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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대한 도량
연주봉옹성에서 바라본 남한산성 모습. 사진에서 보이는 가까운 능선에는 산성의 축대와 둘레길이 보이고, 2번째 능선 가운데에서 왼쪽으로 뻗은 성곽이 뿌연 날씨 탓에 흐린 회색 선으로 보인다.

흔히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한다. 날씨가 좋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만큼 이 계절은 전쟁을 일으키기도 좋다는 동전의 양면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가을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조선이 겪은 47일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의 이야기가 추석맞이 대작으로 제작되어 상영을 앞두고 있어 남산산성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맑디맑은 가을의 뭉게구름. 일주일여 지속되었던 청명한 하늘이다. 그런데 하필 남한산성을 오른 지난 19일은 뿌연 미세먼지로 가득했다. 오후에는 비 예보까지 더해졌다. 조급한 마음에 행궁에서 수어장대로 향하는 빠른 길을 택했다. 산속 길을 통해 만난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의 목조 누각이다. 안내 표지판에는 1892년에서 1893년 사이 당시 프랑스 영사가 촬영한 수어장대의 사진이 붙어있어 비교해 보는 재미도 더해준다. 하지만 사방이 훤히 내려다 보여 할 누각은 주변의 웃자란 나무에 시야가 한번 가리고, 뿌연 잿빛 하늘에 한 번 더 가린다. 

현재의 장경사. 남한산성 축성 당시 충청도에서 올라온 스님들이 머물렀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산성 둘레길이다. 성곽을 따라 우익문(서문)으로 향한다. 20여 년 전 군복무를 남한산성 끝자락에서 했다. 계절마다 한 번쯤은 이런저런 이유로 올랐으니 당시부대에는 남한산성 열 번 오르면 제대한다는 말이 있었다. 부대의 통문으로 가파른 산길을 치고 오르면 산성의 축대를 마주하며 서문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축대는 비교적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으나, 성곽 위로 끝없이 이어져 있는 들쭉날쭉 요철로 되어 전투할 때 몸을 숨기는 나지막한 담의 훼손이 심했다는 기억이 있다.

특히 서문은 맑은 날은 한강과 남산까지 보여 일몰 때면 사진 찍는 동호인들로 북적댄다. 하지만 이날은 한강의 윤곽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남한산성과 성곽 안에만 집중하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길을 재촉하며 연주봉옹성을 거쳐 전승문(북문)으로 향한다. 

높낮이가 다양한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분지 지형인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천연의 요새였다. 그러한 남한산성은 지난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당시 유네스코는 유사시 조선의 임시수도로 축조된 산성도시라는 점, 자연지형을 활용한 성곽과 방어시설을 구축함은 물론 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이르는 다양한 축성술의 발달 단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본성에서 바라본 연주봉옹성으로 향한 돌출 성곽.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국팔도에서 올라와 남한산성의 축성과 방어에 큰 몫을 묵묵히 감내했던 스님들의 피땀 어린 노고가 깃들여 있다. 말하지만 11.76km 둘러진 성벽 은 산 위에 솟은 하나의 거대한 도량 그 자체이며, 이 거대한 도량은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승군이라는 이름과 함께 무려 250여년이나 지속 되었다.

조선은 인조2년(1624년) 이괄의 반란이 일어나고 후금의 압력이 가중되자 그 해 7월 남한산성은 대대적인 축성에 돌입한다. 인조는 승도청(僧徒廳)을 두고 벽암각성(碧巖覺性)스님을 도총섭으로 전국의 스님들을 승군으로 동원했다. 각성스님은 남한산성 승군의 초대 총섭이자 팔도 도총섭을 겸하며 서북방면 축성에 매진했다. 남한산성 축성 당시 기존의 망월사와 옥정사도 활용되었으나, 승군 숙영을 위해 한흥사, 국청사, 동림사, 수종사, 개원사, 천주사, 장경사 등의 사찰을 창건했다. 이들 사찰은 이름에도 드러나 있듯 ‘나라를 지키고 국가를 안위하는’ 절들이었다.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수어장대. 1892년에서 1893년 사이 촬영된 사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당시 창건된 사찰 가운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장경사는 남한산성 내 불교문화 복원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남한산성 의승군 문화제’를 여는 한편 의승군 추모 수륙무차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올해도 장경사에서 오는 10월15일 ‘제6회 남한산성 의승군 수륙무차대법회’를 봉행한다. 

성곽 둘레길은 완만한 구간이 많아 찾는 이들도 많다.
남한산성 곳곳에는 적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암문들이 있다.

[불교신문3333호/2017년9월27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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