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중기 범종 대표 작품
종구쪽 종신 ‘직선화’ 모습
종구 비해 종신 짧아 둔탁
여주 지역 사찰 봉안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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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녕4년명 종의 전체모습. 높이 85.4cm, 보물 1166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고려시대 종은 범종의 양식적 특징상 크게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의 유무를 중심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고 필자는 이를 다시 초, 중, 후, 말기의 4기로 세분화하여 구분하고 있다.
각 시기별로 특징적인 양식적 변화와 기간을 편년이 확실한 범종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우선 초기는 고려 범종이 성립되어 전개를 이루어 나간 통일신라 종과의 과도기적 시기로 대체로 10세기 중엽부터 11세기 전반에 해당된다.
중기는 고려 범종으로의 완전한 정착을 이룬 1058년의 청녕4년명(淸寧四年銘) 종이 만들어진 11세기 중엽부터 12세기 말경으로 편년된다. 입상화문대로 특징 지워지는 고려후기 종은 12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초를 후기로 나누어 입상화문대의 정착과 소종이 유행된 시기, 그리고 14세기 전반부터 말까지의 고려 말기의 범종은 외래(중국) 양식의 유입과 절충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할 청녕4년명종(1058)은 이러한 고려 범종의 편년 가운데 중기 범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작품으로 그 의미가 크다. 앞서까지의 범종이 아직 통일신라 범종 양식의 과도기적 양상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이 종에 와서 고려 범종의 두드러진 특징을 완연히 보여주게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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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신의 불좌상. |
우선 용뉴는 그 입을 천판(天板) 위에서 띠어 앞을 바라보고 있어 입 안에 보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S자형으로 힘차게 굴곡진 목에는 갈기와 비늘까지 세세하게 묘사되었고 다리 앞에서 좌우로 뿔처럼 길게 뻗어 나온 갈기 장식이 음통 좌우로 부착된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통일신라 종에 비해 가늘고 긴 음통에는 연주문대의 띠로 구획을 나누어 연당초문을 얕게 시문하였고 연주문대로 두른 상, 하대에는 유려한 모란당초문이 섬세하게 장식되었다. 특히 이 종의 천판의 외연에는 마치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처럼 보이는 구름무늬 내지 당초문처럼 장식된 띠를 두르고 있음이 주목된다. 상대(上帶) 위에 나지막하게 굴곡을 이루는 장식 띠는 결국 고려후기 종에 등장되는 입상화문대의 초보적인 단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상화문대 장식은 고려 초기의 천흥사종(天興寺鐘)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용뉴와 종신을 별도로 붙여 주조할 때 천판 위에 남게 되는 보기 흉한 주물 접합선을 감추기 위한 배려로부터 시작되어 점차 하나의 독립적 문양대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청녕4년명 종 이후에는 다시 보이지 않다가 1196년에 제작된 명창7년명(明昌7年銘) 종까지 오히려 고려전기 종의 요소가 계속 계승되고 있음이 주목된다.
4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성거산 천흥사종(1010)의 종신이 위가 좁고 배가 불룩하다가 다시 종구가 좁아지는 통일신라 종의 항아리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종의 종신은 종구 쪽으로 가면서 점차 직선화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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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신의 보살좌상. |
따라서 몸체의 비례가 종구(鐘口)에 비해 종신이 짧아져 둔탁한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형태는 통일신라 종의 종신과 다른 고려 중기 종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요소이다. 상대에는 모란과 줄기, 잎을 유려하게 연결한 문양으로 꽉 채워 매우 입체적으로 표현되었다. 하대는 상대와 일견 유사하지만 그보다 모란을 더 강조한 대신 줄기는 간략하게 묘사하여 약간 다르게 구성하였다.
상대 아래 바로 붙은 4개의 연곽대에는 상대와 동일한 형태의 모란문을 장식하였고 그 외곽을 연주문으로 정연하게 둘렀다. 연곽 안에 배치된 9개씩의 연뢰(蓮)는 자방을 약간 도드라지게 만들었지만 높게 돌출된 일반적인 연뢰에 비해 그 높이가 미약하다.
