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도시인들은 생활의 무게에 눌려 참나 찾기에 짬을 내기 어렵다. 템플스테이에 참여해 참선을 배우는 것이 참나를 찾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아침밥상 숟가락 들 때도
화두 챙겨 마음 들여다보자”
사람과 부딪히고 시간에 쫓긴다. 부딪히면서 쫓기고 쫓기면서 부딪힌다. 바쁘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봐야 발에 땀만 차는 느낌이다. 입시 생각, 취업 생각, 승진 생각, 자식 생각, 노후 생각 … 마음을 줄기차게 괴롭혀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사회다. 직원으로 가장으로 부모로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지만, 정작 나를 위한 소득은 없는 기분이다. 이렇듯 자신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참선을 권한다.
참선은 禪定으로 몰입하는 일
번뇌 누이고 참다운 지혜 찾아
마음을 깨끗이 빨고 다리는 것
어느 사찰의 템플스테이나 참선을 기본적 프로그램으로 포함하고 있다. 웰빙 바람과 맞물려 참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욕구도 점점 커져가는 추세다. 참선은 선정(禪定)으로 몰입하는 일이다. 참다운 지혜를 낼 수 있도록 불안을 앉히고 번뇌를 누이는 것, 마음을 깨끗하게 빨고 다리는 것이다. 호수가 파문이 일면 호수에 비친 사물의 모습은 일그러지지 마련이다. 물결이 잔잔해지면 본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참선수행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먹고살기 위한’ 오랜 투쟁의 와중에서,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방법이다.
〈유가사지론〉에는 수행의 구체적 의미가 명시돼 있다. “현재의 올바른 법에 즐거운 마음으로 머무르는 일(현법낙주, 現法樂住)”이며 “그 힘으로 삶을 지탱하고(인생공덕, 引生功德)” “사실을 사실 그대로 느끼는 여실수각(如實隨覺)”의 원동력이 된다. “자기의 올바른 본분을 지키기 위한 길, 자기 삶의 주인으로 복귀하기 위한 수단(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지종스님)”이자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시련을 견뎌내는 힘을 길러주는 것(조계종 기본선원장 지환스님)”이다.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복귀해 진정한 행복을 누리려면 참선이 필요하다.
구한말 한국불교의 중흥을 이끈 경허 만공스님의 가풍이 선연한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이 총림의 최고 어른이다. 스님은 부처님오신날 본지와의 특별인터뷰에서 우리 자신이 부처임을 통찰하기 위해서 참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처님은 우리 모두가 당신의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45년 설법이 전부 이 한 마디로 귀결됩니다. 부처님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였듯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합니다. 우리도 부처님의 본성을 품고 있습니다. 단지 숨겨져 있어 알아채지 못했거나 무명(無明)의 방해로 인해 자꾸 쓸데없는 곳에 마음을 쓰는 탓에 본성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부처임을 모르고 하늘과 귀신을 숭배하고, 태양과 물 앞에 엎드리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자기상실의 시대를 치유할 회광반조(回光返照). 문자와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마음속의 불성을 직시한다면 내가 곧 부처라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다. “‘모든 생명은 자기 안에 불성(佛性)을 갖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불교 이외의 종교는 진리가 자기 밖에 있다고 강변합니다. 신(神)에게서 구원을 받으려 하고, 절대자에 의지해 행복을 얻으려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자신의 본성을 제대로 보면 남에게 구걸하지 않고도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확언했습니다. 알다시피 부처님이 탄생해 외친 최초의 일성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입니다. ‘이 세상에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부처님의 자화자찬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모든 생명 각자가 스스로 존귀하다는 것을 깨우치라는 경책입니다. 질투심과 열등감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생명에 울리는 커다란 경종입니다.”
화두 참구…본성 깨치는 간화선
분별 끊어져 ‘대자유 세계’ 도달
“인내.노력 통한 부단한 자기갱신”
조계종립 특별선원이 있는 문경 봉암사 수좌 적명스님도 존경받는 선지식이다. 스님에 따르면 참선은 정(定)과 혜(慧)를 계발하는 작업이다. 정은 마음의 본바탕이요, 혜는 본바탕에서 드러나는 능력이다. 참된 지혜는 맑은 거울과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호수가 맑고 고요하면 수면 위로 푸른 하늘이 있는 그대로 나타나지만, 물결이 치면 하늘의 모습도 일그러지기 마련이다. 결국 실상을 정확하게 보려면 마음이 평온해지도록 수행을 해야 한다는 요지다.
