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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소개된 명창(明昌) 7년명(1196) 종보다 불과 5년 뒤에 만들어진 종이면서 새로운 고려 후기종의 전형적 요소인 입상연판문대(立狀蓮瓣文帶)가 장식되기 시작하는 13세기의 첫 번째 사례가 바로 이 승안(承安) 6년명 종이다. 다른 일본 소재 한국 범종과 달리 카마쿠라 대불(鎌倉大佛)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카마쿠라시(鎌倉市)의 이마부치가(今淵家)란 개인이 소유하고 있어 소재지 파악과 조사가 매우 어려웠던 종 가운데 하나이다. 필자 역시 2000년도 초반 한일 불교미술 공동조사의 일환으로 일본 도쿄박물관(東京博物館)의 협조를 받아 간신히 조사할 수 있었다. 종신에 새겨진 승안(承安)은 금나라의 연호다. 사실 그 6년인 1201년은 금에서 이미 태화(泰和) 원년으로 바뀐 해이지만 고려에서는 아직 전대의 연호를 그대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용뉴(龍鈕)는 12세기 종에서 계승된 목을 구부려 입안에 표현된 보주로 천판과 연결된 형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용뉴에 양 발 가운데 한쪽 발은 위로 들어 보주를 쥐고 있으며 다른 한발은 천판을 누르고 있는 모습이다. 목 뒤에 붙은 굵은 음통에는 두 줄의 띠로 3단 구획하여 당초문을 장식하였으나 맨 아랫단만 화문으로 구성하여 변화를 주었다. 음통의 한쪽 방향에는 발 뒤쪽에서 뻗어 나온 갈기가 길게 묘사되었는데, 아직 단순한 부조 형태로만 표현되었다. 이러한 장식은 이후에 제작된 범종의 음통 부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화려한 형태의 갈기(염익: 焰翼)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점을 볼 수 있어 초기적인 양상으로 파악된다.

아울러 음통 위에도 작은 보주가 여러 개 부착된 것을 볼 수 있어 이후 제작되는 13세기 범종에서 이 부분이 보다 크고 화려해지는 보주 장식으로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승안 원년명 종은 13세기 범종에 등장되는 모든 요소가 표현되기 시작한 과도기적 양상을 갖추고 있다. 일찍부터 츠보이 료헤이(坪井良平)는 이 종을 고려 후기 종의 첫머리에 두고 중요성을 평가한 바 있다. 천판(天板) 부분에는 용뉴의 외연을 돌아가며 한단의 주조선이 둘러져 있으며 그 바깥의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연잎이 위로 서서 연결된 입상연판문대(立狀蓮瓣文帶)가 장식된 점이 확인된다.

그러나 여기에 장식된 입상연판문대는 화려하면서도 내부에 장식까지 첨가된 13세기 전~중엽의 범종과 달리 두 겹의 연잎을 단순하게 세운 초보적인 형태이다. 여기에 주조상의 결함 때문인지 몰라도 일부의 연판문은 아예 밋밋하게 잘려져 표현되지 못하였다. 이는 의도적이라기보다 주조상의 실패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러한 연판문대와 달리 종신의 세부는 비교적 섬세하고 화려한 문양으로 표현되었다. 우선 상, 하대는 넝쿨형으로 굴곡을 이룬 동일한 당초 문양이 시문되었고 이 문양은 연곽대(蓮廓帶)에도 사용되었다. 연곽 내에는 원형의 화판 위에 낮고 작게 돌기된 연뢰를 9개씩 장식하였다. 한편 연곽과 연곽 사이의 종신에는 천의를 위로 날리며 양다리를 굽혀 하늘을 나는 듯한 비행비천상(飛行飛天像)이 크게 부조되었다.

이 비천상 역시 앞 시기의 종신 부조상에서 많이 보이는 형태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비천상의 좌, 우편에는 각각 당좌와 하대 위에 붙어 방형의 명문곽을 배치하였다. 종신에 비해 비교적 크게 묘사된 당좌는 그 중앙의 큰 자방 안으로 6+8개로 구성된 굵은 연밥을 가득 배치하고 그 바깥을 짧은 복엽의 연판으로 시문한 뒤 바깥 테두리를 구슬 장식〔聯珠文〕으로 감싼 모습이다. 반대쪽의 명문곽(銘文廓) 안에 기록된 음각 명문은 ‘승안육년신유, 이월 일조, 천정사금당현배, 입중사십근반(承安六年辛酉, 二月 日造, 天井寺金堂懸排, 入重四十斤半)’의 4행 23자로서 굵고 뚜렷한 글씨체이지만 다른 범종 명문에 비해 비교적 단순한 내용이다. 이를 풀이하면 ‘승안 6년인 신유년 이월 일에 천정사 금당에 걸고자 40근 반의 중량을 들여 만들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보이는 천정사(天井寺)는 경상북도 청도군(靑道郡) 풍각면(豊角面) 송서리(宋西洞)에 절 이름이 확인되지만 다른 기록은 분명하지 않고 조선시대에는 이미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종의 높이는 총고 43.3cm로서 고려 종 가운데 소종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이를 반영하듯 금당 안에 걸고자 제작된 것이란 명문을 통해서 파악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고려 후기 종의 크기가 50cm 보다 작은 소종이 많이 만들어지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명문에 보이는 내용처럼 법당 안에 소규모의 용도로 사용코자 만들어진 것을 반영해 준다. 나아가 이 종은 종신의 한쪽 면에 지금까지의 예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초승달 모양의 월문(月文)이 장식되어 있음이 독특하다. 이러한 문양이 달을 상징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어떠한 의미를 종신에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이에 대해서는 고려시대 다른 자료 등과 비교 검토가 요망된다.

지금까지 입상연판문대는 입상화문대(立狀華文帶)란 명칭으로 오랜 기간 불려왔으며 그 시작이 바로 이 승안6년명 종이 만들어진 1201년부터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 명칭을 연화문이 아니라 연판을 세운 입상연판문대로 명칭을 바꿔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되어 필자에 의해 명칭하게 되었다. 나아가 고려 후기 입상연판문대의 시작은 지난 호에 잠시 언급한 것처럼 북한 평양박물관 소장의 명창(明昌)3년 대자사명(大慈寺銘) 종(1192)에서 보이기 시작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입상연판문대의 정착과 유행으로 규정되는 고려 후기 종의 시작은 이 종보다 앞선 최소 12세기 말부터 이미 시작되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물론 불과 9년의 시차에 불과한 두 점이 왜 이런 차이를 보여주느냐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오히려 승안6년명 종에 보이는 음통의 염익과 보주의 초보적인 장식, 종신에 크게 묘사된 방형의 명문곽과 함께 비행비천상은 12세기 범종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런 점에서 13세기에 들어와서도 아직 전기종의 과도기적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승안6년종은 범종의 전통성과 문양의 계승 등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이 종이 지닌 가치는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여음(餘音)

일본에 소장된 53점의 한국 범종 가운데 개인 소장으로 되어 있는 작품은 이 종을 비롯하여 3~4점에 불과하다. 그런 이유인지 몰라도 이 종 역시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못하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비지정 문화재는 소재 파악이 쉽지 않으며 개인 소장품이란 점에서 거래도 용이할 수 있다. 

최근까지도 일본에 건너간 우리 문화재의 환수 문제는 문화적으로나 외교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일본 소재 한국 문화재는 무조건으로 반환되어야 한다는 인식은 바뀔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정당한 가격으로 매입하여 국내에 들어올 수 있도록 다방면에 걸쳐 노력해야 한다. 이 종 역시 그러한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불교신문3365호/2018년1월31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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