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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욕망을 어떻게 보나?

문: 불교에서는 욕망을 좋지 않은 것으로 설명하는데, 만약 욕망이 없다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스스로 조절 못하는 탐욕은 독

자리이타의 원력으로 승화해야

답 : 욕망을 전문적으로 분석할 때는 매우 복잡해집니다. 본능적인 것도 있고 심리적인 것도 있으며, 독소로 일컫는 탐욕도 있고 불국정토를 이루겠다거나 성불하겠다는 큰 원도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분명 번뇌인 욕망이 남아 있으면 깨달음의 경지가 아니라고 유식론 등에서 밝히고 있지요. 그렇긴 하지만 무언가를 하고자하는 욕망 자체를 무조건 나쁘다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욕망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동기가 됩니다. 반대로 욕망이 없으면 무기력해지고 무능력해지지요. 욕망을 조절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을 때를 탐욕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걷잡을 수 없는 화재와 같이 위험한 것이며,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조절능력을 상실한 탐욕을 경계하는 것이지요.

심리적 욕망은 바람(願)입니다. 이 바람이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항상 바른 방향으로 집중해야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람이 자리이타적인 방향으로 확고해지고 그에 따른 노력이 수반되는 것을 원력(願力)이라고 합니다. 욕망을 원력으로 승화한 사람은 다른 방향을 돌아보지 않고 매진해야만 합니다. 그것을 정진이라고 하지요. 노력을 하되 결코 중단하지 않고 목적을 이룰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을 뜻합니다.

출가한 수행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강한 바람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삶에 만족하질 않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결혼생활이나 재산의 축적 등에 만족하질 않고, 해탈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해탈에 집중하여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게 됩니다. 이것을 수행이라고도 하고 바라밀행이라고도 합니다. 큰 원력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 힘인 선정과 지혜를 갖게 하지만, 사사로운 작은 욕망을 탐하는 것은 욕망의 포로가 될 가능성이 짙습니다. 물론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긴 하지요.

요즘의 젊은이들을 보면 진정한 바람이 없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저 무기력하게 세상의 관행을 따라가거나 아니면 부모님 품안에서 안주하려고 합니다. 억대가 넘는 교육비를 투자하여 대학을 나오고도 세상을 탓하며 무위도식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매사에 무기력하기만 하여 어떤 일도 성취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저 게임 따위나 하며 세월을 보냅니다. 이 경우에는 큰 욕망의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좋은 처방이 됩니다.

성공한 사람이라고 일컫는 이들은 욕망을 하나로 집중할 줄 안 것이지요. 찰나마다 다르게 일어나는 자잘한 욕망을 쫓아다니질 않고 큰 욕망의 그림을 선명하게 그려두고, 그것을 이루려고 많은 것을 포기하며 한길로 내달렸던 이들입니다. 물론 그 결과가 행복한 것이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긴 합니다.

욕망은 불과 같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이 불을 가지고 놀면 화재를 일으켜 비극이 될 가능성이 많고, 어머니가 불을 다루면 가족을 건강하게 할 음식을 만들지요. 나쁜 마음으로 불을 사용하면 사람들을 죽이는 재앙이 되고, 좋은 마음으로 불을 사용하면 세상을 따뜻하고 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욕망도 이와 같아서 어리석고 삿된 사람의 욕망은 화근이 되고, 지혜롭고 자비로운 이의 원력은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만들지요.

송강스님 /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503호/ 2월25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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