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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행을 감추라고 합니까?

: 요즘은 선행을 많이 한 종교 단체가 존경받는 분위기입니다. 그렇지만 불교에서는 무주상보시라 하여 좋은 일 한 것을 알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선행을 알리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좋은 일 하는 것은 종교인의 기본

홍보는 결과적으로 부작용 일으켜

: 선행은 좋은 일이지요. 그렇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깊은 뜻을 잘 살펴야 합니다.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일이 바로 집착 없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인데, 이는 좋은 일 했다는 생각마저도 갖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도 선행을 하지 않았던 사람은 선행을 하는 그 자체가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선행을 해도 워낙 서툴러 주위에서 다 알게 합니다. 처음에는 주위에서 자연스럽게 그 일을 알고 격려의 뜻으로 칭찬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환대와 칭찬을 받은 이 사람은 선행의 기쁨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기쁨만을 좇는 선행은 결과적으로는 부작용을 일으키게 됩니다. 나중에는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심을 얻기 위해 스스로가 자신의 선행을 떠벌리게 되고, 선행 자체보다는 알리는 것이 더 주가 되고 맙니다. 결국 사람들은 그 실상을 알고는 못마땅해 하겠지요. 그는 자만심이 매우 커져 있기에 사람들의 이런 태도에 화를 내며 선행을 그만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스승의 가르침과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도 분명히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와 같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좋은 일 한 것’보다도 몇 배의 홍보비를 써 가며 자신들을 세상에 알리는 데 더 열중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알려진 그런 것을 보고 불교를 비판하고, 이런 비판을 받은 불교계는 어느 듯 ‘무주상보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판단한 것인지 ‘좋은 일 한 것’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립니다. ‘경쟁에 뒤지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세속적 위기감 때문일까요?

불교의 모 단체를 통해 해외봉사를 다녀온 경험이 있는 어떤 젊은이는 이렇게 느낌을 말했습니다. “처음에 참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지나면서 점차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단체의 이념을 교육받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으며 기록 사진을 찍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봉사의 대상이 된 그 나라의 청소년들은 봉사대원들의 당당한 베풂에 주눅 들었고 어느 듯 자기들의 처지를 비관하는 눈치였으며,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한국을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형편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도 못하면서 그들의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런 것을 부처님께서 보신다면, 우리가 당신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하실까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종교는 정치집단이 아닙니다. 이익을 좇는 사업집단은 더욱 아닙니다. 그럼에도 교세가 곧바로 자기종교의 부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종교인의 바른 판단은 아닙니다. 교세가 그 종교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월하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모든 종교의 성현들은 모두 선행을 하라고 가르치셨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한없이 베풀어야한다고 권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분도 그 베푼 행위를 힘써 알리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성현들이 선행을 남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고, 마음에 좋은 일 했다는 생각도 일으키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송강스님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441호/ 7월9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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