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72025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하나둘 욕심 비우니, 새로운 희망 떠오르네
①시나브로 다가온 봄의 기운 때문일까? 일출을 맞이하는 시간에도 주변은 충분히 밝고, 대지를 흔들어 깨우는 도담삼봉의 일출은 아름답기만 하다.

동틀 때까지는 아직 멀었다. 하지만 시간을 맞추기도 빠듯하다. 서울에서 여명도 올라오지 않은 길을 달려 단양 도담삼봉으로 향한다. 뻥 뚫린 고속도로에 오른다. 일출과 함께 피워오를 물안개가 자꾸 머릿속에 그려진다. 쉼 없이 운전을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도착하니 기가 막히게 일출 직전이다.

이제 시절인연을 기다릴 차례다. 일기예보대로 하늘은 맑다. 하지만 쫀득하니 윤곽이 선명한 멋진 구름은 없다. 밋밋한 일출의 시작이다. 이번에는 물안개를 기다려 본다. 바람이 없어 피어오르기만 하면 좋을 텐데, 일교차가 작아서인지 이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물에 비치는 도담삼봉의 반영이다. 느린 유속과 잔잔한 바람 덕에 삼봉의 또렷한 모습이 물에 새겨진다. 검붉은 태양과 멋진 구름이 어우러진 일출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이곳저곳을 움직이며 셔터를 누른다. 어느덧 태양은 정자에서 한 뼘이나 위로 솟았고, 물에 비친 모습은 이제야 정자와 눈높이를 맞춘다.

어라! 급하게 자리를 옮겼다. 물에 비친 정자 그 안에 태양을 담았다. 어두운 뱃길을 밝히는 등대의 모습이 된다. 가는 동안 욕심이 차올라 위험스럽게 속도를 붙이게 됐다. 기다린 시절인연이 기대에 못 미치니 욕심은 하나씩 비워져갔다. 그리고 새로운 것이 보였다.

②서로 다른 색깔의 비단으로 무늬를 짠 듯 독특한 빛깔을 뽐내는 사인암. 그 옆으로 청련암이 보인다.

한쪽에는 도담삼봉을 바라보는 정도전의 동상이 있다. 정도전은 성리학의 입장에서 조선의 시작을 실질적으로 설계한 인물이다. 그런 그의 동상이 왜 이곳에 있을까? 정도전은 고려 말 과거에 급제해 22세의 나이로 충청도 충주에서 관직에 입문한다. 이때부터 도담삼봉을 찾았다고 한다. 아마 충주를 비롯한 남한강 곳곳을 누비다 이곳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는 남한강 푸른 강물 가운데 우뚝 솟은 3개의 기암괴석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에 정자를 짓고 이곳의 경치를 즐겼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했다. 

하지만 정도전과 불교는 악연에 가깝다. 성리학의 등장은 기존 사회를 이끌었던 불교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다른 나라 역사를 봐도 국가가 수용한 공인사상은 당시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된 이후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뿌리를 깊게 내리며 정착했다면 고려 말 유입된 성리학이 조선에 미친 영향도 이에 버금간다. 조선에 성리학이 통치체제로 자리 잡으면서 불교의 위상은 갈수록 위축됐다. 유학자들은 불교를 배척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 정도전이 있었다. 그가 말년에 쓴 <불씨잡변>은 불교 배척에 크게 일조한다.

③아래서 바라본 사인암 사이에 자리한 청련암 삼성각.

많은 사람들이 가족여행, 일출, 힐링 등의 이유로 도담삼봉을 찾는다. 계절적으로는 가을여행이 추천 되지만 요맘때도 좋다.

여기서 차량으로 20분 거리에 사인암이 있다. 도담삼봉 같은 기암절벽이지만, 이곳 바위는 마치 서로 다른 색깔의 비단으로 무늬를 짠 듯 독특한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있다. 또한 해금강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으로도 유명하다. 추사 김정희가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의 그림 같다고 예찬했을 정도로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사인암’ 이라는 이름은 고려 후기 유학자인 역동 우탁이 지냈던 ‘사인’이라는 벼슬에서 유래한다. 그는 유난히 이곳을 좋아해 자주 찾았다고 한다.

밖에서 바라보면 사인암 바로 옆이 청련암이다. 남조천에 놓인 출렁다리를 건너면 사찰로 바로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서니 아까 본 풍경과 달리 사인암은 청련암 경내에 자리하고 있다. 

④사인암 위에서 바라본 삼성각. 바람도 쉬었다 갈 것처럼 기암에 둘러싸여 있다

청련암은 제5교구 법주사 말사로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숙종 때 중창하여 청련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본래는 한말(韓末)에 소실된 대흥사(大興寺) 말사로 근처의 대강면 황정리에 있었다. 1954년 공비소탕 작전으로 인하여 황정리 일대에 소개령이 내려짐에 따라 현재의 이곳으로 대들보와 기둥을 옮겨 이전하였다.

옮겨온 청련암은 극락전과 삼성각을 짓고 도량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최근에는 법당을 새로이 조성했다. 남조천 건너편에서 본 사인암 모습이 정면이라면, 경내에서는 사인암 옆모습이 보인다. 이 곳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삼성각이다. 단양팔경 가운데 하나인 사인암의 작은 틈에 절묘하게 자리하고 있다.

. ⑤출렁다리를 건너면 청련암이다.

 ▶단양팔경

소백산맥 줄기와 남한강이 엮어내는 단양의 풍광이 빼어난 8곳의 명승지다. 월악산의 끝머리 경북과 충북의 경계에 위치한 도락산은 사인암 뿐 아니라 계곡을 따라 불암(佛岩)이라 부르던 3층의 넓은 바위로 봄에는 철쭉꽃, 가을에는 단풍이 온 산을 물들이며 절경을 뽐내는 하선암이 있고, 흰색의 바위가 층층대를 이루고 있으며 중선암, 그 위로 상선암이 있다.

구담봉은 단양 서쪽 8km 지점인 단성면 장회리에 있으며, 남한강을 따라 깎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괴석으로 그 형상이 마치 거북같다 하여 구봉(龜峰)이라고도 하였다. 같은 지역에 우후죽순같이 솟아오른 천연적 형색이 희다는 옥순봉도 있다.

도담삼봉은 단양 북쪽 12km 지점의 단양읍 도담리에 있다. 여기서 15분쯤 걸어서 올라가면 높이 수십 척의 돌기둥이 좌우로 마주보고 서 있는 위에 돌다리가 걸려 있는 무지개 형상의 석문이 있다. 

[불교신문3280호/2017년3월11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