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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고갯길은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따로 없다. 신사임당을 비롯하여 많은 시인묵객들의 문재(文材)가 되었던 이 길이 지금은 문명의 도움으로 한결 편해졌다. 온 산을 들쑤셔 놓은걸 보며 진시황의 충복이었던 몽염이라는 신하의 자결이 뜬금없이 생각난다.
옛날 절터에 계신 이 석불은 광배만 빼면 전체적으로 상당히 온전하다. 하나의 돌에 광배와 몸체를 같이 새겨 번드러움이 없어 안정감이 있고 지대석과의 비례 또한 매우 편안하다. 주변에 있던 봉학사, 이후 보광사라는 절이 폐사가 되고 이곳에 모시면서 절 이름도 아예 석불사로 바꾸어 가람을 조성했다. 마리실 같은 육계가 다소 손상된 듯이 보이나 소발(素髮)형태라서 그런지 크게 표가 나지 않는다. 세월 탓에 이목구비가 뚜렷하지는 않아도 귀는 여유가 있다. 우견편단의 법의는 어깨에서 한번 꼬아지고 수인(手印)이 오른손은 설법인을, 왼손은 결가부좌를, 한 오른발 위에 선정인으로 놓으셨다.
뒷면에 있다는 명문은 하안(下眼, 보는 눈이 얕음)이라서 찾을 수가 없다. 세월 앞에 돌인들 무사하겠는가. 탁본이라도 한 장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기록의 습관이 새삼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상대석은 단판형의 앙련을 새기고 중대석에는 안상을 두지 않는 대신 우주(隅柱, 모서리를 기둥처럼 도드라지게 깎음)를 살짝 넣었고 하대석은 복판형으로 복련을 새겨 미적 감각을 살렸다. 초석에는 중대석에서 생략한 안상을 넣어 좌대 전체에 조화를 갖추고 있다.
인근 미천골 선림원지에는 한 면에 두 분씩의 불, 보살, 신장상을 모신 삼층석탑(보물 제444호)을 비롯하여 석등(보물 제445호), 탑비(보물 제446호), 부도(보물 제447호)가 있다. 입구 상평초등학교 현서분교에도 석불과 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119·120호)이 있는데 이렇듯 전국 초중등, 대학교에 100여 채의 석불과 탑이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절집으로 모셔 와야 할 일이고 협의만 되면 법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 계신 곳: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불교신문3111호/2015년6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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