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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및 울림소리 세계 으뜸

밀납주조기법으로 두께 얇고

바깥문양 섬세하게 표현돼

학명 ‘코리안 벨’ 학계 인정

 

일본소재 한국범종 20년 조사

9~10세기 범종연구 간극 메워

 

시대별 대표유물 순차적 소개

범종 가치 중요성 재조명되길

최응천 교수. 사진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범종은 불전 사물(四物) 중 하나로,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법구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다. 마음까지 울리는 깊고 청명한 범종소리는 원음(圓音)이라고 해 부처님 가르침으로 비유될 정도다.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 사찰에서는 아침저녁 예불 때마다 타종의식을 행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된 이후부터 꾸준히 범종이 만들어졌다. 특히 상원사동종과 성덕대왕신종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범종은 독특한 형태와 외부장엄, 울림소리가 웅장하다.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코리안벨(KOREAN BELL)’이라는 학명까지 있다. 국내는 물론 일본 등에 전해지고 있는 한국범종을 시대별로 소개해, 잊고 지냈던 범종의 가치와 우수성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필자가 범종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석사학위 논문 주제로 ‘고려시대 청동금고의 연구’를 정해 공부하면서부터다. 금고(金鼓)는 글자그대로 쇠북이란 의미인데, 사찰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대중을 모을 때 사용하는 의식구로 금구(禁口) 반자(飯子, 盤子)라고도 불린다. 고려시대 반자를 연구하면서 반자와 범종을 함께 주조했던 금속공예 장인인 한중서를 알게 됐다. 13세기 초중엽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는 말단 군사인 수녕궁주방(壽寧宮主房)의 시위군(侍衛軍)에서 별장동정(別將同正)이란 정7품으로 승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만든 범음구(梵音具)들을 보면 고령사명 반자 외에도 청림사종, 신룡사명 소종 등 5점이 남아 있는데, 13세기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활동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생전에 주조했던 작품들을 살펴보다가 범종으로까지 연구영역을 확대하게 됐다.

그러다 1983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하고 일본으로 파견근무를 가게 됐다. 규슈(九州) 후쿠오카시립박물관에서 반년을 지냈는데, 그 때 규슈 아마키시(甘木市)에서 고려시대 범종이 발견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종을 직접 조사하면서 일본에 상당수의 한국범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박물관도 고려 범종을 3점이나 소장하고 있었고, 규슈지방에만도 10여 점에 달했다.

규슈를 시작으로 관동, 관서지방까지 조사영역을 확대하면서 53점이 일본에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때부터 본격적인 연구조사에 착수했다. 1989년에 시작해 2000년까지 10년 넘게 일본 내 한국범종 조사를 위해 발품을 팔았다. 두 세 점의 범종을 조사하기 위해 오키나와까지 찾아갔다. 열심히 갔더니 대동아 전쟁 때 불타 용뉴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고, 오사카에서 본 종은 폭격을 맞아 3분의1만 전해지기도 했다. 폭격으로 인해 파손된 종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연구가 탄력을 받은 것은 일본 나라박물관 초청을 받아 국비장학생으로 1995년부터 1996년까지 일본에 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서다. 2년 동안 일본 전역에 있는 범종 상당수를 조사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문화재를 한국연구자가 직접 조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반환을 요구하거나 도난당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인지 한국인에게 보여주는 것 자체를 꺼리는 곳이 많았다. 실제로 범종 조사를 위해 한 곳을 세 번이나 찾아간 적도 있었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나마 일본 소재 한국범종을 찾아 조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관계자와 공동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한국불교계와 학계에서 잊힌 우리나라 범종에 대한 소식을 많이 전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 쓰루가(敦賀)시 죠구진자(常宮神社)에 보관돼 온 진주 연지사종이다. 일본 국보로 지정돼 있는 이 종은 지금 수장고에 있지만, 그 때만해도 밖에 걸려 있었다. 1993년 처음으로 이 종을 조사했을 때 보존상태가 좋지 않았다. 소금기 머금은 바람을 그대로 맞은 탓에 표면은 파랗게 녹슬고 일부는 구멍이 난 상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9~10세기 범종으로 통일신라시대 흥덕왕 8년(833)에 조성됐다는 명문은 남아 있어 우리나라 범종연구사에 중요한 자료다.

