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부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에 머무르시어, 1만2000의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이들은 모두 아라한으로서,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여 다시 번뇌가 없고 자기의 이로움을 얻었으며, 모든 현상으로부터의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이 자유자재로운 이들이다. 그들은 아야교진여·마하가섭·우루빈나가섭·가야가섭·나제가섭·사리불·대목건련·마하가전연·아누루타·겁빈나·교범바제·이바다·필릉가바차·박구라·마하구치라·난타·손타라난타·부루나미다라니자·수보리·아난·나후라 등으로, 이들은 뭇사람에게 잘 알려진 큰 아라한들이었다.(…) 또 보살마하살이 8만 인이니,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다라니를 얻었으며, 즐겨 설법하는 변재(辯才)로 불퇴전의 법륜을 굴리고, 한없는 부처께 공양하여 여러 부처의 처소에서 온갖 덕의 근본을 심어 항상 부처들의 칭찬을 받고, 자비로 몸을 닦아 부처의 지혜에 잘 들어가고, 큰 지혜를 통달하여 피안(彼岸)에 이르러, 이름이 한없는 세계에 널리 퍼져 무수한 백천 중생을 능히 제도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이름은 문수사리보살·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상정진보살·불휴식보살·보장보살·약왕보살·용시보살·보월보살·월광보살·만월보살·대력보살·무량력보살·월삼계보살·발타바라보살·미륵보살·보적보살·도사보살 등으로, 이들 보살마하살 8만 인이 함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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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영산회괘불도. 1653년에 조성된 이 괘불탱은 삼베바탕에 채색했으며 세로크기가 1009cm 가로는 731cm에 달한다. |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석가모니부처님은 라자그라하(Rajagrha, 王舍城)의 기사굴산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하셨다. 부처님께서 6년간 안거철마다 머물면서 <법화경>을 설하신 곳, 그곳이 바로 기사굴산, 즉 영취산이었다. ‘신령스런 독수리 산’이라는 뜻을 지닌 영취산은 고대 인도 마가다국(Magadha)의 수도인 왕사성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독수리처럼 생긴 검은 바위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어서 혹은 독수리가 많이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마가다국(Magadha) 국왕이었던 빔비사라(Bimbisara)는 카필라바스투에서 온 젊은 수행자 싯다르타(Siddhartha)의 면모에 반하여 싯다르타에게 수행 대신 자기와 왕국을 나누어 다스리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였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이를 완곡히 거절하였고, 이에 빔비사라는 깨달음을 얻은 후 다시 한 번 라자그라하를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후 싯다르타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오랜 기간 라자그라하에 머물며 불법을 설파하였다.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는 제자와 보살 뿐 아니라 석제환인(釋帝桓因)과 그의 권속 2만 천자, 자재천(自在天)과 그의 권속 3만 천자, 범천과 권속 1만2000 천자, 팔대 용왕, 팔부중과 수백천의 권속들, 아사세 태자와 수백천의 권속 등이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하여 몰려들었다고 하니 그 모습이 얼마나 장관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이것이 바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이다.
영산회상도는 이처럼 석가모니 설법 때 모여든 많은 청중들을 화면 가득 묘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웅전에 후불화로 영산회상도가 봉안되곤 한다. 대웅전이란 대웅(大雄), 즉 ‘위대한 영웅’인 석가모니를 봉안하는 전각이므로, 이곳에 석가모니의 설법을 묘사한 영산회상도를 봉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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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영산회상도에는 향로와 공양물이 담긴 그릇이 놓여있는 불탁(佛卓)이 묘사돼 있다. |
그림의 형식은 석가여래와 문수보살, 보현보살의 삼존을 중심으로 좌우에 십대제자와 보살, 호법신(護法神: 사천왕, 팔부중 등), 분신불(分身佛) 등이 석가모니불을 둘러싼 형식을 취하고 있다. 화면 중앙에는 커다란 광배를 등진 석가모니가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결가부좌하였으며, 좌우에는 좌협시 문수보살이 연꽃, 우협시 보현보살이 여의(如意)를 들고 시립하고 있다. 협시보살 외에도 <법화경>에 등장하는 많은 권속들이 석가모니를 둘러싸고 있다. 석가모니불 위로는 시방불(十方佛) 또는 분신불이 묘사되고, 그 위로 작은 분신불들이 구름을 타고 오는 모습이 표현된다. 이러한 장면은 <법화경> 권제4 ‘견보탑품(見寶塔品)’에서 다보불(多寶佛)이 석가모니불에게 분신불을 불러 모아달라고 요청한 것을 표현한 것이다. 또 석가모니불 좌우로는 십대제자가 협시하는데, 10명이 모두 표현되기도 하지만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만을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불보살과 제자의 주위로는 사천왕과 팔부중 등 호법신이 석가모니불을 외호하고 있다.
