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불 탄생 후 입멸까지
주요 장면 조각, 그림으로 표현
인도 바르후트대탑, 산치탑에
가장 오래된 불전도 남아 있어
부처님대신 연꽃 법륜 그리다
쿠샨왕조 이후 인간형상 표현
인도 중국 거쳐 우리나라 전래
여덟장면 압축된 팔상도 성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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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1368호 순천 송광사 영산전 후불탱팔상탱 중 녹원전법상의 일부분.1725년에 조성됐다. |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전, 인도 북부 룸비니에서 한 아기가 탄생하였다. 슛도다나왕(淨飯王)을 아버지로, 마야부인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난 아기는 고타마 싯달타(Gautama Siddharta)였다. 샤카(Sakya)족의 태자로 태어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다 그것을 버리고 사문(沙門)의 길을 택하였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신 석가모니. 그의 일생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 그를 존경하고 따랐던 많은 제자들은 석가모니가 입멸한 후 그의 생애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석가의 일생을 조각 또는 그림으로 만들었다. 석가의 일생은 처음엔 교적 사실적인 내용에 근거하여 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졌지만, 어느덧 시간이 흐르자 단순히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한 인간의 일생에서 벗어나 수많은 기적과 불가사의로 가득 찬 전설이 되었다. 석가모니가 태어나서 입멸하실 때까지의 일생을 그린 그림, 이것이 곧 불전도(佛傳圖, nidana)이다.
룸비니동산에서 어머니 마야부인이 무우수(無憂樹) 나뭇가지를 잡고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자를 낳은 이야기에서부터 갓 태어난 어린 태자가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서 한손을 들고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고 외쳤던 일, 장성하여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낳았으나 29세 때 인생무상을 깨닫고 성을 넘어 출가한 일, 설산(雪山)에 들어가 고행을 하면서 마귀를 항복시킨 일, 고행을 끝내고 부다가야(Bodgaya)로 가서 보리수 아래 결가부좌하고 정각(正覺)을 이룬 일, 사르나트(Sarnath,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하고 80세에 이르러 쿠시나가라(Kusinagara)에서 입멸하기까지의 일들이 모두 불전도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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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나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남송시대 화가 육신충이 그린 열반도. |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 열반 후 가섭(迦葉)이 묘당전(妙堂殿)에 도솔하천(兜率下天), 탁생(託生), 강탄(降誕), 항마(降魔), 출가(出家), 성도(成道), 초전법륜(初轉法輪), 대신변(大神變), 33천불모설법(三十三天佛母說法), 보계삼도(寶階三道), 쌍수열반(雙樹涅槃) 등 여래의 일대기를 그리게 하였다는 것으로 보아(<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권38), 인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불전의 주요한 부분이 그림으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전도는 바르후트탑(Barhut Stupa, B.C. 2세기경)이나 산치탑(Sanchi Stupa, B.C. 1세기경)같은 인도의 탑에 새겨진 조각들이다. 이곳에는 기원정사(祇園精舍, Jetavana)의 건립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사위성(舍衛城, Sravasti)에서 외도를 항복시키고 신통력을 행했던 이야기, 돌아가신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설법하신 이야기 등 부처님의 일생이야기가 가득 조각되어 있다. 그야말로 ‘그림으로 보는 부처님의 일생’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바르후트나 산치의 탑에는 풍성한 불전도가 조각되어 있지만, 정작 주인공인 석가모니의 모습은 직접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여러 가지 상징물, 예를 들어 보리수라든가 불족적(佛足跡), 법륜(法輪), 연꽃 같은 것으로 대신하여 표현하였다. 어떻게 주인공이 없이 불전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부처님을 표현하면서도 부처님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던 것은 윤회(輪廻)의 고리에서 벗어나 이미 열반에 들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부처님을 그리지 못한다는 관념과 함께, 초월적 존재인 부처님을 감히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부처님을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쿠샨왕조(Kushan Empire, A.D. 1~3세기) 이후, 인도 북부의 간다라(Gandhara)지방에서는 불전미술(佛傳美術)이 크게 발전하였다. 부처님의 탄생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100여 장면으로 표현되었다. 기원전 2~3세기경에 개착된 아잔타(Ajanta)석굴 안에도 여러 가지 종류의 불전도가 그려졌다. 그중 17굴에는 4가지 종류의 유명한 불전이야기가 남아있는데, 초인적인 석가모니를 전설과 기적으로 치장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룬다.
