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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유형문화재 92호 지정
벽에 조각된 국내 유일 마애종
대승불교 자비사상 조각에 담아
타종하는 스님 입상 함께 새겨

경기도유형문화재 92호 마애종 전체 모습.

고대의 범종을 치는 장면이 묘사된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 일본 나라(奈良)의 주구지(中宮寺)에 소장된 ‘천수국만다라수장(天壽國曼多羅繡帳)’란 수본이다. 그러나 고려시대 절에서 사용된 범종의 타종 장면을 묘사한 마애 조각이 우리 근처에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바로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石水洞) 산 32번지 바위 면에 새겨진 마애 범종이 그것이다. 

이 마애상은 535×505cm 정도의 커다란 암면을 고르게 다듬은 뒤 음각과 양각을 이용하여 부조 형태로 조각하였는데, 벽면 중앙에는 커다란 범종을 중심으로 이 범종을 매달기 위해 세워져 있는 두 개의 기둥과 이를 가로 지른 종가(鐘架)로 구성되었다. 아래쪽에는 이 두 개의 기둥을 벋치고 있는 긴 바닥면이 묘사되어 있고 그 위에 인물상이 서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중앙에 걸려있는 범종의 양 쪽에 길게 솟은 두 개의 기둥 중에서 왼쪽 기둥 중단 아래에 승려 입상이 두 손으로 당목(撞木)을 잡고 종을 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중앙에 걸린 범종의 현상을 살펴보면 들보의 중앙에서 4단으로 꼬이면서 내려온 쇠사슬이 늘어져 용뉴의 목 안으로 연결되었고 가늘고 긴 목으로 묘사된 용두는 그 입을 천판 상에 붙인 듯 표현되었다. 불거진 눈과 머리 뒤로 솟아오른 뿔까지 세밀히 표현되었으며 목 뒤에 붙은 음통은 그다지 아직 가늘게 표현되지 않은 편으로서 용뉴의 목 높이와 거의 유사한 높이까지 솟아 있다. 

종신의 외형은 상부가 좁고 아래쪽으로 가면서 약간씩 벌어져 종구 쪽이 가장 넓어져 있다. 상대와 하대가 묘사되었지만 원래 이 상·하대에 자주 장식되는 문양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상대 아래 붙은 2개소의 연곽(蓮廓) 안에는 한국 범종의 독특한 특징인 돌출된 9개씩의 연뢰(蓮)가 표현되었다. 

평면적인 부조로 조각된 마애종에서 한국 범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4개의 연곽과 연곽 마다 9개씩의 연뢰를 표현하고 있는 점은 한국 범종의 전형적 모습을 분명히 이해하고 충실히 재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연곽 아래로 구획을 둔 것은 크기가 큰 대형 범종에서 볼 수 있는 종신(鐘身)을 두 개의 틀로 합쳐 주조할 때 생기는 주물 접합선 흔적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의도적으로 당좌를 반원형으로 조각하여 굴곡진 종신의 입체감을 살린 모습이나 보이지 않는 뒷면의 당좌까지 조각함으로써 4개의 당좌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점에서 이 마애종을 조각한 제작자는 당시에 만들어졌던 범종을 충분히 이해하고 재현할 수 있었던 뛰어난 미적 감각을 지녔던 석조 장인이었다고 추측된다. 

이처럼 석수동 마애종은 단순히 청동의 범종을 화강암의 마애종으로 변화시킨 의미가 아니라 불교의 상징과 이상의 소리를 구현해 냄으로서 범종이 지닌 자비의 사상을 조각으로 표현해 낸 것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마애종이 위치한 인근에는 안양사(安養寺)라는 절의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타종하는 스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모든 중생을 편안하게 한다는 안양(安養)의 절 이름이 뜻하는 바처럼 이곳에 마애종을 조각한 것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범종의 소리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대승불교의 가장 궁극적인 교리를 담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석수동 마애종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벽면에 조각한 마애종이란 중요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범종을 타종하는 승려 입상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두어야 한다. 

종에 표현된 양식적 특징으로 이 마애종의 제작시기를 추정해 보자면 우선 이 종은 통일신라의 범종 양식을 이어받아 고려의 범종으로 바뀌어 가는 과도기적 양식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범종에서 4개의 당좌가 표현되는 것은 남아있는 범종의 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고려 전기에서는 그다지 유행되지 못하였다. 

현재 밝혀진 가장 연대가 앞서는 4개의 당좌를 지닌 종은 1058년에 만들어진 청녕(淸寧)4년명 종과 용주사종(龍珠寺鐘)이 확인되지만 그 예는 그다지 많지 않고 오히려 13세기 종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마애 조각을 만든 장인은 당시로서도 가장 혁신적인 요소를 반영하여 고려 범종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노력한 것으로 파악된다. 

아울러 승려가 들고 있는 나무방망이(撞木)도 앞쪽으로 가면서 폭이 넓어진 원통형을 이루다가 그 앞쪽을 밋밋하게 처리하여 마치 절구 공이처럼 묘사되었다. 재질이 나무로 보이는 당목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점에서 지금까지 전혀 남아있지 않은 고대의 당목 형태를 추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결론적으로 석수동의 마애종은 고려 11세기 중반 쯤 당시 통일신라 종 양식을 아직까지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 고려 초의 범종 양식을 모본으로 삼되 새로운 고려 범종의 이행을 보여주는 4개의 당좌를 지닌 고려 전기의 과도기적 범종을 재현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다 지붕을 지닌 종루(鐘樓) 안에 달린 2m 조금 넘는 대형 범종을 당시의 스님이 당목으로 타종(打鐘)하는 구체적인 장면을 생략과 강조를 적절히 조화시켜 성공적으로 구현한 고려 전기 마애조각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범종은 제작되고 난 후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사용될 수 있지만 재질의 특성상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물리적으로나 인위적, 자연적으로 손상 또는 훼손되기 마련이었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여 비록 소리를 표현하지 못하지만 범종을 치는 궁극적인 목적과 의미가 영원무궁토록 이어질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이 마애종의 조성 의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 명칭도 지금까지 불린 마애종이라는 단순한 의미보다는 종을 치는 승려입상의 중요성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마애타종상(磨崖打鐘像)’으로 명명되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본다. 끝으로 이 마애조각은 국내 뿐 아니라 세계에서 유일한 마애 타종상이라는 중요성과 의의를 지닌 점에서 지금처럼 지방 문화재 차원이 아니라 국가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어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마애타종상’ 탁본.

 여음(餘音)

현재 마애상의 용뉴를 포함한 종의 전체 높이는 126cm이며 그 옆에 서있는 승려상의 높이는 102cm로 확인된다. 마애조각을 조성한 당시의 장인이 범종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매우 충실히 묘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인물상 역시 종의 크기에 비례해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표현하였을 가능성이 많다. 지금까지 출토된 고려시대 인골을 기준으로 남자의 평균 신장을 분석한 결과 165.9cm 정도로 알려져 있어 종의 크기를 환산해 보면 대략 205cm정도로 파악된다. 이것은 약간의 오차를 인정하더라도 이 마애종이 최소한 2m가 넘는 대형 범종을 묘사한 것임을 추측케 한다. 따라서 이 마애조각은 법당 안에서 타종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야외에 있는 종루 안에 걸린 범종을 타종하는 인물상을 표현한 것임이 보다 분명해진다.

[불교신문3357호/2017년12월27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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