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명이 성인이 된다는
억성사가 여기 일까
천년 전 드높인
수행자들의 법이
깊은 골짜기 속에
아직 빛나고 있네…
①깎아지른 산을 배경으로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이 천년도 넘는 세월동안 오롯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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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미천골(米川谷)은 사찰에서 쌀 씻은 물이 하류까지 내려간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미천골에는 어떤 큰 사찰이 있었기에 이런 이름이 지어졌을까.
양양 미천골은 크게 보면 설악산과 오대산이 겹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6일 미천골을 찾았다. 산림청 자연휴양림인 미천골은 울창한 산림과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청정지역으로 7km에 달하는 계곡은 곳곳에 크고 작은 폭포를 만들며 시원하게 흐르고 있다.
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를 지나 계곡 옆으로 난 임도를 900m 가면 선림원지(禪林院址)에 닿는다. 지금도 오지인 이곳에 천년이 훨씬 지난 신라시대에 쌀 씻은 물이 하류까지 내려 갈 만큼 많은 대중이 살고 있었다니 놀랍다.
선림원지는 조계종조 도의국사의 법을 이은 염거선사와 인연이 깊은 억성사(億聖寺)일거라는 추정되고 있다. 도의국사는 784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육조혜능스님의 법을 이은 서당지장스님에게 법을 받고 또한 백장청규로 유명한 백장스님과 문답 후 “강서(江西, 마조선사를 뜻함)의 선맥이 모두 동국(東國, 신라)으로 가는구나!”라는 인정을 받고 37년 만인 821년에 신라로 돌아온다. 도의스님은 당시 신라에서 더 이상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며 선을 강조하는데 무력감을 느끼고,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에 은거하며 수행했다.
깊은 산속 임에도 진전사에는 법을 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최치원이 쓴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에는 당시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꽃이 겨울 산봉우리에서 빼어나 선정의 숲에서 향기를 풍기매, 덕을 사모하는 자가 산에 가득하였고, 착하게 된 사람이 골짜기를 나섰으니, 도는 폐(廢)해질 수 없으며 때가 그러한 뒤에 행해지는 것이다.”
②설악산 자락의 청정 지역인 미천골 계곡. ③홍각선사 부도로 추정되는 선림원지 부도. 지난해 금동불상이 발굴될 때 옥개석도 찾았다고 하니 조만간 완벽한 모습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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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스님의 법은 염거선사(廉居, ?∼844)에게 전해진다. 염거선사는 설산(雪山) 억성사(億聖寺)에 머물며 법을 설했는데, 보조체징스님(普照體澄, 803∼880)이 억성사에서 법을 받아 장흥 보림사에서 가지산문을 개창해 크게 선풍을 휘날린다. 염거선사는 가지산문의 개산조인 도의국사와 개창자인 보조선사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고, 억성사는 조사선이 한국불교의 주류가 되게 한 산파같은 역할을 한 곳이다. ‘억성사가 선불교가 퍼져나가기 시작한 신라불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그 사세 또한 만만치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선림원지로 향해 계단을 오른다. 계곡 보다 10여 m 높은 곳에 조성된 절터는 산과 하늘 이외엔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아 오직 수행하기 위한 공간이였겠구나’는 생각이 절로 난다. 아주 큰 절터는 아니지만 이 곳 산세를 생각하면 좁지 않는 공간이다. 보물로 지정된 신라시대 성보인 삼층석탑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주변을 둘러보니 석탑을 비롯해 석등, 부도, 홍각선사 탑비 등이 남아 있다. 천년도 훨씬 전에 새겨진 탑과 부도 탑비의 조각이 예사롭지 않다.
돌로 만든 성보 이외에도 이 곳에서 발굴된 중요한 문화재들이 있다.
1948년 발견된 선림원지 동종은 821년 조성된 것으로 월정사에서 보관했다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잔편만 남아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 온전히 남아 있는 신라시대 동종은 725년, 771년에 조성된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과 국보 29호 성덕대왕 신종 뿐이라 아쉬움이 크다.
또한 지난해 10월, 9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상이 발굴됐다. 선림원지에서 출토된 금동불은 높이 50㎝ 이상으로 현재까지 출토지가 분명한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중 가장 크기가 큰 불상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될 가치가 충분하다고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경주에서 제작한 후 이곳으로 옮겨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깊은 산 속이지만 이만큼 의미 있는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이곳의 선풍(禪風)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탑비까지 둘러보니 퇴약볕 아래 너무 오래 있었는지 지쳐간다.
④삼층석탑의 팔부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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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계곡으로 향한다. 미천골 오토캠핑장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산책로는 미천골의 명소인 불바라기 약수터까지 이어지는데 편도 5.9km로, 왕복 4시간 정도 소요된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1km 남짓 떨어진 상직폭포 아래 계곡으로 내려섰다. ‘사이다’ 같은 계곡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이 온몸을 식힌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여기가 극락이구나”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해가 질 무렵 다시 선림원지를 찾았다. 이곳에 남아 있던 홍각선사(813~880)를 추모하는 탑비에는 ‘옥과 같이 좋은 나무들이 소나무 사이에 뒤섞여 있었으니, 은둔하는 것은 거슬렸으나 명성은 우레처럼 세상을 울렸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어둑해진 하늘의 마지막 빛을 담아 삼층석탑이 밝게 빛난다. 깊은 산속에서 천년을 넘게 지켜온 그 빛은 아직 환하다.
[불교신문3224호/2016년8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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