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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골굴사의 원효



굴(窟)은 이 세상 어디에 있는 것이든 어둡고 습하다. 몇몇 짐승에겐 숨어 있기 더없이 좋은 방이겠으나 인간은 묵을 곳이 못 된다. 물론 몸과는 인연이 맞지 않는다 해도 눈에는 제법 정겨운 물건이다. 돌들이 자아내는 깊고 서늘한 질감은 왠지 낯익다. 그 옛날 미련 없이 박차고 나왔던 자궁이 이렇게 생겼을 것이다. 언젠가 속절없이 돌아가야 할 자궁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란 생각. 그래서 굴은 푸근하면서도 을씨년스럽다.




고독의 골굴 안에서 중생에 佛法 전하다




골굴사가 원효대사의 열반처였는지 확실치는 않다. 절은 경주 외곽에 있다. 시내에서 차량으로 50분 거리다. 경주시 양북면 안동리, ‘기림사 3km’라고 쓰인 이정표 앞에서 절을 만났다. 함월산 자락 한편의 골굴사(骨窟寺)는 이름처럼 굴이 지천으로 널린 사찰이다. 화산 폭발로 생성된 암굴이다. 크고 작은 구멍이 숭숭 뚫린 응회암 지층은 공룡의 척추와 갈빗대를 닮았다.

<사진> 골굴사 나한굴 안에 놓인 불상. 멀리 신라 천년고도의 산하를 응시하고 있다.

원효스님이 여기서 생을 마감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 다만 혈사(穴寺)라는 곳에서 입적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말미암아 어림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구멍 혈(穴).’ 절 안에는 스님의 흔적이 전연 남아있지 않다. 다만 골굴사 주지 적운스님이 원효스님의 44대손이라는 것. 당신의 속성은 경주 설(薛)씨다. 사라진 게 아니라 원래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골굴사는 외려 불교 전통무술인 선무도(禪武道)의 수련장으로 인기가 높다.

경내 한 구석 게시판에는 골굴사의 선무도를 소개한 신문 스크랩이 한가득 달렸다. 선무도를 처음 듣는 경우에도, 세인들의 관심은 원효가 아닌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십중팔구 쏠린다. 암벽의 꼭대기에 새겨진 마애여래불좌상은 보물 제581호다.

높이 4m, 폭 2.2m 정도인데 제작 연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다. ‘세련되지 못한 옷주름 표현 탓에 삼국시대의 작품’이라는 주장에 대해, ‘평면적인 신체와 수평적인 옷주름, 겨드랑이 사이의 V자형 옷주름이 9세기 후반 양식이어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란 주장이 맞서는 형국이다. 학계의 사정이야 어찌 됐든 문외한들은 인생에 도움이 될 법한 신성(神性)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난리다. 한숨과 탄성을 반복하며 악물고 난간과 밧줄을 쥐었다.

골굴사는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이다. 6세기 무렵 서역에서 온 ‘광유성인’이란 사람이 일행을 이끌고 경주 땅을 밟았다. 그들은 함월산 석벽에 12개의 굴을 파고 현재의 골굴사를 창건했다.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나한굴, 신중단, 칠성단, 산신당 … 절에서는 굴마다 이름을 붙이고 작은 불상을 얹어놓아 참배객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산중일기>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정시한은 “여러 채의 목조와가로 지어진 전실을 연결하는 회랑이 있고 단청을 한 석굴사원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병풍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고 적었다. 겸재 정선은 그림으로 절을 기렸다(골굴석굴도). 석굴의 중간쯤 오르면 사람이 누워 뒤척여도 될 만큼 널찍한 동혈도 보인다. 스님이 눈을 감았다면 여기일 것이다. 정시한의 증언에 따르면 300년 전 골굴사의 모습은 현대보다 훨씬 화려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은 전실(殿室)도 그것들을 연결했다는 회랑(回廊)도 온데간데없다.

예전엔 각각의 굴마다 법당이 조성되어 있었으리라 더듬어볼 수 있다. 작위와 수사가 송두리째 탈색된 거칠고 단단한 공간은 사시사철 굳은 낯빛으로 세상과 대면한다. 원효스님이 여기서 열반한 게 사실이라면, 골굴이 지닌 적막과 경색의 심상에 주목해 임종의 장소로 택한 것일 게다. 세상의 모든 유(有)가 빚어내는 모순을 묵묵히 인정하는 대신 자신만은 완벽한 무(無)를 지향했던 도인에게, 가진 거라곤 고독뿐인 골굴의 몸통은 무척 어울리는 도반이다.

