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재 한국범종 중 보존 양호
한때 일본 국보 지금은 중요문화재
종신 전후면 당좌 마주보는 비천상
나말 여초 과도기적 기법 대변 작품
이 종은 부산을 오가는 관부(關釜) 페리로 유명한 시모노세키시(下關市)의 스미요시진자(住吉神社) 보물관에 소장된 고려시대 초기의 종이다. 상설 전시가 가능한 일반 신사의 보물관과 달리 특별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있다. 일본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 범종 가운데 최대의 크기(높이 144.2cm)를 지닌 작품으로서, 이러한 크기와 양식적으로 우수한 외형으로 인해 한때 일본 국보(國寶)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중요문화재(重要文化財)로 전환되어 관리되고 있다.
전체적인 외형은 전형적인 통일신라(統一新羅) 종(鐘) 양식을 구비하고 있어 그 제작시기도 오랜 기간 통일신라로 추정되어 왔다. 아마 이런 점 때문에 이 종이 일본 국보로까지 지정 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전체 외형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종 양식을 구비하고 있지만 세부 문양 면에서 오히려 고려적인 새로운 요소가 보이기 시작하는 나말여초(羅末麗初)의 과도기적 양상을 잘 대변해 주는 작품이다.
우선 용뉴(龍)는 그 입을 천판(天板) 위에 붙였으나 앞 입술이 위로 들려 크게 벌린 듯 표현되었다. 용의 정수리 위에는 뿔이 솟아올라 그 끝단이 앞으로 말려 있고 뒤쪽으로 젖혀진 귀에는 갈기가 길게 뻗어있다. 얼굴에 비해 목은 매우 짧아져 둥근 고리를 형성하였는데, 이 곳 하단에 철 고리를 매달았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이 목 부분과 연결되어 5단으로 구성된 음통(音筒)이 솟아 있다. 음통의 각단은 매듭형으로 잘록하게 묶어 구획을 만들었고, 각 구획마다 앙·복련(仰·伏蓮)의 복엽연판문(複葉蓮瓣文)을 번갈아가며 대칭되게 장식하였다. 그리고 음통의 맨 아래 단에 해당되는 연판문 좌우로는 앞뒤로 뻗은 용의 다리가 비늘까지 세밀히 묘사되었다. 그러나 얼굴에 비해 너무 왜소한 크기로서 역동감(力動感)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특히 용두(龍頭)에서 조금 떨어진 좌측 천판 위로는 마치 구름이 말려 올라간 것 같은 소라껍질 형태의 독특한 장식이 첨가되어 있어 주목된다. 이와 같은 장식은 다른 종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예로서 구름 위에서 꿈틀거리는 운룡(雲龍)의 모습을 보다 생동감 있게 묘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천판의 가장자리에는 그 외곽을 촘촘히 돌아가며 복엽(複葉)의 연판문을 장식하였다. 이러한 견대(肩帶) 역시 통일신라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771년)에서부터 보이던 천판의 장식이지만, 그보다 훨씬 도식적(圖式的)으로 처리되었다.
종신의 상, 하대에는 삼중권(三重圈)으로 구성된 능형(稜形)의 반원문(半圓文) 방향을 바꿔가며 반복 배치하고 그 내부와 능형문 사이의 여백에는 당초형태의 구름문으로 빽빽이 시문하였다. 또한 연곽대(蓮廓帶)에는 상, 하대 문양과 달리 꽃술 형태가 첨가된 쌍구(雙鉤)의 당초문을 연속으로 시문하고 그 여백을 연밥(蓮顆)으로 채웠다.
이 역시 대부분의 통일신라 종이 상, 하대의 문양을 연곽대의 문양으로 응용하고 있는 점과 대조적이라 하겠다. 연곽 내에는 8엽의 연화좌 위에 높게 돌출된 연뢰(蓮)를 9개씩 배치하였는데, 약 1/3 정도가 부러져 있다. 특히 연곽과 연곽 사이에 배치되던 통일신라 종의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과 달리 연곽 바로 아래마다 조합을 이룬 2구씩 도합 4구의 비천상이 종신 전후면에 배치된 당좌를 중심으로 서로 마주 보도록 부조되어 있는 구성을 볼 수 있다.
