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82026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경주 백률사

백률사로 향하는 송죽길이 운치있다.
보물 제121호 굴불사지 석불입상. 동서남북 사방으로 불보살들이 조각되어 있다. 각각의 면을 촬영했다.
하늘 높이 솟구쳤던 이차돈의 머리가 떨어진 곳에 세워진 백률사.
백률사 선원 건물.
신라불교 상징…이차돈 원찰, 백률사
“목이 베이자 흰 꽃 한송이 피어올라”
“목숨만큼 버리기 어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저녁에 죽어 커다란 가르침이 아침에 행해지면, 부처님의 날이 다시 설 것이요, 임금께서 길이 평안하시리….” 젊은 관료 이차돈은 불교를 위해 이같이 말하면서 숨을 거뒀다. 아도 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30년 지난 시점이다. 목이 베이자 흰 우유가 한길이나 솟구쳤다고 전한다. 이차돈의 순교는 붉은 피로 물들지 않고 흰 꽃으로 피어올랐다. 그의 머리는 하늘 높이 솟았다가 북악(北岳)에 떨어졌다고 한다.
그 곳에 순교자 이차돈을 기리는 자추사가 세워졌다. 북악은 지금의 경주 동천동과 용강동에 걸쳐 있는 소금강산을 말한다. 해발 177m인 이 산에는 자추사(刺楸寺)로 추정되는 백률사가 자리잡고 있다.
경주IC를 빠져 나와 구황로길을 따라 계속 직진하다 보면 탈해왕릉이 나오고 바로 다음에 백률사 이정표를 만난다. 9km 남짓 거리로 10여 분 소요된다. 경주역에서 경주시청 방면으로 가다 경주시청을 지나도 바로 백률사 이정표가 나온다. 소금강산 입구에 차를 세우고 백률사를 향해 오른다.
평일에도 산책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다. 잘 정비 된 산책로를 몇 걸음 올라서자 보물 제121호 굴불사지 석불입상이 보인다. 3m 높이 커다란 바위 사방으로 여러 보살상이 조각돼 있는 특이한 석불상이다. 몇 몇 불자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합장을 한 채 석불상을 돌고 있다. 서쪽면에는 아미타삼존불, 동쪽면에는 약사여래좌상, 남쪽면에는 삼존입상, 북쪽면에는 관세음보살입상이 각각 조각되어 있다.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소리가 들려서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으로 부처님을 새기고 굴불사란 절을 세웠다고 한다.
석불입상을 지나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르면 소나무와 대나무가 어우러진 송죽(松竹)길이 나온다. 정취있는 송죽길을 걷다보면 옛 스님들과 이 곳을 다녀간 유명시인들이 나무에 새겨놓은 싯구절을 볼 수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으면서 시를 읊조리다보니 어느새 백률사에 다다랐다. 대웅전과 삼성각, 선원 건물이 전부인 자그마한 사찰이다. 백률사는 이차돈이 순교한 이듬해인 법흥왕15년(528)에 창건됐다.
이차돈을 추모하기 위해 헌덕왕10년(818)에 세운 순교비와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28호)이 전해졌지만 이젠 더 이상 친견할 수 없는 ‘전설 속의 성보’일 뿐. 이들이 백률사를 떠나온 때는 1930년으로 알려져 있다. 백률사 대웅전에 봉안돼 있다 경주박물관 전신인 경주고적보존회에서 전시를 위해 옮겨간 뒤, 80여년이 지났지만 ‘함흥차사’다. 백률사 동종에 새겨진 조각만이 백률사가 순교자 이차돈을 기리기 위한 사찰이라는 유일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경주=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 2605호/ 3월13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