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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세월 오롯이…그 자체가 마을이 되다
경북 의성 탑리여자중학교 정문에서 바라본 학교와 오층석탑. 학교 정원에 폭 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날 바라본 풍경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국보 제77호)을 보기위해 지난 2012년 이곳에 온 적이 있다. 마을 공터 가운데 오층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 주변으로 석양에 동네 할머니들이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그 앞으로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또한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공터까지 짧은 거리에는 양철로 만든 간판에 페인트칠로 상호를 적어 넣은 상점들이 눈에 띄어, 마치 1970년대 시골 읍내 풍경 같아 정감을 더욱 돋게 했다. 마을과 어우러졌던 그 모습을 되짚어 다시 찾았다.

원래 방문계획은 하루에 몇 대 서지 않는다는 중앙선 탑리역에 기차로 도착해서 마을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중앙선은 역과 역 사이에 하나의 선로만 존재한다. 중간 중간의 역들은 열차가 교행할 수 있게 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하루에 다녀와야 하는 일정을 맞출 수 없어 기차여행은 포기했지만 탑리여행의 시작은 역에서부터 출발했다.

석탑의 불감은 마을을 내려보고, 뒤편으로 학교가 낮은 병풍이 되어준다.

그런데 탑리역의 모습이 범상치 않다. 어설픈 성곽의 모습이다. 탑리 명칭의 유래가 이 마을에 유서 깊은 오층석탑이 있기 때문인데 탑 모양이 아닌 성곽의 모양이라니. 코레일 블로그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1997년 신축된 이 역의 설계는 탑리라는 지명이 유래된 오층석탑을 따르지 않고, 금성면의 유래가 된 금성산성을 본 떠 외관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역 이름과 외관은 두고두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역에서 오층석탑까지는 1km남짓이다. 골목길과 찻길을 마음 내키는 대로 휘저으며 걷는다. 탑리우체국, 탑리노인정, 탑리여자중학교, 탑리청과…. 지역을 뜻하는 앞부분에 등장하는 이름 ‘탑리’. 경북 의성군 금성면 일대에서 찾을 수 있는 이름이다. 행정구역으로 보면 탑리는 금성면에는 10개가 넘는 ‘리’가 붙는 마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지만 금성면의 관공서와 학교뿐 아니라 다양한 상점들에서도 그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만큼 마을을 상징하는 존재다.

마을 골목에서 발견한 우체통. 여기에도 ‘탑리’가 보인다.

5년이 지나 다시 찾은 석탑. 그 사이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다녀간 직후인 2012년 10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보수공사가 있었다. 현재는 정비가 완료된 모습이다. 웃자라던 풀은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주차장과 화장실까지 마련됐다. 공터 한켠에는 오층석탑 보수공사에서 교체한 석탑 부재를 전시하고 있다.

5년간의 보수 이전에도 오층석탑은 균형미 잡힌 온전한 모습을 갖고 있었다.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이다. 낮은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것으로 목조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찻길에서 오층석탑으로 향하는 길. 1970년대 시골의 향수가 가득하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바닥을 깐 뒤, 목조건축을 본떠 가운데기둥과 모서리기둥 모두를 각각 다른 돌로 구성했다. 탑신은 1층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을 설치했다.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밑면뿐만 아니라 윗면까지도 층을 이루고 있는데 윗면이 6단, 아랫면이 5단이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어 목조건축의 지붕 끝을 떠올리게 한다.

각 부분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응용하는 한편, 곳곳에서 전탑의 조성기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마을 곳곳에서 ‘탑리’가 들어가는 간판을 볼 수 있다.

가람의 배치에 맞춰 조성됐을 석탑의 4면 가운데 한 곳에만 불감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 방향이 마을을 바라본다. 공터의 작은 언덕에 돋아 있는 모습은 마치 마을을 내려다보는 수호신 같다. 탑의 불감 뒤편으로는 낮은 병풍처럼 탑리여자중학교가 자리하고 있는데 탑의 위치가 꼭 학교 운동장 한복판 같다. 현재의 모습에서 추리를 해보면 탑 주변에 학교가 들어오고 함께 있다 국보인 석탑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보호차원에서 분리된 것으로 보였다. 나오는 길에 마주친 어르신에게 확인 차원에서 물었더니 다른 대답을 들려줬다. “학교가 들어선지는 그리 오래전은 아니고, 학교가 들어올 때부터 탑이 있는 곳과는 구별이 되어 있었다”면서 “이전에는 탑 앞에 면사무소가 있었다가 이전하면서 헐었다”고 기억을 더듬어 탑 주변의 변화상을 전해줬다.

지역을 대표하는 오층석탑 대신 성곽을 흉내 내 아쉬움을 준 탑리역의 전경.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 번 탑 주변을 둘러봤다. 교회도 보였다. 그런데 교회이름에도 ‘탑리’가 들어있다. 좀 더 멀리에서 탑을 바라봤다. 이 탑은 마을에 들어서는 모두를 이웃으로 품고 있었다. 

드나드는 이 적은 탑리역 내부. 호젓한 탑리여행의 시작점이 되어주었다.

[불교신문3325호/2017년8월30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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