 스님도 사판인 스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진(眞)과 속(俗)으로 설명해 보면, 진(眞)은 불변의 원리이고 속(俗)은 무상(無常)한 현상을 가리킵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가짜라거나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원리에 의해 변화하는 현상을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송강스님 /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393호/ 1월16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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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가 어른이 되는 것도 무상하기에 가능하고, 온갖 발명이나 발전도 무상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상은 공(空)의 다른 표현이고, 연기의 현상적 측면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진(眞)과 속(俗), 이(理)와 사(事)는 둘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