이 자방 주위에 유려한 형태의 연판문을 8엽이 아닌 7엽으로 두르고 그 사이에 간엽을 배치한 모습으로서 연판 내부에 판심(瓣心) 같은 세밀한 부분까지 처리한 모습이 돋보인다. 이러한 세부의 정교한 표현은 종 명문에 제작자가 기록되지 않았지만 당시로서도 매우 뛰어난 장인에 의해 제작된 것임을 밝혀준다.
특히 이 종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연곽 바로 아래의 네 면에 번갈아가며 불상, 보살상(佛菩薩像)을 배치한 점이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두른 불상과 보살상은 측면관을 취하였고 연화 대좌 위에 앉아 불상은 결가부좌를, 보살상은 무릎을 꿇어 합장한 모습이다. 연화좌 아래에는 구름이 받치고 있으며 신광 뒤쪽으로 길게 구름문이 솟아있다.
이처럼 이 범종의 종신에는 지금까지 표현된 주악천인상이나 비천상이 아닌 불보살상을 번갈아가며 배치한 최초의 범종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종신에서 한참 밑으로 내려와 하대 바로 위에 배치된 당좌가 사방에 1개씩 도합 4개로 늘어난 점도 이 종에서 처음 등장하는 새로운 고려 범종 양식의 하나로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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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녕4년명 종’ 음각 명문. |
중앙의 연과를 두고 가늘고 긴 16엽의 연판으로 구성한 당좌의 문양도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당좌 한쪽 옆으로는 하대에 맞붙여 네모난 위패형(位牌形) 명문구를 구획하여 유려한 필치의 음각명문을 새겨놓았는데, 기존의 명문구와 달리 상부에 화문을 장식한 점이 색다르다.
또렷한 해서(楷書)채의 음각으로 새겨진 내부의 명문은 ‘특위, 성수천장지원주, 성금종일구중일백. 오십근, 청녕사년무술오월일기(特爲, 聖壽天長之願鑄, 成金鍾一口重一百. 五十斤, 淸寧四年戊戌五月日記)’ 의 5행으로서 ‘청녕사년무술(淸寧四年戊戌)’은 고려 문종(文宗) 12년인 1058년에 해당된다. 그 해 5월 일에 150근의 중량을 들여 금종 한구를 수명 장수를 위해 발원하였음을 기록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의 절 이름은 보이지 않지만 이 종이 1967년 경기도 여주(驪州)에서 발견된 점에서 주변 사찰에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추가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한 명문 중에 금종(金鍾)이란 명칭이 주목되는데, 고려시대 범종에는 이러한 명칭이 사용된 예가 간혹 보인다. 실제로 금을 넣어 합금하였다기보다 범종의 미사여구 또는 약간의 금도금을 시행하지 않았을까 추측되지만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정밀한 분석이 요망된다.
이 종은 고려전기의 과도기적 양식에서 벗어나 이제 고려 종으로의 완전한 정착을 이루게 되는 대표적인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편년자료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현재 보물 1166호로 지정되어 있지만 국보로 승격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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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음(餘音) 1967년 4월18일 경기도 여주군(麗州郡) 금사면(金沙面) 상품리(上品里)에서 동네에 거주하는 이영구 씨란 주민이 고철 수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땅 속에서 발견된 종치고 처음부터 보존상태가 완벽하였고 사용 흔적도 많지 않아 매우 특이한 예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한국 범종 연구에 있어 더없이 귀중한 이 고려 범종이 발견된 주변 지역에 대한 추가적인 정밀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원래 종이 있었던 사지 등에 관한 자료가 전혀 밝혀지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땅 속에서 발견된 선림원지 종과 실상사 파종, 연천 출토 종과 더불어 지하에서 우연히 출토된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
[불교신문3327호/2017년9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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