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미래 ‘삼세’구분… 3단 구도
극락정토서 육도중생 맞이하는 불.보살
장중하면서 생동감 넘치는 야외 재의식
생사윤회 반복…세속인들의 생활상 묘사
유교의 제사(祭祀)가 조상이나 선현의 음덕을 기리는 것에 주된 목적을 두고 있다면, 불교 우란분재의 기원(祈願)은 아귀도에 떨어진 부모가 극락에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하려는 데 집중되어 있다. 우란분재에 사용되는 감로탱화는 불교적 세계관 속에 우리 전통의 조상숭배사상과 민간신앙이 녹아 있어, 그 어느 것보다 한국인의 정서와 가까운 불화라 하겠다. 감로탱화는 부처님의 수제자인 목건련이 아귀도에서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겪는 어머니를 그 수난으로부터 구제하여 극락에 왕생케 했다는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의 내용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란분경〉은 중국 서진(西晉) 시대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했다고 전해지는 한역 경전으로, ‘우란분’은 산스크리트어로 울람바나(Ullambana : 심한 고통이라는 뜻)이며, 원래는 아바람바나(Avalambana : 거꾸로 매달린다는 뜻)에서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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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파주 보광사 감로탱화의 전체 모습. |
감로탱화의 ‘감로(甘露)’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비한 이슬로, 현명한 임금이 어진 정치를 베풀면 하늘이 그 상서(祥瑞)의 징조로 내린다는 달콤하고 신령스러운 액체를 말한다. 인도에는 암리타(Amrita)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힌두교의 탄생 신화에 등장하는 신비의 액체로 감로와 같은 성격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향기가 좋고 꿀 같이 달다고 하며, 이것을 마시면 갈증과 마음의 번뇌가 사라지고 삶의 의지가 되살아난다고 한다. 또한 암리타는 죽은 사람도 부활시키는 신령스러운 효능을 가지고 있어, 불교에서는 이것을 부처님의 교법이 중생을 구제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감로탱화의 소의경전은 〈우란분경〉이다. 그러나 그림에 나타나 있는 내용들을 분석해 보면, 우란분경변상도의 한계를 넘는 광범위한 불교의 세계가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옥문을 나서는 영혼들의 모습이나 한빙지옥.화탕지옥.발설지옥(拔舌地獄) 등에서 참혹한 형벌 받고 있는 지옥 중생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은 〈지장경〉의 내용과 연관되어 있으며, 아미타여래와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그리고 인로왕보살 등이 지옥 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장면은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등의 정토삼부경과 관련이 있고, 아미타여래의 보문시현(普門示現)으로 나타난 관세음보살의 역할은 〈묘법연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 등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다.
감로탱화는 형식상으로는 상.중.하의 3단 구도로 되어 있고, 내용상으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의 시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먼저 상단을 보면 육도(六道) 중생을 극락정토로 맞아들이는 불?보살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우란분재와 같은 영가 천도 의식을 행하는 목적이 망자(亡者)의 영가가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데 있는 만큼 이 상단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감로탱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상단에 등장하는 여래들은 3신불을 비롯하여 5여래, 7여래이며, 보살들은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인로왕보살 등이다. 여기서 삼신불은 석가모니불.비로자나불.노사나불을, 5여래는 다보여래.묘색신여래.감로왕여래.광박신여래.이포외여래를, 7여래는 다보여래.보승여래.묘색신여래.광박신여래.이포외여래.감로왕여래.아미타여래를 말한다. 고혼들을 직접 맞이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보살이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며, 이들은 대개 구름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극락의 길로 인도하는 보살이라는 뜻을 가진 인로왕보살은 번(幡)을 들고 아미타여래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두 명의 인로왕보살이 함께 망자를 인접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중단에는 재 의식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대규모 야외 법회가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것처럼 그 모습이 장중하고도 생동감이 넘친다. 화면 중앙에 오색의 번(幡)이 휘날리는 커다란 성반(盛盤)이 놓여 있고, 그 위에 백미를 비롯하여 과일, 향, 초 등 각종 공양물과 공양화들이 진설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부분은 처음 육신통(六神通)을 얻은 목건련이 그의 어머니가 죽어서 아귀로 태어나 음식을 먹지 못하는 고통을 겪고 있음을 보고 부처님께 구제할 방도를 청하자 부처님이, “온갖 음식과 과실을 갖추어 큰 그릇에 담고 향유로 불을 밝히고, 자리를 와구(臥具)로 깔고, 세간의 훌륭한 공양구(供養具)를 모두 갖추어 그릇에 담고 시방의 모든 대덕스님과 여러 스님들을 공양하라.”고 일러 준 〈우란분경〉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성반 주변에는 재 의식을 집전하는 스님, 독경하는 스님, 큰 북을 두드리고 바라춤을 추는 의식승(儀式僧)들이 보인다. 또한 의식을 지켜보는 객승(客僧), 합장한 채 제단을 향해 서 있는 왕후장상(王侯將相)과 선왕선후(先王先后), 성반에 올릴 백미를 머리에 이고 나르는 불자들, 그리고 구경하는 남녀노소들의 모습도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의식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행동과 표정 하나하나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한 폭의 풍속화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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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사진 1의 세부도. 술집, 대장간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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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사진 1의 세부도. 작은 아귀, 싸움 등. |
성반 앞에는 아귀가 앉아 있다. 보통 2명의 아귀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벌거벗은 상체, 그 위에 휘날리는 박대(博帶), 짧은 바지, 양쪽 귀 옆으로 무성하게 솟아난 붉은 머리카락이 아귀의 특징이다. 손에 밥그릇을 들고 있는 경우도 있고, 맨 손인 경우도 있다. 큰 아귀와는 별도로 작은 아귀들도 등장하고 있는데, 생긴 모양은 큰 아귀와 같으나 발우를 들고 성반을 향해 구걸하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점이 다르다.
