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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세가 있는 것입니까?

문: 새해가 되면서 한해의 운세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운세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이런 것이 불교의 업과 상관이 있습니까?
바꿀 수 없는 운명이나 숙명은 없어
답:운세(運勢)라는 것은 운명이나 운수가 닥쳐오는 기세를 뜻하는데, 이 말의 밑바탕에는 이미 정해진 것이 있다고 봅니다.
옛 동양의 사상에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운명이라거나 운수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어떻게든지 미리 알아내어 나쁜 일이라면 어떻게든 피하려 했고, 좋은 일이라면 그 효과를 최대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일종의 예측과 예방의 지혜로 볼 수 있는 이 계산법은 아주 오래된 통계학과도 같은 것이며, 매우 광범위한 요소들을 동원해야만 비로소 그 효과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의 방법으로 보자면 각 연구소가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어떤 예상치를 찾아내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의 경우만 하더라도 연구소의 전문가들이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가지고 최첨단의 전산망을 이용하여 내린 예상치도 틀리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측을 위해 활용하는 자료가 이미 굳은 과거의 것이거나 가상의 것임에 비해, 우리 삶의 현장은 매 순간마다 환경이 끝없이 바뀌고 사람들의 행위도 무수한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옛날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옛날의 예측법이 얼마나 맞출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요즘의 자주 틀리는 기상예보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업(業)의 이론은 인도 전통의 업과 불교의 업으로 구분해서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인도 전통의 업설(業說)은 숙명론적입니다. 바라문교에서 주장했던 업은 철저한 지배목적으로 지배계급이 만든 것으로, 천한 계급으로 타고난 현재의 신분이 과거생의 업으로 인해 받는 당연한 결과인 만큼, 그것을 숙명으로 알고 무조건 복종하고 달게 받으며 오로지 선업을 쌓아야만 내생에나 겨우 더 나은 신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의 업설은 숙명론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고통에 대한 원인분석과 미래의 해결책으로 제시됩니다. 업은 생각과 말과 행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방향성이며,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마다 새로운 방향으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인과응보는 바로 이 업에 의한 것이며 또한 연기의 원리에 닿아 있습니다. 불교의 입장에서는 바꿀 수 없는 운명이나 숙명 따위는 없으며, 독자적으로 영원히 존속하는 것도 없습니다.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하나의 외통수만을 보거나 몇 가지의 길을 볼 따름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분명 이전의 내 사고와 행위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나의 미래는 지금 내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바뀔 것입니다. 미래는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만약 정해진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그것은 예측일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유아독존(唯我獨尊)’의 뜻은 개개인 운명의 열쇠를 각자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이지 다른 어떤 절대적인 신이나 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내가 한 일들을 돌아보고 잘못된 것들은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운명을 기다리고 예측하는 것은 파도에 밀려가는 배 안에서 아무런 노력도 않고 어떻게 될까를 예측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입니다.
송강스님 /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395호/ 1월23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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