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서울 최종국·돌람한드 부부 |
<사진>통역으로 외국인노동자를 돕는 몽골출신 돌람한드 씨(왼쪽)와 아들, 남편이 합장하고 있다.
“아내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지킴이’”
2003년 결혼해 변호사 사무실서 통·번역사 활동 몽골향 사르며 향수 달래…“사회복지사 되고파”
지난 16일 서울 안민법률사무소. 몽골출신 결혼 6년차 주부 돌람한드(31) 씨가 부당한 대우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솔롱고(가명) 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지난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해 왔다는 그의 사연을 차근히 변호사에게 한국어로 통역했다. 이어 계약을 위반한 사실에 대해 회사에 경고조치 하겠다는 변호사의 말이 끝나자 돌람한드 씨가 몽골어로 통역했다. 그러자 솔롱고 씨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돌람한드 씨는 매일 7시간씩 사무소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변호사 사이에서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다. 때론 어려운 사정을 들으며 울어주기도 하고, 일이 잘 해결됐을 때는 같이 기쁨을 나누기도 한다. 돌람한드 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정을 접할 때 마다 가슴이 아프다”며 “힘닿는데 까지 돕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남편 최종국(45)씨도 “매사 적극적이기 때문에 맡은 일을 잘 해결하도록 도울 것”이라며 부인의 활동을 격려했다. 최종국 씨와 돌람한드 씨는 2003년 1월에 몽골에서 처음 만났다. 이후 부모님에게 소개하러 간 날, 돌람한드 씨의 어린 조카들이 스스럼없이 최 씨 주위를 둘러싸고 이것저것 물어가며 음식을 건네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결혼할 마음을 굳혔다. 돌람한드 씨는 “몽골에는 어린이들이 처음 만난 사람을 허물없이 대하면 좋은 사람임을 뜻하는 속담이 있다”면서 “진실된 사람일 거라 확신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남편 최 씨의 배려로 돌람한드 씨는 1년에 한번씩 아들 승진(6) 군과 친정을 찾는다. 몽골의 추위를 몇 번 나본 승진 군은 겨울에 잔병에 걸리지 않는다. 또 매주 2~3번씩 식탁에 올라오는 몽골 음식도 최 씨보다 더 잘 먹는다고 한다. 돌람한드 씨가 통.번역사로 일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한국어 실력이 뒷받침됐다. 한국으로 시집온 이후부터 TV 드라마와 어린이프로그램으로 지난 3년간 독학한 그녀의 실력은 수준급이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주위에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곳이 없어 혼자 공부하게 된 것이 독학으로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남편은 아내의 회화 선생 역할을 충실히 했다. 매일 퇴근 후 돌아오면 아내의 질문공세에 일일이 답변하며 3시간이나 4시간씩 꾸준히 대화했다.
하지만 매번 어려운 사정을 접하다 보면 그녀의 마음은 늘 편치만은 않다. 가끔 퇴근 후 돌아온 아내의 어두운 얼굴을 대하는 남편의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부부는 가끔 조계사를 찾아 지친 마음을 달랜다. 특히 돌람한드 씨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하루에 한번 기도를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매번 사찰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동대문시장에서 구입한 몽골 향가루를 피워놓고 부처님을 떠올리며 진언을 외운다. 돌람한드 씨는 “향을 피우고 있으면 고향으로 돌아간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 진다”면서 “항상 부처님이 곁에서 지켜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씨와 승진이도 돌람한드 씨가 기도하고 있으면 말없이 다가가 함께 기도하기도 한다. <사진>통.번역사로 일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남편과 함께 지난 2003년 몽골 사찰인 간단사에서 찍은 사진. 돌람한드 씨의 꿈은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 “방송통신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중단한 공부를 더 하고 싶습니다. 아들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고, 다문화 가정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습니다.” 남편 최 씨도 “아내가 공부를 마치고 전문적인 분야에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홍다영 기자 [불교신문 2519호/ 4월22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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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왔을 때만 해도 한 마디도 못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최 씨는 “초기에 대화를 많이 한 것이 살아가면서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남편의 내조로 이뤄진 돌람한드 씨의 한국어 실력은 자연스럽게 통.번역사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