스님과 뼈와의 인연은 지중하다. ‘해골물’ 전설은 책깨나 읽은 초등학생도 아는 지식이다. 당나라 유학길 도중 노숙을 하던 스님이 간밤에 목이 말라 잠을 깼고 근처에서 물을 찾아 달게 마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게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이었더라는 이야기.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허상이자 편견이니 스스로에게 속지 말라는 교훈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닫고 난 뒤 당신은 자아의 개벽을 이뤘다. 우선 유학을 접었다. 진리는 당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신라에도 있고 발밑에도 있는 것이니까. 좀더 나은 출세의 길을 제 손으로 갈아엎은 일이기도 했다. ‘신정아’를 부러워했거나 시기했던 사람들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결단이다. 요석공주와 잠자리를 하며 자폭했고 아들 설총을 낳자마자 소성거사(小姓居士)라 스스로 깎아내렸다.

당대 최고의 엘리트 계급이었던 승려라는 특권을 벗어던진 채 말 많고 탈 많은 저잣거리를 나돌았다.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나리라)’는 <화엄경> 구절에서 따온 무애가(無碍歌)를 장삼이사들 틈에서 부르고 다녔다. 가무와 잡담 속엔 불법을 교묘하게 비벼 넣었다. 법당에 돈이나 바칠 줄 알았던 서민들의 불교가 마침내 부처를 만난 것이다.

작위와 수사가 송두리째 탈색된 거칠고 단단한 공간은

사시사철 굳은 낯빛으로 세상과 대면한다.

원효스님이 여기서 열반한 게 사실이라면, 골굴이 지닌 적막과

경색의 심상에 주목해 임종의 장소로 택한 것일 게다.

세상의 모든 유(有)가 빚어내는 모순을 묵묵히 인정하는 대신

자신만은 완벽한 무(無)를 지향했던 도인에게, 가진 거라곤

고독뿐인 골굴의 몸통은 무척 어울리는 도반이다.



스님이 한낱 파계승으로 역사 밖으로 쫓겨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위대한 저작들 때문이다. 현존하는 저술은 20부 22권이며 분실된 것까지 포함하면 100여부 240권이다. 대국의 승려들은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를 해동소(海東疏)라고 격찬하며 자신의 저서에 즐겨 인용했다.

당신은 퇴계 이황과 함께 서양인들이 가장 많이 번역하고 참고한 한국의 사상가다. 수많은 소(疏)와 론(論), 요(要)에서 스님은 일심(一心)과 화쟁(和爭), 무애(無碍)를 갈무리했다. 오직 마음뿐이며 마음과 마음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현상은 그 자체로 진여(眞如)이니 내가 손댈 이유도 손댈 필요도 없음이라. 세상 모든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내칠 수 있는 자유. 세상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니니 누구에게나 진실할 수 있는 자비.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저서 <원효의 대승철학>에서 화쟁(和爭)의 예를 소개한 바 있다. ‘늑대가 순록을 보이는 대로 잡아먹었다. 에스키모들은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늑대 소탕에 나섰다. 늑대는 눈에 띄게 감소했지만 순록은 도무지 늘어나지 않았다. 외려 비실비실 앓다가 이전보다 더 많이 죽어나갔다. 늑대가 공격하면 순록은 살기 위해 도망간다.

죽을힘을 다해 달리니까 저도 모르게 근력과 심폐기능이 강화된다. 천적이 줄어들자 동시에 생명의 활력이 감퇴한 것이다. 순록에게 늑대는 선인가, 악인가.’ 화쟁은 당위적인 양보에 의한 타협이나 조정을 뜻하지 않는다. 제 본성대로 살아갈 뿐인데(爭) 어떤 영문인지 그것이 우주를 유지하는 데 보탬이 되는(和) 오묘한 이치를 뜻한다.

이쪽에선 어린아이를 토막 내 땅에 묻고는 오리발을 내밀고 저쪽에선 생판 남의 목숨을 구하고 대신 죽는다. 부서질 듯 부서지지 않는 얄궂은 균형. 비리(非理)의 리(理). 공(空)하기 때문에 반드시 멸망하기 마련이지만 공(空)하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꿈꿀 수 있다. 끊임없이 나고 드는 생명과 끊임없이 치고 빠지는 죄들이 만들어내는 비릿한 질서. 함월(含月). 봄볕에 빛나는 ‘뼛구멍’들이 어젯밤 달빛을 삼켰던 입을 드러내고 웃는다. 한편으론 비열하고 한편으론 도도한 표정이다.

경주=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불교신문 2415호/ 4월5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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