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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땅이 지척인 강화 교동도
그땐 그랬지. 대룡시장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옛 추억에 빠져드는 어르신들.

교동도 대룡시장은 보는 재미가 있다. 우선 너무 억지스럽지 않다.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오랜 명성은 어디로 사라지고 외지인들을 위한 관광지로만 전락한 곳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의 노포라 불리는 오래된 상점들은 저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간직한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관광객을 위한 요즘 가게들도 간간이 보인다. 

대룡시장은 6.25때 황해도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피난 온 주민들이 한강 하구가 분단선이 되어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향에 있는 연백시장을 본 따 만든 골목시장이다. 이곳은 50여 년간 교동도 경제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실향민 어르신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시장의 규모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2014년 강화·교동도간 교동대교의 개통되었다. 이때부터 1980년대 영화 세트장 같은 대룡시장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위해 찾아오는 이들이 늘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황세환 시계방 전경. 2016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시계를 수리했던 당시의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노포들의 예스러운 외관과 간판들이다. 또한 종이에 큼직하게 눌러써 내걸은 주인의 안내문과 손님들이 남기고간 메모지의 인사말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치 정겨운 대화를 엿듣는 것 같다. 

“당분간 쉽니다. 먼 길 오셨는데 헛걸음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교동 이발관”
“옛 생각하면서 쌍화차 잘 마시고 갑니다. -교동 다방”

 

교동다방 입구에는 손님들이 붙이고간 수많은 사연들이 있다.

시장 중간쯤에서 거북당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을 것 같은 빵집이 있다. 유리창에는 대표제품인 양과자 앙금빵 소보루라는 글씨가 붙어있다. 친절한 안내판에는 아래의 내용이 담겨있다. ‘전쟁을 피해 혈혈단신 월남했던 오씨 노인이 언젠가 가족과 같이 지낼 요량으로 정성들여 지은 건물로, 당시 물자가 부족했던 섬 지역에선 역작으로 꼽히는 건축물이다.’
 

그 시절, 딱 이곳에서 말뚝 박기를 했을 것 같은 시장의 작은 골목.

영업이 언제 종료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도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 개인의 삶이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은 시계방도 있다. 안내문을 요약하면 황씨 노인은 “1969년 시장 한 켠에 문구점 자리에 쌀 열 가마니 정도로 이 가게를 구입해 시계수리점을 차렸다. 작고한 2016년 4월까지 50년 가까운 세월의 흔적이 이곳에 남겨져 있다.” 시장은 100m 남짓 골목길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면 시간여행은 끝난다. 
 

위풍당당한 200년이 넘은 노송은 보호수다. 그 뒤로 화개사 법당이 보인다.

이어 발길을 옮긴 곳은 차량으로 5분 남짓 거리의 화개사다. 정돈이 잘된 잔디마당 한켠에 200년된 노송이 있고 그 옆에 일반 한옥에 더 가까워 보이는 법당이 있다. 뭔가 맞아 떨어지는 사찰 풍경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정갈한 사찰이다. 법당으로 향했다.
 

경내 단촐한 부도 1기가 고목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인기척은 없고 호랑나비 한 마리가 법당 문짝 앞을 맴돈다. 더 가까이 다가가니 자리를 바꿔 ‘경내에서는 조용하라’는 안내문을 맴돈다. 이 나비의 오늘 소임은 법당보살 같다.    
 

대나무를 엮은 문이 화개사 일주문 역할을 한다.

화개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자세한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17세기 말의 『강도지(江都志)』와 18세기에 편찬된 『가람고(伽藍考)』에 언급되고 있어 조선 후기에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40년경 화재로 소실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강화도 전등사의 말사였다. 1967년 다시 화재를 겪었고 다음 해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또한 고려 말 문신 이색이 사찰에 머물면서 독서를 했다고 전해진다.
 

대룡시장 입구에는 ‘평화의 섬 교동’이라는 조형물이 보인다.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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