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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독존의 참 뜻은 무엇인지요?

문 :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탄생하셨을 때 사방 일곱 걸음을 걷고는‘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하셨다는데, 이때의 ‘유아독존’이라는 표현은 다른 종교의 유일신과 같은 개념이 아닌지요? 그리고 아만에 가득 찬 사람을 표현할 때도 “유아독존적이다”고 표현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모든 생명은 부처와 같은 절대 존재’

그것 깨우쳐 주려는 것이 부처님 원력

답 : 질문한 내용은 <수행본기경>에 나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는 구절의 앞부분입니다. 이 전체문장은 “천상에서나 땅에서나 나 홀로 존귀하다. 온 세상이 모두 고통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는 뜻이 됩니다. 문장의 표현을 일반적 지식으로 해석하면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절대적인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고통에 빠진 모든 생명들을 내가 구원해서 편안케 해 주겠노라’하고 풀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에는 마치 부처님이 스스로를 신격화 한 것처럼 느껴지고,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만만 가득한 듯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열린 마음으로 이 문장을 해석하면 전혀 다른 뜻이 됩니다.

‘천상천하’에서 천상(天上)은 신 중심의 세상입니다. 당시 인도는 바라문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신들이 주관하는 세상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타파하셨습니다. 내 삶의 주체는 신(神)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지요. 또한 땅(天下)에서는 개개인의 존엄성이 인정된 것이 아니라 바라문들이 정해버린 타고난 신분과 운명의 굴레만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이 신분과 운명의 굴레도 타파해 버립니다. 나의 진짜 모습은 신분과 운명에 갇힌 부자유의‘나’가 아니라 절대자유의‘나’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때의‘나’는 모든 존재들 본체로서의‘나’인 것이고, 육체적 감정적으로 제한된 한 개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당연히 싯다르타만을 가리킨 것도 아닙니다. 이 ‘나’를 가리키는 불교용어는 진여.불성.자성.본각.한 물건.이것 등 매우 많습니다. 싯다르타는 바로 이‘나’를 깨닫게 됩니다. 그로부터 붓다.여래.세존.석가모니 등으로 존칭되는 것이지요. 석가모니부처님은 일체의 허상을 깨뜨려버리고 스스로가 본래 자유라는 것과 세상이 본래 고요하고 평화로운 것임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우리 스스로가 석가모니부처님처럼 깨닫지를 못하고 스스로가 만드는 허깨비 같은 망상으로 인해 고통이 있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지요. 부처님께서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아셨기에 모든 생명이 당신처럼 깨달음에 이르러 편안해지길 바라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삶은 모든 이들이 그 사실을 깨닫도록 처방하고 치료하는데 바쳐집니다. 이것이 문장 뒷부분 말씀의 뜻입니다.

경에서 표현한 바로는 싯다르타가 사방 일곱 걸음을 걷고 난 뒤에 위의 구절을 말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여섯 걸음까지는 아직도 어리석음의 세계에서 헤매는 육도윤회를 상징하는 것이며, 일곱 번째 걸음은 깨달음을 상징합니다. 일곱 걸음을 걷고 난 뒤에 말씀하셨다는 것은 곧 깨달은 뒤의 가르침과 자비를 함축하는 내용임을 뜻합니다. 그러니 ‘갓난아기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따지는 것은 이 문장의 상징성을 모르거나 모른 체하는 것일 뿐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볼 때에만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불교의 언어는 그 말을 해석하는 사람의 정신적인 경지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단순한 말장난으로 삶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마음의 눈을 뜰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송강스님 /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429호/ 5월28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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