아귀는 굶주린 귀신, 또는 사람처럼 생겼으면서도 사람이 아닌 존재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죽은 조상의 영혼을 프레타(Preta)라고 하는데, 이 영가가 자손들이 바치는 음식 공양을 원한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가 불교에 도입이 되어, 생전에 탐욕적인 삶을 산 사람은 죽은 후에 육도(六道) 중 아귀계로 떨어져 굶주림에 허덕이는 삶을 살게 되는 귀신의 뜻으로 전용되고 있다. 아귀도는 염마왕이 다스리는 세계로, 그곳의 아귀들은 음식을 입에 넣으면 돌이나 뜨거운 불덩어리로 변하기 때문에 먹을 수가 없고, 입은 크지만 목구멍이 바늘구멍처럼 작아 아무리 먹어도 배를 채울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하단에는 세속인들의 다양한 생활상이 그려져 있다. 대장장이.어물장수.엿장수.포목장수.술집주인.짚신장수.농부 등 시정(市井)의 농상공인들 비롯해서, 장대 위의 묘기, 죽방울 놀이, 줄타기, 가면극 등 각종 잡희와 기악 등으로 민중들의 애환을 달래 주는 예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뿐만 아니라 굿판의 무당, 춤추는 무녀와 무동, 그리고 왕궁의 생활을 연상시키는 장면들도 눈에 띄며, 심지어는 부부싸움 하는 아버지를 말리는 아들의 애처로운 모습까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생들이 죽으면 생전의 업에 따라 다시 태어나고 태어나서는 또 업을 짓고 하면서 잠시도 쉴 틈이 없이 생사윤회를 반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호랑이에게 물리거나 깔려 죽거나 나무 위에서 떨어져 죽거나 전쟁터에서 칼에 찔려 죽는 장면을 묘사한 것은 갑작스럽게 죽는 사례를 예시한 것으로, 불자들은 이처럼 비명에 죽어간 영가들은 반드시 천도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현존하는 감로탱화의 중요 작례로 우학문화재단 소장 감로탱화(보물 제1239호), 안성 청룡사 감로탱화(보물 제1302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감로탱화 등이 있다. 이들 감로탱화는 화의(畵意)나 제작 목적은 대동소이하나 내용에서는 부분적으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우학문화재단의 감로탱화는 그림의 상단 중심부에 삼신불이 배치되어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숙종 7년(1681)에 제작된 이 감로탱화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감로탱화(1649)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작품이다. 청룡사 감로탱화는 상단에 아미타삼존을 포함한 7여래와 극락세계로 영혼을 인도하는 인로왕보살 등을 그려 이상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조선 숙종 18년(1692)에 제작된 이 불화는 안정된 구도, 선명한 색채로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감로탱화의 특이점은 재 의식 장면과 성반이 재단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하단이 강조되어 세속의 생활상이 화면에 확대되어 나타나는데 따른 결과라 할 것이다.
감로탱화는 〈우란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의식용 불화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런 불교적 세계관 속에서도 한국인의 생활 감정이 농도 짙게 살아나고 있어 한국적 불화의 대표격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감로탱화는 그 속에 조선시대 시정의 생활 모습이 잘 드러나 있어 한 폭의 풍속화로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51호/ 8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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