4구의 비천상은 모두 천의(天衣)를 위로 날리며 몸을 옆으로 뉘어 양다리를 위로 올린 채 옆으로 나르는 새로운 형식의 비행비천(飛行飛天)으로서 전호에 소개한 준풍4년명(峻4年銘, 963년) 죠우렌지종(照蓮寺鐘) 종에서 처음으로 등장된 형식이다. 1조로 구성된 두 구의 비천상은 세부 형태에서는 각기 조금씩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1구의 상은 오른손을 뒤로 길게 뻗은 측면관(側面觀)의 모습인 반면 마주보는 또 하나의 상은 정면관(正面觀)이면서 오른손을 앞으로 굽히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부조상이면서 생동감이 더 살아나도록 의도적으로 배려한 점에서 당시 장인의 세심함이 느껴진다. 당좌는 앞, 뒤 두 개로서 상, 하대의 주문양(主文樣)으로 쓰였던 반원권의 능형문을 서로 합친 형태이다. 당좌의 내부에는 연과를 둘러싼 6엽 복판의 연화문과 그 외곽을 유려한 구름문으로 장식한 독특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이 종은 그 자체에 명문이 없는 관계로 제작시기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어 왔다. 한국 종을 오랜 기간 조사 연구해 <조선종(朝鮮鐘)>이란 역저를 남긴 츠보이 료헤이(坪井良平)의 경우에도 이 종을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에 근접한 작품으로 추정하여 통일신라 종 항목에 넣어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부적인 양식적 특징을 분석해 보면, 우선 용뉴의 세부형태가 너무 과장되어 괴수형(怪獸形)으로 변모되어 통일신라 종에서 보였던 역동적(力動的)인 용의 모습과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또한 음통 역시 형식적인 면만이 강조되었고 천판 위의 견대에 장식된 연판문은 더욱 도식화(圖式化)된 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비록 2구 1조에서 단독으로 바뀌어 나가지만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을 형식을 고수한 통일신라 종의 종신 부조상과 달리 각기 독립된 사구(四軀)의 비천상이 비행(飛行)하는 모습으로 바뀐 것도 새로운 변화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능형(稜形)으로 표현된 상, 하대와 당좌의 형태, 연곽대의 쌍구(雙鉤)의 당초문 역시 통일신라 종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요소이다.
이런 점에서 스미요시진자(住吉神社) 소장 종은 통일신라 종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고려 범종의 양식이 반영된 고려 초 경의 범종으로 추정된다. 음통의 형태면에서는 오히려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서 지금은 소실되어 음통과 용뉴만 남은 오키나와(沖繩) 현립박물관 나미노우에구(波上宮) 소장의 고려 종(951년)이나 오카야마시(岡山市) 사이다이지(西大寺) 칸온인종(觀音院鐘, 10세기)과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몸을 옆으로 뉘어 나는 4구의 비행비천상은 죠우렌지(照蓮寺) 소장의 준풍4년명(峻豊四年銘, 963년) 종(鐘)과 많은 유사성을 볼 수 있으며 이 종에서도 역시 상, 하대와 당좌에는 능형문이 시문되어 있어 그와 유사한 10세기 중엽 경의 제작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조습 판넬을 붙인 수장고 형식의 보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었던 관계로 일본 소재 한국 범종 가운데 보존 상태가 양호하게 관리되고 있는 점이 퍽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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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음(餘音) 일본에 남아있는 53점의 한국 범종 가운데 중요문화재로 20점이나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국보로는 앞서 소개한 후쿠이현 죠구진자(常宮神社) 소장 연지사종(蓮池寺鐘)이 유일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소개한 스미요시진자의 범종이 한때 일본 국보였다가 어떤 이유인지 중요문화재로 지정 순위가 전락되었다. 명문이 남아있지 않고 고려시대 제작이라는 점이 오히려 종의 가치를 떨어뜨렸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당당한 크기와 외형에 걸맞은 유려한 문양과 특히 비천상의 생동감 넘친 모습에서 국내에 있었더라면 마땅히 국보의 대접을 받고도 남음이 있기에 더욱 아쉬움을 준다. 거의 공개되지 않던 이 종은 규슈(九州) 국립박물관의 상설 전시에 특별 출품되어 한국 범종의 우수함을 잠깐 동안이나마 보여줘 많은 관람객들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
[불교신문3315호/2017년7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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