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주 장경사 |
![]() 굽이굽이 힘차게 이어지는 남한산성을 보고 있자면 축성의 힘든 공역에도 7개의 사찰을 창건한 옛 스님들 모습이 떠오른다. ![]() 장경사 전경. ![]() 남한산 장경사 일주문은 그 크기에 비해 더욱 웅장해 보인다.. 용트림 하듯 솟구치는 성벽마다 호국승병의 힘찬 기개 ‘선연’ 남한산성 성벽은 주봉인 청량산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으로 연주봉, 동쪽으로 망월봉과 벌봉, 남쪽으로 몇 개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았다. 성벽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는데 비해 성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평균고도 350m 내외의 넓은 구릉성 분지를 이루고 있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다. 몇 년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한 소설가 김훈 씨의 소설 <남한산성>이 출간된 후 역사의 현장인 남한산성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가진 적이 있는데, 이 자리에는 이채롭게도 장경사, 망월사 등 산성내 스님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축성과 이로 인한 9사찰의 역할을 고려하면 낯선 풍경은 아닐 것이다.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대대적으로 축성된 것은 조선 인조 2년(1624)부터 인조 4년 사이다. 남한산성의 축성이 시작되어 8도의 승군들이 축성에 가담하게 되자 다음해인 인조 3년에 승도청을 두고 각성대사를 8도도총섭절제중군주장에 임명하여 각도의 승군을 동원케 하고 이들을 감독하며 보살피게 하였다. 축성 후에도 이곳에 승군을 주둔시키고 항시 수성에 필요한 훈련을 계속하게 하였으며 이 승군들을 위하여 전부터 있던 망월사, 옥정사외에 개원사, 한흥사, 국청사, 장경사, 천주사, 동림사, 남단사 등 새로운 사찰들을 세웠다. 이후 고종 32년(1895) 명성왕후 시해사건 이후 척사사상을 갖고 있는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의병항쟁이 펼쳐져 남한산성을 완전히 점거하고 서울진공계획을 준비하던 중 함락되어 작전은 무산되고 일본군에 의해 산성은 잿더미로 변한다. 왕이 거동할 때 머무는 별궁인 행궁이 존재할 만큼 지리적 가치가 높았던 남한산성은 현재는 9개의 사찰 중 장경사, 망월사, 개원사가 명맥을 잇고 있다. 그 중 장경사의 요사채가 가장 오래된 건물로 옛 모습을 전하고 있다. 장경사 주련은 모두 한글을 사용했다. 한글주련은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일반에게 쉽게 알려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중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너른 공터는 옛 승병들의 훈련 장소로 사용했을 법하다. 광주=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불교신문 2582호/ 12월12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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