취상조복(醉象調伏)으로 널리 알려진 불전은 17굴 정면 회랑의 후벽 좌우에 그려져 있다. 석가모니의 사촌인 제바달다(提婆達多, Devadatta)가 왕사성의 국왕 아사세와 모의하여 왕이 소유하고 있던 난폭한 코끼리에게 술을 먹여 석가모니를 밟아 죽이려 하였으나 취한 코끼리가 부처님의 위엄에 눌려 무릎을 꿇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그림은 부처님에게 달려드는 코끼리와 석가모니 앞에서 무릎 꿇는 코끼리를 연속적으로 표현하여, 한 화면 안에서 시간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불당의 전실 왼쪽 벽에는 석가모니가 생모 마야부인을 위하여 하늘에 가서 설법을 하고 내려올 때, 금, 은, 구리로 만들어진 세 가지 계단을 따라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삼도보계강하(三道寶階降下) 장면, 오른쪽 벽에는 코살라국(Kosala國)의 수도 사위성에서 부처님이 천불시현(千佛示現) 등 대기적을 연출하니 이교도들이 무서워 모두 도망쳤다고 하는 사위성의 대신변(大神變)이 그려져 있다.
이 밖에도 17굴에는 고향으로 찾아온 석가모니가 집 앞에서 아들 라후라(Rahula)와 부인 야소다라(Yasodhara) 왕비로부터 보시를 받는 장면 등이 묘사되어 있어, 당시 불교를 전도하고 신자들을 교화하는 수단으로 불전도가 많이 그려졌음을 보여준다. 이후 인도에서는 부처님의 일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 즉 탄생과 마귀를 항복시키고 도를 이룬 항마성도(降魔成道), 처음으로 설법하신 초전법륜(初轉法輪), 열반 등 네 가지의 사건을 중심으로 한 불전도가 많이 제작되었다.
인도에서 기원한 불전도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중국, 한국 등으로 전래되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쿠차(Kucha)의 키질(Kizil) 석굴에서 본격적인 불전도가 그려졌다. 175굴의 탄생, 110굴의 야반유성(夜半踰城), 69굴의 녹원설법(鹿苑說法), 224굴, 38굴의 열반도 등에서 보듯이 설화적인 요소가 적고 움직임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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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오랑가바드현 아잔타석굴 제17굴에 그려진 취상조복. |
중국에는 돈황석굴(敦煌石窟)과 운강석굴(雲岡石窟) 등 석굴사원과 사찰벽화에 다양한 불전도가 그려졌다. 사천성의 각원사 대웅보전의 벽면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이 209개의 장면으로 그려져 있으며, 남송대 화가 육신충(陸信忠)이 그린 열반도는 사라쌍수 아래 오른팔을 베고 누워 열반에 든 석가모니, 마야부인이 아들의 열반소식을 듣고 도리천에서 내려오는 모습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일찍이 불전도가 전해졌으리라고 생각되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거의 없다. 대신 석가의 생애를 8가지 모습으로 압축해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성행하여 오늘날까지도 많은 작품들이 남아있다. 석가모니의 전생인 호명보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어머니 마야부인에게 입태되는 도솔래의상(兜率來義相), 룸비니동산에서 태자가 탄생하는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싯달타 태자가 성문 밖에 나가서 인생의 여러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는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카필라성을 넘어 출가하는 유성출가상(逾城出家相), 설산(雪山)에서 수도를 하며 스승을 찾는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를 항복시키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정각을 이룬 뒤 녹야원에서 5비구에게 설법하는 녹원전법상(鹿苑殿法相), 마지막으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는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등 여덟 장면으로 이루어진 팔상도는 바로 석가모니의 일대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생애를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함으로서 그의 위대한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고자 했던 사람들의 바람, 그것이 곧 수많은 불전도를 낳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불교신문3370호/2018년2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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