석가여래는 불교의 교주이므로 석가모니불의 설법을 그린 영산회상도는 다른 어떤 불화보다도 많이 그려졌다. 대웅전의 주불이므로 후불화로 봉안되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야외에서 의식을 행할 때 거는 괘불화로도 다수 조성되어 영산재(靈山齋) 등 큰 의식에 주존으로 예배되었다. 때로는 비로자나불화ㆍ노사나불화와 함께 삼신불화(三身佛畵)의 하나로, 또는 아미타불화ㆍ약사불화와 함께 삼세불화(三世佛畵)의 하나로도 조성되었다.
똑같은 석가모니불화라 해도 영수사 괘불도(1653년)나 송광사 영산회상도(1725년)에서처럼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국왕·대신 등의 우바새(優婆塞), 왕비·장자녀(長子女) 등의 우바이(優婆夷), 석가모니를 향하여 돌아앉아 질문하는 사리불(舍利弗) 등이 덧붙여져, 영산회상의 설법 장면을 더욱 실감나게 묘사하기도 한다.
설법의 주인공인 석가여래는 보통 커다란 광배를 등지고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하고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있다. 항마촉지인이란 왼손은 결가부좌한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은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여 땅을 가리키는 모습인데, 이와 같은 손 모습을 취하는 것은 석가모니가 설산에서 6년간 고행하실 때 일어났었던 사건에서 기인한다. 석가모니가 고행을 하실 때 마왕 파순(波旬)이라는 자가 석가모니의 득도를 방해하기 위하여 자신의 세 딸을 보내 유혹하기도 하고 8만4000이나 되는 마군을 이끌고 공격을 하기도 했다. 어떠한 방법을 써서도 석가모니의 득도를 방해할 수 없게 된 파순은 석가모니에게 ‘당신이 정말로 위대한 존재라고 한다면 그것을 내 앞에서 증명해 보이라’고 했다. 이에 석가모니가 선정인을 하고 있던 오른손으로 땅 밑을 가리키자, 갑자기 땅속에서 지신(地神)이 튀어나와 석가모니의 위대함을 증명해 보였고, 결국 석가모니를 시험하려던 마군이 항복하고 물러났다고 한다. 이후 석가모니가 마귀를 항복시키고 정각을 이룬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석가모니는 항마촉지인을 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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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로 1729년에 조성됐다. 비단 바탕에 채색했으며 세로 290cm, 가로 223㎝ 크기다. |
대웅전 후불화로 봉안되거나
대형불화 괘불탱으로 조성돼
석가여래 문수보현보살 중심
십대제자 사천왕 팔부중 표현
영산회상도는 일찍부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존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이후의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화엄사 괘불도(1653년)를 비롯해서 쌍계사 영산회상도(1687년), 여천 흥국사 영산회상도(1693년), 해인사 영산회상도(1729년), 선암사 영산회상도(1765년) 등이 있다. 1653년에 제작된 화엄사 괘불도는 24폭의 모시를 이어 만든 가로 731cm, 세로 1009cm의 거대한 화폭에 그려졌는데, 영락으로 화려하게 장엄된 보개(寶蓋)의 좌우 구불구불한 오색광염 사이로 10명의 작은 부처가 구름을 타고 내려오고, 화면 가운데 놓인 3단 대좌 위에는 항마촉지인을 결한 석가모니를 권속들이 빙 둘러싸인 모습을 그렸다. 석가모니 앞에는 향로와 공양물이 담긴 그릇이 놓여있는 불탁(佛卓)이 놓여있어 마치 설법이 열리는 현장을 보는 듯하다. 또 18세기 지리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화승 의겸(義謙)이 그린 해인사 영산회상도(1729년)는 석가모니의 좌우에 사천왕 4구, 보살 26구, 2제자, 오십나한, 팔부중, 분신불 144구, 타방불 12구, 기타 여러 신 등 240여 구에 달하는 권속을 질서정연하게 배열함므로써, 수많은 권속들이 운집한 <법화경>의 영산회상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하신 영산설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한다(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는 바로 그 말씀이 아니었을까.
[불교신문3379호/2018년3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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