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박광수 자클린 부부“우리사랑, 친환경농사로 키워요” |
박광수 씨는 20여 년 전 필리핀 유학생활 중에 친구의 소개로 자클린(41) 씨를 만났다. 박 씨는 개인영어교사가, 자클린 씨는 한국어를 가르쳐 줄 친구가 필요했다. 그렇게 만나 자주 만나다 보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사랑이 싹텄다. <사진> 지난 7월19일 만난 박광수 자클린 부부가 딸 미래와 복숭아밭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결혼하기 까지 양가의 반대로 어려움도 많았다. 자클린 씨의 집에서는 ‘한국인은 성질이 급하다’ ‘화를 자주 낸다’ ‘여자를 무시한다’는 등의 이유로 딸의 결혼을 반대했고, 박 씨 집에서도 ‘게으르고 굼뜰 것이다’는 편견으로 허락하지 않았다. 1992년 필리핀과 그 다음해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양가 부모님의 마음이 녹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필리핀 유학길 개인교사 인연으로 결혼 사업실패땐 경전 독송하며 두려움 극복 출발은 순조롭지 않았지만, 대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만큼은 길지 않았다. 부부는 10여 년간 필리핀에서 살았다. 사실 문화적 차이로 몇 년간 매일 다투기도 했지만 ‘대화’로 오해를 하나씩 풀었다. 자클린 씨는 가정을 꾸리며 남편에게 한국어와 음식을 배웠다. 박 씨 또한 부인의 도움으로 많은 필리핀 친구들을 사귀게 됐고 이들의 도움으로 사업도 번성했다. 부부는 지난 2002년 한국으로 들어왔다. 승승장구하던 사업은 1997년 이후 잇따라 실패하면서 모든 것을 정리했다. 이때부터 박 씨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 실업자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집에서 빈둥거릴 수만은 없어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만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갔지만 재기는 쉽지 않았다. 이무렵 자클린 씨는 남편을 대신해 영어학원과 학습지 강사를 하며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박 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과로로 지쳐 쓰러져 자는 부인을 몇 년간 지켜만 봤다. 하지만 아들 동진(17)군과 부인은 쉬지 않고 용기를 불어 넣었다. 더 이상 가족의 고생을 지켜볼 수 없어 박 씨는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곁에는 늘 불교가 있었다. 4살 때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금산사 어린이 불교학교를 다니며 불교를 처음 접했고 중고등학교 학생회 활동으로 신심을 키웠다. 그는 <반야심경>을 즐겨 읽는다. 사업실패로 수심에 빠졌을 때 경을 읽으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 남편의 불교사랑으로 자클린 씨와 자녀들도 한국에 온 이후 사찰을 자주 찾는다. 자클린 씨는 사실 특별한 종교는 없지만 절에서 큰 행사가 열릴 때 마다 일손을 거들기도 한다. 박 씨는 다문화 가정을 먼저 꾸린 선배로서 이웃들을 위해 ‘상담가’로 나서기도 한다. 바쁜 와중에도 모임을 자주 갖고 조언을 망설이지 않는다. 경험담을 곁들여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일처럼 나서 해결점을 찾도록 도와 준다. 부부는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유통활로를 개척해 다른 농가들과 정보를 나눌 계획이다. 적당한 값을 받아 농산물을 팔고 소비자들에게는 품질 좋은 물건을 제공하기 위해 ‘종합물류센터’를 세우는 것이 그의 꿈이다. “가족들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꿈을 실현할 때까지 부인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제=홍다영 기자 hong12@ibulgyo.com [불교신문 2548호/ 8월12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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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9일 만난 박광수(44)씨는 “필리핀 유학길에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며 부인 자클린(41)씨와 3살 된 딸 미래를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