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22026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천의 악기 묶은 장식 첫 사례 
통일 신라 양식 잔존 복고풍
계지사 소재지 몰라 ‘아쉬움’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 관리

이 종은 현재 우리나라와 지역적으로 가까운 일본 후쿠오카시(福岡市) 시내 하카타역(博多驛)에서 도보로 10분 정도에 불과한 쇼우텐지(承天寺)에 소장된 고려시대 종이다. 쇼텐지는 작은 규모이지만 임제종(臨濟宗)의 유서 깊은 절로서 고려 범종 외에 고려 불화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호에 소개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녕4년명(淸寧四年銘鐘) 종 (1058) 보다 불과 7년 뒤에 제작된 작품이다. 그러나 그 종과 달리 아직까지 통일신라 범종 양식이 잔존하고 있는 복고적 경향의 작품이란 점에서 11세기 중엽까지는 고려 범종은 새로운 양식이 정립되어 가는 과도기적 경향을 보여준다. 

우선 종신의 외형은 위, 아래가 좁아지고 종복(鐘腹)이 불룩한 전형적인 모습과 달리 배흘림이 없이 종구(鐘口)까지 거의 직선화되어 통일신라 종의 종신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용두는 그 입이 천판 위에서 떨어져 있으나 용의 입 안에 있는 보주가 천판과 연결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오히려 청녕4년명 종과 다른 통일신라 종의 복고적 요소를 반영하였다. 

용의 목은 가늘고 굴곡지게 각을 이루었고 두발은 현재 손상되어 남아있지 않다. 뒤에 붙은 가늘고 긴 대롱 형태의 음통에는 연주문띠로 4단 구획하여 각 구획마다 연화문을 시문하였다. 또한 천판의 외연을 돌아가며 2중의 문양대를 두어 여의두(如意頭) 형태의 엽문(葉文)과 연판문이 섬세하게 장식되었다. 

이러한 천판의 견대(肩帶) 장식 역시 통일신라 범종의 형식을 계승한 것으로서 고려 11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종신의 상하대(上下帶)에는 잎이 넓은 연화문을 반복 배치하고 각 연꽃을 굴곡진 줄기로 이은 매우 섬세하고도 율동적인 문양이 장식되었다. 상대 아래 붙은 방형의 연곽대에는 상, 하대 문양과 또 다른 쌍구(雙句) 형식의 당초문으로 장식하였지만 상, 하대 문양에 비해 약간 도안화된 느낌이 든다. 

각 연곽마다 배치된 9개씩의 연뢰는 주조 당시부터인지 아니면 후대에 손상된 것인지 모르지만 대부분 움푹 파인 모습으로 손상 탈락되었고 대신 부러지거나 손상되어 현재는 연좌(蓮座)만 남아있는데, 이 부분의 문양이 잘 표현되지 못하였다. 

이 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종신의 여백 면에 부조된 보살좌상(菩薩坐像) 및 비천상(飛天像)과 함께 영락(瓔珞), 구름무늬 등을 첨가하여 다른 종에 비해 장식성이 강조된 점이다. 보살좌상은 영락이 화려하게 늘어져 있는 천개(天蓋) 아래 머리 위로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합장한 모습으로 특히 오른쪽 발을 밑으로 내린 반가좌(半跏坐)로 표현된 점이 흥미롭다. 

보살상의 우측에는 손에 연꽃을 받쳐 들고 몸을 옆으로 뉘인 채 비행하는 모습의 비천상과 그 반대편에는 악기를 천의로 묶어 날리는듯한 독특한 장식문양이 부조되었다. 이처럼 천개 아래로 합장한 채 연화좌 위에 앉아있는 불, 보살상 형식은 이후 제작된 고려 범종에 널리 등장하는 부조상의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되며 특히 악기를 천의로 묶어 바람에 날리는 장식 문양은 고려 중기에서도 11세기 범종에서 자주 표현되던 문양인 점에 주목된다. 