그렇다면 참선은 어떻게 하는가. 한국불교 대표종단인 조계종의 정통수행법은 간화선(看話禪)이다. 화두를 참구해 본성을 깨우치는 수행법이다. 화두란 그저 말이라는 뜻이다. 물론 단순한 말이 아니라 모든 사유와 분별의 통로를 차단하는 독특한 언어다. 유명한 화두인 ‘뜰 앞의 잣나무’ ‘도는 마른 똥막대기’ 등은 무엇이 진리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언어의 본질적 속성은 이분법적 개념을 초월한 절대적인 말이다. 말로 말을 부숴 세상의 시시비비에서 오는 괴로움을 벗어나게 해 준다.
화두의 의미에 대해 부단히 의심해나가면 어느 순간 생각이 끊어진다. 사유와 분별이 끊어져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선도 악도 아니며 알음알이가 완전히 사라진 대자유의 세계에 도달한다. 남보다 잘 산다는 우월감, 남보다 못 산다는 열등감이 뿌리 뽑힌다.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이것’이 나의 주인공이자 참모습임을 알 수 있다. 화두를 타파하면 누군가의 무엇이 되지 않아도 스스로 자족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화두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을 때만 드는 것이 아니다. 종국 당나라 마조도일 선사는 “평상심이 도”라고 강조했다. 일상생활의 평온한 마음속에 도가 깃들어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는 수행하는 장소와 자세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動靜). 삶의 모든 순간순간마다 화두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아침밥상에서 숟가락을 들 때에도 남에게 욕먹을 때에도 화두를 챙기고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간화선을 창시한 대혜종고 선사의 당부다. “생활하다가 번거로운 일로 사량분별(思量分別)할 때도 그것을 애써 물리치지 말고 사량분별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가볍게 화두를 드십시오. 그렇게 하면 무한한 힘을 깨닫는 동시에 무한한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서장(書狀)> 누구에게나 버겁고 모진 삶이다. 조직생활에 부대끼며 생활인의 무게에 짓눌려, 참나 찾기에 짬을 내기 어렵다.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은 재가불자들에게 “운동하듯이 수행하라”고 다독인다. “하루에 10분, 길면 30분 염불이든 화두참선이든 관법이든 절이든 무엇이든 해보라는 권장이다. 계속해서 정신을 하나로 모으면 어느 땐가 삼매에 들고, 희열을 체험하리란 것이다.
중국의 선종을 창시한 보리달마 스님은 궁극적인 깨달음의 길로 사행(四行)을 제시했다. 인생의 고역을 스스로의 업보로 여겨 감내하는 일이 보원행(報怨行)이요,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인연에 의한 것으로 보고 덤덤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일이 수연행(隨緣行)이다. 일체를 공(空)으로 인식해 탐욕을 버리는 일이 무소구행(無所求行)이요, 진리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일이 칭법행(稱法行)이다. 주어진 상황에 굴복하지 말고 불교의 가르침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말라는 격려다. 인내와 노력을 통한 부단한 자기갱신. 참선의 시작이자 끝이다.
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역대 선사들이 ‘참선’을 말하다
반야는 지혜다. 생각마다 어리석지 않고 항상 지혜를 행하는 것이 반야행이다.- 육조혜능 스님, <육조단경>
참선이란 조사의 관문을 뚫는 것이다. 묘한 깨달음은 모든 생각의 길을 끊어야 얻어진다. 조사의 관문이 뚫리지 않고 생각의 길이 끊어지지 않으면 그대는 풀잎이나 덤불에 붙어사는 허깨비나 다름없다. - 무문혜개 스님, <무문관>
화두를 들 때는 평소에 영리하고 총명한 마음으로 헤아려 분별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으로 헤아려 분별하면 십만 팔천 리를 가도 아직 멀다. - 대혜종고 스님, <서장>
붉은 몸뚱이 위에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는 참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항상 그대들 얼굴로 드나들고 있으니 보지 못한 사람은 봐라. - 임제의현 스님, <임제록>
공부를 하되 가장 먼저 생사심(生死心)을 깨뜨려야 한다. 바깥세계와 몸과 마음이 모두 거짓 인연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실체가 없는 주재자임을 간파해야 한다. 생사심을 깨뜨리지 못하면 죽음을 재촉하는 귀신이 생각 생각에 멈추지 않으니 이것을 어떻게 따돌리겠는가. - 무이원래 스님, <참선경어>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다.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이 가득차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 청허휴정 스님, <선가귀감>
[불교신문 2642호/ 7월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