같은 해 시마네현 고묘우지(光明寺) 소장 범종도 조사하면서 통일신라시대 범종이라는 것도 밝혀냈다. 당시 일본에서는 한국범종이라는 인식만 있었는데, 청주 운천동 범종과 비교를 통해 9세기 중엽에서 후반경에 주조된 종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역시나 해풍으로 많이 훼손된 상태였는데, 주철장인 원광식 대표가 운영하는 성종사가 복제품을 만들어 기증하게 하고 원 종은 수장고로 이운했다. 이같은 연구성과를 일본 학계에도 소개하면서, 한국범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20여 년간 일본에서 조사를 다니면서, 우리나라에는 남아 있지 않은 범종들을 확인할 때마다 만감이 교차했다. 한국범종이 잘 보존돼 온 것에 대한 다행스러움도 있지만,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들을 마주하면 안타깝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사찰이나 신사에 보관된 한국범종 상당수는 쇼군(將軍)들이 기증한 것으로 약탈에 의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름답고 좋은 종은 모두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게다가 대다수 범종들은 명문이 남아 있어 한국범종 편년연구에 기준이 될 만한 성보들이 많아 더 아쉽다. 국내에는 725년 조성된 상원사동종과 771년 제작된 성덕대왕신종 이후 9~10세기에 제작된 범종이 남아 있지 않다. 선림원종과 실상사종이 깨진 상태로 전해질 뿐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끊어진 200년 간극을 메워줄 유물이 있다. 죠구진자에 남아 있는 연지사종만 봐도, 제작연대가 833년으로 명확하다. 또 오이타현 우사진구(宇佐神宮)에는 904년에 제작된 범종이 있다. 이밖에도 9~10세기 사이에 조성된 범종 10여 점이 일본에 소재해 있는데 이것을 제외하고 한국범종을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일본에 전해지는 이 시기 한국범종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

특히 한국범종은 한중일 삼국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힌다. 여운이 긴 울림소리, 형태와 의장(意匠)도 뛰어나다. 중국종은 사형(砂型)을 사용한 주조법을 쓰고 철제로 만들어져 전쟁 속에 무기 만드는데 공출돼 상당수가 녹아 없어졌다. 강화 전등사에 있는 숭명사종도 중국 북송시기에 만든 철제종인데 일본이 무기를 만들겠다고 우리나라에 갖다 놓은 뒤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예다. 일본 종은 높이 5m에 달하는 종도 많은데 사형주조이기 때문에 문양이 섬세하지 못하다. 두께가 두꺼워 소리도 그만큼 맑지 않다. 반면 밀납주조기법을 사용하는 한국범종은 두께도 얇고 문양도 세밀하며 소리는 맑다.

고려시대 종은 모두 국가지정문화재가 됐지만, 조선시대 범종은 아직까지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 범종은 명문이 명확하게 남아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상당하다. 누가 불사에 참여했고 중량은 얼마이며, 어떻게 일을 나눠했는지까지 세세히 기록돼 있어 불교공예는 물론 사찰경제까지 제반사항을 연구하는데 좋은 사료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화재 지정은 상대적으로 더디다. 1644년 만들어진 가평 현등사 종은 2012년에야 비로소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됐다. 조선후기 범종은 사찰에 많은데 이 중 50%는 16~17세기 사이에 조성됐다. 우리가 사찰에서 흔히 보고, 가끔가다 타종체험을 해본 그 종들 중에 절반은 400년 전에 만들어진 범종일 수 있다.

전적이나 불상, 불화 위주로 문화재 지정이 이뤄진 까닭에 상대적으로 금속공예품은 소외됐었다. 최근 들어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18~19세기 만들어진 유산들도 조속히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며, 추가훼손을 막기 위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범종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너무 가까이 있어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잊고 지낼 때가 많다. 이번 연재를 통해 스님과 불자들이 사찰에서 보고 지나친 범종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불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범종에 남아 있는 중요한 명문, 예를 들면 제작자나 발원자, 소재지 등을 함께 소개할 계획이다. 범종연구 기초자료로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응천 교수는…

동국대와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규슈(九州)대에서 ‘한국 범음구(梵音具)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3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해 국립춘천박물관 초대관장,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과 아시아부장, 미술부장을 거친 뒤 2008년부터 현재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국대 박물관장, 동악미술사학회장을 역임했고 2010년부터 문화재청 동산분과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불교미술대전> <금속공예> <한눈에 보는 입사> 등의 저서와 ‘통일신라 범종의 특성과 변천’ ‘한국범종의 특성과 변천’ ‘일본에 있는 한국 범종의 종합적 고찰’ ‘한국 범종 연구의 성과와 과제’ 등 40여 편의 범종 관련 논문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불교신문제3269호-2017년1월28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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