당좌는 16엽의 복엽 연판문으로 구성되어 앞서의 청녕4년명종(1058)과 거의 동일한 형태이지만 네 개가 아닌 두 곳에만 배치되었다. 그리고 연곽 사이의 종신 중단쯤에 위패형(位牌形)의 명문곽을 구획하여 양각의 명문을 새겼다. 6행 40자의 명문은 ‘유청녕십일년 삼월일, 계지사금종주성입, 중백오십근동량, 사주대사지관, 대장김수, 부장보지 미정 (維淸寧十一年 三月日, 戒持寺金鍾鑄成入, 重百五十斤棟梁, 寺主大師智觀, 大匠金水, 副匠保只 未亭)’ 으로 판독되는데, 주조 당시부터 별도의 명문판을 부쳐 주조함으로써 양각으로 새겨졌다. 주된 내용은 ‘청녕11년인 고려 문종(文宗) 19년(1065) 삼월 일에 계지사(戒持寺)의 금종으로 백오십근의 중량을 들여 주성한 것으로서 당시 절의 주지는 대사 지관, 대장 김수가 부장인 보지와 미정과 함께 제작하였다’ 는 것으로 확인된다. 

계지사의 소재는 분명치 않지만 여기에서도 청녕4년명종과 같이 ‘금종(金鍾’)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특히 말미에 종의 제작자인 대장(大匠), 부장(副匠=副大匠)을 순차적으로 나열하여 직급과 이름을 분명히 밝혀놓은 점이 주목된다. 이 종을 제작한 대장과 부장은 <고려사(高麗史)> 식화지(食貨志)에 기록된 “‘무산개 전십칠결 대장부장잡장인(武散皆 田十七結 大匠副匠雜匠人)’의 내용처럼 국가에 소속되어 주조활동을 한 관장(官匠)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이 종 역시 1032년에 제작된 일본 온죠우지(園城寺) 소장 청부대사종(靑鳧大寺)종과 마찬가지로 관장에 의한 제작품으로 볼 수 있어 고려 전기까지 관장들이 사찰의 범종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을 밝혀준다. 

여기에 이 종은 원래의 양각 명문 바로 옆에는 일본에서 나중에 새긴 추각명(追刻銘)이 음각으로 기록되어 있다. ‘축전주승천사상, 락원지환종, 명응칠년무오…(茿前州承天寺常, 樂院之喚鐘, 明應七秊戊午…)’의 내용 가운데 명응7년(明應七秊)은 일본 연호인 1498년으로서 원래 계지사종으로 1065년에 만들어졌던 종이 최소 1498년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와 지금의 쇼우텐지(承天寺) 죠라쿠잉(常樂院)에 걸려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다.

계지사종은 비록 원래의 소재지를 밝힐 수 없어 아쉽지만 10세기에 유행한 비행비천상과 새롭게 등장된 보살좌상이 공존하는 과도기 형식을 지닌 종이다. 특히 천개 아래 화려한 보관을 쓴 반가좌의 보살좌상은 단연 고려 범종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부조상의 백미이다. 여기에 악기를 묶어 날리는 새로운 장식 문양은 이 종에서 처음으로 등장되어 이후 만들어진 범종에 자주 쓰이게 되는 모본이 된 작품이다. 현재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여음(餘音)
국립중앙박물관 동원(東垣, 李洪根) 기증품 중에는 이 범종과 양식적인 면에서 매우 유사한 작품이 있어 주목된다. 이 종은 높이 35.8.cm에 불과한 작은 크기에 명문은 없지만 계지사종(1065)의 종신에 장식된 천개 아래 화려한 보관을 쓰고 합장한 모습을 지닌 보살상과 그 우측에 연꽃을 받쳐 들고 몸을 옆으로 뉘인 비행비천상, 특히 반대편으로 악기를 천의로 묶어 날리는 문양 등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계지사종에 표현된 반가좌형(半跏坐形) 보살상의 다리 자세와 종신 뒤편으로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장생사(長生寺) 종(1086)에 보이는 구름 위에 않은 합장형 보살상이 새롭게 등장한 점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이 종은 계지사종과 거의 유사한 11세기 중엽에서 장생사종이 만들어진 1086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 논문이 필자에 의해 발표된 바 있다. 이처럼 종신의 부조상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지만 고려 범종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불교신문3331호/2017년9월20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